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팔십 죽을 나이가 됐습니다. 다른 욕심 없어요. 이재명 대통령님, 좀 도와 주십시오"
"자그마한 시골 마을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우리도 국민입니다. 이 곳에서 내보내주세요"
"막다른 길에 몰려 캄캄합니다. 희망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희망은 절망이 되었습니다. 제발 지옥같은 이 곳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이 지난 2일 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다.
원전제한구역 914m 기준 대상에서 빠진 월성원전 1km 이내 3개 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정부가 이주 지원을 해주지 않아, 월성원전 인근에 갇혀 살고 있다며 2014년부터 11년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특히 건강권과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국회와 정부에 법 개정(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요구해왔다. 여러번 국회에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문턱을 못 넘고 폐기됐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에 이어 이재명 정부까지 정권이 4번이나 바뀌며 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 마을 주민들끼리 반목하며 이주대책을 요구하던 인원도 줄었다. 당초 주민 72가구, 주민 120여명이 함께 이주대책위원회를 꾸려 한국수력원자력에 맞섰지만 지금은 고령의 주민 소수만 남았다. 게다가 11년간 이들의 모임 장소가 된 천막농성장도 한수원의 소송에 따라 철거 위기에 놓였다.
더 이상은 갈 곳도, 싸울 힘도 없는 없는 원전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 대통령에게 마지막 호소에 나선 것이다.
김진선(78) 할아버지는 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 대대로) 500년 산 고향 산천을 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진다"며 "10년 넘게 이주시켜달라고 집회를 해도 대답이 없다"고 한탄했다. 또 "타지에 나간 자손들이 직장 생활을 마치면 고향 산천, 부모 재산 지키려 고향으로 와야 하는데, 오지도 않고 부모가 살던 집과 전답 모두 다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작년 종합건강검진에서 '갑상선이 나쁘다'고 하면서 주의를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겠냐"며 "논과 밭, 산 모두 두고 가겠다. 살고 있는 집이라도 팔아주면 원자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 편히 살다 죽고 싶다. 욕심 없다. 남은 여생 마음 편히 살 다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황분희(77) 할머니도 편지에서 "원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믿고 의심 없이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왔는데 잦은 고장으로 늘 불안에 떨었다"면서 "삼중수소를 포함한 방사능에 의해 몸이 내부피폭됐다"고 했다. 이어 "그 탓에 작은 시골 마을은 암으로 죽고 암환자가 늘어났다"며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법을 만들어오라고 해서 여러번 국회에 가 면담도 했지만 입법화는 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정부는 고통받는 주민들을 외면 말아달라. 법을 만들든가, 남은 우리들이라도 내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성혜중(75) 할머니도 "평생 모은 생명줄 같은 재산이 원전 주변이라는 이유로 가치가 떨어져 거래마저 되지 않는다"며 "할 수 있는 것은 집회 밖에 없어 목소리를 높였지만 원인을 제공한 한수원은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식당을 운영했지만 식당마저 문 닫고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천막(농성장)에서도 쫓겨날 처지다. 우리를 도와달라"고 이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와 '불교환경연대' 등은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주민들의 편지와 호소문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한수원은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라며 '이주법이 없어 이주시켜줄 수 없으니 이주법을 만들어오라'고 했다"며 "국회를 찾아가 이야기했고, 여러번 법안이 발의됐지만 한번도 입법화되지 못했다. 그렇게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10년 넘게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는 저희의 마지막 보루인 농성장 마저 빼앗길 위기"라며 "해결사 이 대통령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부디 우리를 도와달라. 당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우리 5가구라도 이곳에서 내보내달라"고 촉구했다. 특히 "토지 담보 대출 형태 등의 다양한 중재 역할을 정부가 펼쳐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달라.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부 조사 결과, 월성원전 인근 주민 염색체 변형률은 47.1%로 나타났다. 2011년 자체조사 결과, 주민 체내 암을 유발하는 인공 방사능 물질 삼중수소(3H) 수치가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양남면, 양북면, 감포읍 주민 체내 삼중수소 검출률은 89.4%로 원전에서 50km 떨어진 경주 시민 검츌률 18.4%에 비해 높았다. 2015년 나아리 5~19세 어린이·청소년 9명 등 주민 40명 소변검사에서는 모두 삼중수소(3H)가 검출됐다. 삼중수소는 암을 유발하는 인공 방사능 물질로 월성원전 같은 중수로 원전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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