탈레반의 복귀를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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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후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 후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특히 그가 2007년 발표한 장편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전쟁으로 인해 가정이 몰락하고 한 폭력적인 남자의 부인들이 되게 된 두 여자들 사이의 우정과 희생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이 두 여인들의 고통은 오히려 소련이 물러나고 친소정권이 몰락한 후 무자히딘 사이에 파벌 싸움이 일어난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평온하던 카불 시내에 포탄이 날아다니고 거리에 시신이 즐비한 상황이 되자 십대 소녀였던 한 여주인공의 가족들은 파키스탄으로 피난하기로 하였지만 떠나는 날 어디서 날아온 포탄에 부모들은 즉사하고 이 소녀는 살아남기 위하여 이웃 60대 노인의 두 번째 부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간의 치열한 싸움이 탈레반의 등장으로 끝나게 되는데, 찾아온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무덤속 같은 정적이었다. 탈레반은 음악과 춤을 금지시키고 여성들은 학교를 다닐 수도 일을 할 수도 없게 하였다. 여자들은 온몸을 덮은 부르카를 입어야만 했고 그러고도 남자가 동반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대학은 문을 닫았고 박물관이 파괴되고 책들은 불태워졌다. 전 세계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선조들이 세운 위대한 인류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폭파하였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소설의 후반부에서 첫 부인은 남편을 살해한 죄로 축구 경기장에서 군중의 환호 아래 처형되고 둘째 부인은 자녀들과 파키스탄으로 탈출하여 첫사랑과 함께 비교적 안온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탈레반을 축출한 이후 이 가족들은 갈등 끝에 다시 옛집을 찾아 카불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 여주인공은 다시 탈레반이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확신과는 다르게 20년도 못되어서 미군은 철수하고 탈레반은 돌아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외세로부터의 해방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악몽의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어떤 정치적 사건을 두고 이를 평가하는 데에는 많은 관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그 사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이 때에 그 이로움은 내세를 추구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의 개인적 능력을 발현하며 희망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가에 있다.

 어떤 종교든지 그 경전을 글자 그대로 믿으며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세상에 큰 해악을 끼쳤다. 인간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였으며, ‘개인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민주주의’가 침해할 수 없는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을 전제로 한 사회를 추구한다. 어떤 독재자라도 외면적으로는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고 지키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출처. KBS <더 라이브> 아프간 국민, 탈레반 바라보는 시각 다른 이유?(2021.8.19)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 <더 라이브> 아프간 국민, 탈레반 바라보는 시각 다른 이유?(2021.8.19) 방송 캡처

 탈레반을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며 특히 여성이나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인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는 권력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환영받을 수 없으며, 이를 철지난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결코 합당한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아프가니스탄도 열 개 이상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종족국가이며 탈레반은 다수 종족인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한 종족이 다른 종족들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실재한다기보다는 근대의 필요에 의하여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이다, 그가 우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좋은 일이라면 남의 힘을 빌려서 해도 좋은 일이다. 당치도 않은 비교일지 모르지만, 북한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축출하고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강요한다면 민족자주로 반길 일인가!   

 이 소설에서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탈레반의 복귀로 또 시련에 빠질 것이다. 가장 좋은 일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단결하여 탈레반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고통을 겪고 사라질 것인지 참 아득하기만 하다. 







[이재동 칼럼 19]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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