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은주 칼럼]


용기있게 자신의 피해를 신고한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당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가 이어지고 9월22일 신당역에서는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에 분노하며: 어디에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6년 전 강남역여성살해사건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다했지만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젠더기반폭력 사건 중 많은 사건은 신당역 살해 사건과 비슷하다. 주변인에 의해 익숙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신당역 사건은 지금까지 법과 제도의 한계와 ‘여성안전대책’의 빈틈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3년간 불법촬영물 유포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었다. 2021년 10월 불법촬영으로 가해자를 고소하였고, 올해 1월 스토킹 혐의로 2차 고소 후 법원의 선고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살해당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제일 먼저 지적되는 것이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죄가 감형되거나 심지어 공소기각까지 되기에 가해자는 합의에 매달리게 되고 피해자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듯 더 심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제정 당시부터 독소 조항이었다. 2021년 6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지난해 9월 국회 법제사업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논의되지 못했고, 12월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에서도 의원들은 ‘추이를 본 뒤 다시 논의하자’로 결론 내렸다. 법원 행정처는 삭제 의견을 냈으나 법무부는 “피해자의 의사가 다른 사건과 달리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을 냈다. 신당역살해사건 발생 후에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위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신속히 추진’ 하겠다고 했고, 정치권도 앞 다투어 법개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가 희생되어야 국회와 법무부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반복되는 여성 살해 국가 책임져라" 대구 '신당역' 추모제(2022.9.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반복되는 여성 살해 국가 책임져라" 대구 '신당역' 추모제(2022.9.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두 번째 문제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의 한계점이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접근금지 명령과 신변보호 제도는 ‘가해자 감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처인 ‘스마트워치 지급’과 ‘100m이내 접근금지’는 한계가 분명하다.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미리 발견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고, 직접 맞닥뜨리게 되면 경찰 신고 후 신속한 조치가 있어야만 피해를 막을 수 있다. 100m 접근금지는 가해자가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고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등 처벌이 강력하지 않다.

국회 허민숙 조사관은 가해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 근처 1km이내 등 접근금지구역에 진입했을 때, 경찰·피해자에게 경보가 울리게 하여 피해자가 대피하면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시간 감시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한겨레 2022.9.18. 기사 '감시하라, 스토킹 가해자를 …더 많은 피해자가 숨지기 전에' 참고)

세 번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현행법에 명시된 ‘잠정조치4호’ 기각률이다. 경찰청이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한 것은 총 141건이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68건이었다. 기각률이 51.8%이다. 잠정조치 4호는 최대 1개월 동안 가해자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잠정조치 1~3호로는 '피해자-가해자 분리'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잠정조치 4호는 최대 1개월 동안 가해자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어서 유의미 하다. 그러나 경찰-검사-법원의 결정구조를 갖고 있고 법원은 영장주의에 근거해서 잠정조치를 운영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잠정조치 1호는 서면 경고, 2호는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는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이다. 그러나 이를 위반해도 과태료 부과에 그치기 때문에 잠정조치 1~3호로는 실질적인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불가능하다.)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할때에는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라는 적극적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법원은 잠정조치 기각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기각의 사유는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잠정조치 신청여부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경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제도만 있을 뿐 운영에 대한 세심한 규정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개인’의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감수성에 기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의 한계와 빈틈들이 신당역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더불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던 시대에 살며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 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토양으로 작용하여 1월부터 7월까지 스토킹범죄 신고건수는 1만6000건에 달하고 6월까지 사법처리가 된 건이 5,487건에 달한다.
 
<한겨레> 2022년 9월 19일자 1면
<한겨레> 2022년 9월 19일자 1면

신당역 스토킹살해는 피해자의 일상적인 공간, 가장 안전해야할 일터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서울시 교통공사는 2인1조의 직원들이 순찰을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직원들의 요구를 묵살했으며 불법촬영 유포협박과 스토킹 가해 행위를 한 가해자를 1년 가까이 징계하지 않아 가해자가 내부 전산망에 들어가 피해자의 근무장소와 동선을 파악하여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사건 직후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달라’며 사내공지를 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피해자 추모를 위한 지하철내 분향소에 피해자 실명을 공개하여 사후에도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서울시교통공사 사장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여성 직원의 당직 근무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근무제도를 바꾸겠다’며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배제를 대책으로 말했다. 결정적으로 피해자 사망 후 10일이 지나서야 공식사과 했으며 이날은 경찰이 서울교통공사를 압수수색한 날이다.

이밖에도 사건발생 초기에 집중적으로 보도된 경찰과 법원의 잘못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듯 법과 제도의 한계, 경찰, 검찰, 법원, 서울교통공사의 안일함과 스토킹범죄에 대한 인식부족은 피해자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신당역 스토킹사건이 가해자의 행위로 스쳐지나가는 뉴스로만 흘러가지 않고 우리의 관심과 마음에 머물 때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법무부와 국회, 서울교통공사는 지금 발표하는 대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남은주 칼럼 37]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