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이 폐기물 처리시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의료, 산업 등 각종 폐기물 처리시설만 무려 20곳에 이른다.
주민들은 주거권과 환경권을 침해 받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적 분쟁까지 첩첩산중이다.
특히 고령군에서는 이미 폐기물 처리시설들이 있는데 불구하고 추가로 또 들어서려 해 논란이다. 지자체와 업체는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 대구고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곽병수·양해진·송민화)는 17일 오전 A레미콘업체가 대구지방환경청을 상대로 낸 '폐기물처리 사업계획서 반려처분 취소청구' 항소심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쟁점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흘러가는 방향 ▲재량권 남용 여부였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침출수와 관련해 양측이 변론을 펼쳤다.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서면 안된다"는 대구환경청 측과 "처리시설이 들어서야 한다"는 업체 측이 쟁점을 놓고 입씨름을 했다.
대구환경청 측 변호사는 "사업 계획만을 검토했을 때 침출수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할 것"이라며 "침출수가 유출될 경우 정화 가능성이 없다고 이미 원심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북지역과 경남지역은 모두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저수지와는 달리 오염에 매우 취약하다"면서 "646만명 인구의 식수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A업체 측 변호사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막연한 위험성이나 명령에 기초해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자체의 재량권 남용"이라며 "사업계획서 보완이 가능한데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고 하는 것은 절차 위반"이라고 맞섰다.
또 "피고(대구환경청) 측에서 지질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용역에 의뢰해 보고서를 받은 게 있다"며 "작성 책임자를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요구했다. 대구환경청 측은 "이미 이 사건에서 충분히 감정이 행해진 상황인데 다시 정리한다는 것은 의문"이라고 받아쳤다.
재판부는 업체 측 요구를 받아들여 용역 보고서 작성 책임자를 다음 재판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 소송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괴롭다.
이날 재판장에는 해당 지역인 경북 고령군 개진면 주민 윤모(72)씨가 방청했다. 윤씨는 "20여년간 A업체가 석산 개발을 하면서 분진과 소음 등 고통이 심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분진, 소음 고통에 이어 처리물 시설까지 떠안으라니 이제는 오염된 물을 먹으라는 거냐"면서 "침출수 문제도 있지만 주민들은 다른 여러 피해도 마주하고 있다. 절대 들어서면 안된다"고 한탄했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6월 28일이다.
'고령군 개진면 폐기물 처리장 갈등'은 지난 2021년 6월 A업체가 석산을 개발한 자리에 폐기물 매립장 건립 계획서를 대구환경청에 접수하며 시작됐다. A업체는 1997년부터 개진면 일대에서 석산을 개발해 레미콘 등 자재를 생산해 왔다.
그러나 환경청은 같은 해 7월 사업계획서를 반려했다. 환경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다. 업체는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9월 패소한 뒤 항소했다.
◆ 이처럼 경북지역은 곳곳에서 폐기물 처리시설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북도(도지사 이철우)에 17일 확인한 결과, 2024년 기준 경북지역 민간 사업장폐기물 처리시설은 모두 20곳이다. 지역별로 ▲경주 7곳 ▲구미 4곳 ▲고령·칠곡·포항 각 2곳 ▲경산·영천·의성 각 1곳이다.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은 영업 구역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폐기물관리법'상 생활폐기물의 수집·운반업에 대해서만 영업 구역을 제한하고 있다. 인허가만 받으면 전국 각지의 산업·의료폐기물을 받을 수 있다. 경북 사업장일반폐기물 인허가는 시.군에서 주관하고, 지정·의료폐기물 인허가는 대구환경청이 내준다.
전국에서 폐기물 처리시설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있는 지역이 경북이다.
환경부 한국환경공단의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지정폐기물 매립장 24곳 중 경북 7곳(29.16%)에서 전국 매립량의 29.95%를 매립했다. 의료폐기물의 경우 전국 14곳 중 경북 3곳(21.42%)에서 전국 소각량의 25.24%를 매립했다.
곽상수 낙동강네트워크 대표는 "처리시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더 이상 시설이 못 들어오도록 경북도가 조례를 만들고, 폐기물이 발생하면 발생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규정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자체 입장은 복잡하다. 상위법이 바뀌지 않으면 현재로선 어렵다는 것이다.
경북도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2020년 기준 경북지역은 전국 대비 폐기물 발생량이 11% 수준에 불과하지만, 최종 폐기물 처분 매립량은 상당히 많다"면서 "처리업체 입지 제한을 하기 위해서는 '폐기물관리법'이 바뀌어야 한다. 여러 법이 얽혀있다 보니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환경부에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는 해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고령군의 경우 문제가 더 복잡하다. A업체 이외에 B업체와도 폐기물 처리시설을 놓고 소송 중이다.
고령군(군수 이남철)에 17일 확인한 결과, 석산 개발업체 B업체는 2022년 10월 고령군 쌍림면에 하루 96톤(t)의 산업폐기물 소각장을 건립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고령군에 제출한 뒤, 보완을 거쳐 지난해 6월 최종 수정보완 계획서를 제출했다.
고령군은 지난해 7월 '부적합' 통보를 내렸으나 B업체는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에 '폐기물중간처분업 사업계획서 부적합 통보 처분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심판위는 "농업 경영에 피해가 예상되고 인근에 주민들이 거주해 행정청의 재량권 이탈 등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사정이 없다"며 기각했다.
B업체는 같은 내용으로 고령군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선고심은 오는 6월 5일이다.
고령군 환경과 관계자는 "B업체의 사업 계획에 타당한 사유가 없어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면서 "업체가 고령군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업장 일반폐기물 인허가와 같은 지자체 위임 사무에 대해서는 최대한 주민 생활과 환경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살펴 처리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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