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의 수난' 흉상에 시(詩)도 삭제...독립군 대신 '절규'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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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73) 영남대 명예교수 42년간 홍 장군 연구
독립운동가 이명균 선생 후손...흉상 철거 비판 시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동상 세워달랬나, 이런 수모"
페북 '혐오콘텐츠' 삭제→대구 시민들 #재배포 운동
"정부가 독립영웅 유린, 참혹...제자리에 돌려놓길"


"오매불망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 아니었네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난리인가 이런 수모 당하면서 더 이상 여기 있고싶지 않네"

시(詩) ⌜홍범도 장군의 절규⌟ 중 (시인 이동순.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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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1868~1943) 장군의 심정이 이럴까. 

자신의 흉상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후손들을 보는 독립운동가의 심정이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70대 노(老)교수인 그는 장군을 대신해 시로써 절규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내내 분노로 일갈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조선의 독립운동가 홍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 정부를 향해 격분했다. 
 

책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2023.8.28) / 사진. 이동순 교수 제공
책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2023.8.28) / 사진. 이동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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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73)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4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홍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시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독립운동사의 크나큰 독립영웅 홍 장군을 이 정권이 마구 할퀴고 오도하고 유린해 참혹한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했다.

이 교수는 42년간 홍 장군을 연구했다. 일제강점기인 지난 1923년 대구형무소에서 고문받다가 옥사한 경북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1863~1923) 선생이 그의 할아버지다. 본인도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어릴적부터 유품과 글을 통해 조부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비록 육신으로 만난적 없지만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말과 행적을 문학도로서, 시인으로서, 국문학자로서 그의 가치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사를 탐독하던 중 홍 장군을 알게 됐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 의병의 98%가 유생·선비였다. 고작 2%가 서민 출신이었다. 그 중 한명이 홍 장군이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함경도 의병장을 하며 삶과 지식을 터득한 그를 존경했다.

올해 3.1절에는 『민족의 장군 홍범도』(이동순 지음 | 한길사 펴냄 | 2023) 책을 출간했다. 조선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 일본과 투쟁에 온몸을 바친 대한독립군 총사령 홍 장군의 자료을 집대성했다. 
 

책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지음 / 사진.한길사
책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지음 / 사진.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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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교수를 분노하게 한 건 다름아닌 동상 탓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육군사관학교 내 홍 장군 동상 철거를 발표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지난달 28일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문'에서 "홍 장군이 자유시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흉상 철거 이유를 밝혔다. 또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빨치산 이력을 기재했고, 소련 공산당 가입도 했다"고 문제 삼았다.   

이 교수는 "거짓말과 몰상식으로 적은 입장문"이라며 "전형적인 극우 뉴라이트 사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제가 2만여명의 사단급 병력을 풀어 중국 만주에 살던 조선인 마을을 불 지르고 죽인 간도학살(1920.10~1921.4) 사건으로, 홍 장군 등 3,000여명은 이후 러시아로 피신했다"며 "머물게 된 곳이 자유시(러시아 스보보드니)인데, 당시 소련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총기 반납을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장군은 소련 땅에 왔으니 나중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쪽이었고, 반대파는 군인이 총을 놓으면 안된다는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중 "소련은 독립운동가 170여명을 죽이고 600여명을 포로로 잡아들였다"며 "이것이 자유시참변의 전체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 설명과 달리 당시 홍 장군은 회의에 참석해 자유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었고, 뒤늦게 이 소식을 알고 돌아와 시신을 수습한 뒤 솔밭에서 '소같이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통곡했다"고 말했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모습 / 사진 출처.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모습 / 사진 출처.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특히 "생포된 600여명 재판이 열리자 홍 장군은 모두 석방해달라고 자청해 570여명이 석방됐다"며 "이후 레닌이 모스크바에서 홍 장군을 만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홍 장군이 30여명 부하를 풀어달라고 요구해 추후 모두 석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정확히 알지도못하면서 자유시참변의 주모자로 홍 장군을 몰아붙이는 것은 몰역사적 관점, 독립운동사 지우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레닌 이후 스탈린의 소련에서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장군의 쓸쓸한 말년도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오갈데 없는 독립군들을 소련이 강제 이주시켰고 홍 장군도 예외는 아니었다"며 "고국을 그리워하며 동포들이 연 고려극장 50대 경비로 삶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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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분의 설명을 한 노교수는 재차 시를 쓴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분을 빨갱이니 뭐니 이념으로 공격하고 오도하는 걸 보니 도저히 상심이 돼 새벽에 홀린 듯 그런 시를 썼다"면서 "홍 장군의 영혼이 내게 들어온 것처럼, 마치 빙의된 것처럼 그의 말을 대신 시로써 전했다"고 덧붙였다. 

장군이 잠들었던 카자흐스탄 고려인 지역에도 2m 넘는 홍 장군 동상이 한반도 쪽을 향해 서있다. 그러나 정작 고국에 돌아온 홍 장군은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흉상에 이어 시도 수난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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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지난달 26일 '홍범도 장군의 절규' 시를 본인 페이스북에 올렸다. 흉상 철거를 비판한 자작시다. 페이스북은 앞서 1일 게시물을 삭제했다. 페이스북은 지난 2일 "정체성을 바탕으로 개인 또는 집단을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공격하는 콘텐츠를 공유했다"며 "페이스북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한 혐오발언 콘텐츠를 삭제한다"고 밝혔다. '계정 경고'까지 했다. 
 

이동순 교수 페이스북 '혐오발언 계정경고'
이동순 교수 페이스북 '혐오발언 계정경고'
'홍범도 장군의 절규' 시 게시물 삭제 조치 / 사진.이동순 교수 페이스북
'홍범도 장군의 절규' 시 게시물 삭제 조치 / 사진.이동순 교수 페이스북


삭제 조치에 대해 이 교수는 "황당하다.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이자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예법상 최소한 사자(死者)에 대해서는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독립군을 모셔놓고 나쁜 말들을 하는 걸 보면 가슴 속에서 슬픈 감회가 크다"고 말했다. 

시 삭제에 맞서 일부 대구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시 재배포 운동을 벌였다. 해시태그(#) '복사해서 공유합시다'를 써 공유 중이다. 일부 재배포자들도 페이스북으로부터 계정 정지, 삭제 조치를 당했다.

이 교수는 "국민들의 뜻을 살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순리"라며 "부디 이 정부가 홍 장군의 흉상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많은 시민들이 시를 읽고 자체적으로 SNS에 퍼뜨려달라"고 호소했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
                                  이 동 순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 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
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무참히 강제이주 되어 끌려와 살던 
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
나, 거기로 돌아가려네
이런 수모와 멸시 당하면서
나, 더 이상 여기 있고싶지 않네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 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내 동상을 창고에 가두지 말고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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