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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주민들의 '천막농성 10년'...한수원은 '농성장 철거'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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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km 안 경주 나아리 주민들
2014년부터 농성장 "이주대책"
한수원 홍보관 토지 위에 설치
"무단점유, 부당이득 반환" 소송
대구지법 경주지원 4월 첫 공판  
대책위 "마지막 하소연할 곳인데"
"집회·시위 권리마저 빼앗아" 반발

10년 간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이어져 온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천막농성장이 사라질 위기다. 

월성원전 반경 1km 안 3개 마을주민들은 이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10년 넘게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작고 조용한 바닷가에 들어선 월성원자력발전소 4기. 한국수력원자력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 호소할 곳이 없어 겨우 차린 게 천막농성장이다. 

주민들은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가끔 모여 회의를 한다. 농성장 기능이라곤 현수막과 피켓을 걸어놓고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소연하는 게 전부다. 

농성장에는 지난 10여년간 정치인들도 많이 다녀갔다. 2016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평의원 시절 우원식 국회의장,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서울 노원구을) 국회의원 등이 다녀갔다. 바스쿳 툰작 유엔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인권 특별보고관도 2015년 농성장을 방문한 뒤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 거주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생존권 사수, 계속운전 결사반대" 경북 경주시 양나면 나아리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천막농성장(2016.9.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생존권 사수, 계속운전 결사반대" 경북 경주시 양나면 나아리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천막농성장(2016.9.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후원전 월성1호기 수명연장 중단" 촉구 천막농성장(2015.4.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후원전 월성1호기 수명연장 중단" 촉구 천막농성장(2015.4.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한수원이 농성장 철거 소송을 내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사유지에 대한 재산권 침해"라는 게 한수원 측 입장이다. 주민들은 "마지막 절규, 집회·시위의 권리마저 빼앗는다"며 반발했다. 

◆ (주)한국수력원자력(대표이사 황주호)은 지난해 6월 28일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회'를 상대로 월성원전 홍보관 토지에 이주대책위가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라는 소송을 냈다. 

대구지법 경주지원 민사1단독은 오는 4월 8일 첫 공판을 연다. 소장을 낸 지 8개월만이다. 

한수원 측은 "이주대책위는 한수원이 소유한 토지 위에 지난 2014년부터 천막을 치고, 무단으로 점유해 여러 물건들을 적치하는 등 토지에 대한 소유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시설물 무단 점유로 인한 부당이득까지 보고 있다"면서 "월 임료를 5만원으로 해서 2019년 6월(무단점유에 대한 소멸시효 기준)부터 2024년 6월까지 300만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요구했다. '소송 시점을 기준으로 한 계산으로 소송에서 주민들이 질 경우 반환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평의원 시절 민주당 우원식 국회 의장이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의 천막농성장을 찾아 주민들과 면담을 하는 중이다.(2015.4.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평의원 시절 민주당 우원식 국회의장이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의 천막농성장을 찾아 주민들과 면담을 하는 중이다.(2015.4.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월성 이주대책위 천막농성장 철거 소송 철회" 촉구 기자회견(2025.3.11) /사진.이주대책위 제공

◆ 월성원전이주대책위와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지난 11일 대구지법 경주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옆에서 일평생 살아가는 위험을 깨닫고 농성이 시작됐다"며 "그 즈음 주민들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다량 검출되었고,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많은 삼중수소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한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 평생 일군 논밭과 집을 제값에 팔고 자력으로 핵발전소에서 좀 더 먼 곳으로 이사가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논밭,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자산을 처분할 수 없으니 이사는 꿈도 꾸지 못해 마을은 거대한 수용소가 됐다"면서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인데 한수원은 마지막 절규인 집회·시위 권리마저 빼앗으려 한다"고 규탄했다. 

황분희(78)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은 "한수원은 '재산권을 침해받았다'고 소송을 냈는데, 주민들이 10년 넘게 농성을 한 곳은 '핵발전소 제한구역'"이라며 "제한구역은 법적으로 사람이 거주할 수도 없고, 어떠한 경제 활동도 할 수 없는 곳인데 지장 받았다는 재산권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따졌다. 이어 "이번 소송의 진짜 의미는 윤석열 정권의 핵진흥 정책에 장애물을 걷어내려는 핵산업계의 욕망"이라며 "집회·시위 권리마저 빼앗으려는 소송을 철회하고, 주민들의 이주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주대책위는 원전제한구역 914m 기준 대상에서 빠진 월성원전 1km 내 3개 마을 주민들로 이뤄졌다. 원자력안전법 제89조이 정한 원전제한구역 기준은 914m다. 원전에서 914m까지는 정부가 이주를 지원하지만, 915m부터는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은 "건강권과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 914m 밖에 사는 인접지역 주민들도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대책위를 꾸리고 10년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된 적도 있지만,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번번히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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