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관장 선임 문제는 구조적 문제의 일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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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미술비평가)


갑신년이 시작되자마자 대구미술계가 시끄럽다. 지난 연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에서 대구미술관 신임 관장으로 노중기 작가를 선임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내자 연초 지역의 미술인들이 즉각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현재까지 이에 동조한 연대 서명자가 900명이 넘을 정도로 줄을 잇는 가운데 여러 매체가 연이어 보도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지역 미술인들이 분노하게 된 것은 지난해 5월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한 《노중기》 개인전에서 노중기 작가가 얼마 뒤 자신이 제작해 선물한 고교 동기 홍준표 대구 시장의 초상화를 슬며시 내걸어 논란을 빚은 바 있는데, 이번에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인 홍 시장이 노 작가를 대구미술관 관장에 꽂았기 때문이다. 한 편의 소극을 보는 듯한 사건을 지역 내외 수많은 미술인과 시민단체 및 언론 매체가 연일 공론화하며 스캔들로 몰고 갔지만, 11일자 신문에서 홍 시장은 절차상 결격 사유가 없다면 "친구라도 쓸만한 사람이면 발탁"할 수 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놀랍지만 그간 익히 접해온 행정 수장들의 대응 매뉴얼을 보는 듯하다.
 
노중기 작가(사진 왼쪽), 홍준표 대구시장 초상화 / 사진 출처. 노중기 작가 페이스북(사진), 트위트(초상화)
노중기 작가(사진 왼쪽), 홍준표 대구시장 초상화 / 사진 출처. 노중기 작가 페이스북(사진), 트위트(초상화)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대구미술계가 이번 계기로 집단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대구시와 산하 기관들의 일방 행정에 제동을 걸며 미술계의 요구 사항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이번 관장 선임 건은 구조적 문제의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승자 독식의 선거 대의제에서 선출된 – 여당이든 야당 출신이든 - 대통령 이하 장관과 지자체장들은 막강한 인사권을 행사하며 집권 정당의 이익이나 사적 이해관계 앞에 쉽게 공적 가치를 훼손해온 사례들이 널브러져 있지 않은가.

미술계에 제한하더라도 우리는 대구처럼 대전에서도 이장우 대전시장의 대전대학교 동기라는 학연으로 윤의향 교수가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선임된 사건을 지켜보았고, 지난 정권 때 당시 문체부 장관이 절차를 뒤엎으며 윤범모를 국립현대미술관 수장에 앉힌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 대구, 대전의 관장 선임 문제는 기관장의 사적 관계가 공익적 가치를 무너뜨린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요컨대 대구미술관장 선임 문제는 예외적인 특수한 경우라기보다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곳곳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보수정치인 홍준표를 대구 시장으로 선출했을 때 그는 이미 경남도지사 시절에 해왔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는 당시 긴축 재정과 시장 논리에 따라 진주의료원을 폐쇄했고 무상급식을 중단시킨 바 있으며, 대구에서는 한층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학연이나 인맥에 따른 여러 측근 인사와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행정 집행을 강행했고, 또한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의 연장으로 팔현 습지를 파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 대의제에서 선출된 정치인이나 기관장은 "구조적으로" 지배 세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직을 유지 및 연장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할 뿐 시민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민주적 행정을 펼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대구미술관 관장 선임 문제는 선거 대의제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이보 모슬리는 이를 두고 "선거 대의제는 가짜 민주주의"라고 일갈한 바 있는데, 우리는 "선거 대의제가 민주주의 제도"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민중이 동등한 자격으로 통치의 권력과 책임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진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만이 비로소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대구미술관 홈페이지
사진 출처. 대구미술관 홈페이지

필자는 대구 시민과 미술인들이 대구미술관 관장 선임 문제를 다른 기관장이나 단체장 인사 문제, 소수자 권리문제, 자연 생태계 문제 등과 분리해서 접근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이 우리의 삶의 일부이듯 지역의 정치, 사회, 자연환경 등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진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항의 성명서에서 강조한 “관장은 전문가에게”라는 입장도 일견 맞는 말이면서도 곰곰이 따져볼 여지가 있다.

그간 대구미술관장을 전문가들에게 맡겨 어떤 미술사적, 공공적 성과를 남겼는지는 충분히 논란거리이다. 지난 12년간의 전시 사업은 대부분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며 관람객 숫자에 목메는 이벤트성 전시에만 치중해왔지 않은가. 현재 한국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관장을 돌아가며 맡는 일군의 관장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계량화된 경력을 앞세워 소위 전문가로 행세하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공공적 (즉 대안적 사회/문화 모델 모색 등) 가치보다는 언제나 지배 세력의 편에서 신자유주의 현상(現狀)의 재생산에 봉사해왔다. 이번에도 그중의 하나에 맡겨 이전처럼 미술관을 운영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인가?

물론 미술관 관장 자리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관건은 전문성을 지배 세력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 시민/민중을 위해 발휘한 것인가이다. "진짜 민주주의" 사회에서 관장 선임 방법은 결격 사유가 있는 지원자를 제외하고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춘 모든 후보자를 대상으로 (심사나 낙점이 아닌) 추첨으로 결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전문가 카르텔을 와해하고 신자유주의 세력에 맞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과 역량을 갖춘 새로운 인물의 부상을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아닐지라도 최선의 대안이지 않을까?

아무튼 이번에 항의 성명서를 발표한 지역 미술인들과 이에 연명한 수많은 시민과 미술인들이 관장 선임 문제를 독립된 별건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다른 문제들과 연관된 구조적 문제로 직시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이야말로 구조적 문제에 균열을 내며 진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새해 벽두 대구미술계의 시끌벅적함이 지역 미술계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팡파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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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수/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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