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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이재동 칼럼]
2021년 10월 26일 (화) 11:49:49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페이스북에 가입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 그동안 여기서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고 많은 정보나 소식도 나눴지만 그것들이 여기서 보내는 시간에 값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눈이 떠지면 새로운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잠들기 전에도 그곳에 뭔가를 끄적이는 습관은 떨치기 힘들다.

 페이스북의 가입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28억 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현대인들은 뉴스를 자신이 선택하여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플랫폼들의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것들을 본다. 이 거대 플랫폼들이 자신의 영향력에 맞는 공적인 책임감이 없이, 회사의 이익을 늘리기 위하여 선정적이거나 편파적인 의심스러운 뉴스들을 많이 노출시키고 성향이 비슷한 가까운 친구들이 올린 소식을 먼저 띄우는 알고리즘을 채택하는 것이 문제이다.

 작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올해 초에 무력으로 국회의사당을 점령하는, 제3세계 후진국들에나 있을 법한 일이 워싱턴에서 일어난 것에 관하여 페이스북의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페이스북이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하여 회사 내에 만들어 운영하던 시민진실성(Civic-Integrity) 부서를 선거 직후에 해체하여 버린 것이다. 그러자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내용의 선정적인 가짜뉴스들이 범람하게 되고 같은 생각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점점 더 과격하게 되는 마당을 제공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 미얀마의 인종청소, 코로나 백신에 대한 거부 운동과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 등 많은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페이스북이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믿고 있다. 페이스북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동안 공익성보다는 이용자의 습관성이나 중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운용해온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사진 출처. YTN 뉴스 "세계 곳곳 증오 부추기는 페이스북...안전 조치는 눈감아"(2021.10.26) 방송 캡처

 기업은 성장과 이윤을 우선 목표로 한다. 페이스북은 2020년에 58%의 순익증가를 기록하였으며, 올해 시장가치가 1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의 다음카카오에서 보듯이 기업이 일정한 규모를 넘어 개인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면 뒤늦게 이를 제지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하버드 대학의 한 교수는 현재의 경제를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불렀는데, 이는 개인의 모든 경험들이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들이 개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돈을 버는 데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개의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채 모든 정보가 노출되어 이용당하고 조종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자본주의 아래에서 개인의 자율성이나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자율성을 지닌 구성원들을 전제로 한다. 현대의 소외된 인간들을 연결시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자 했던 플랫폼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양극화시켜 진정한 토론과 교류를 막고 선정적인 가짜뉴스에 취약한 조종당하기 쉬운 반민주적인 인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스마트 폰에서 떨어져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시간들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들이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주장하여 온 바다. 진정한 위안은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에서 나오는 것이지 온라인에서의 클릭이나 댓글에서 오지는 않는다. 넘쳐나는 찰나의 '가짜 위안'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 목마르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또 페이스북에 올려 잠시나마 뽐을 내고 흐뭇해할 것이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이재동 칼럼 20]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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