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미국에서 와서 이렇게 합니다. 내 고향 TK 시민 여러분 이번엔 좀 바꿔야죠.
대구 달서구 월성동 월성주공 아파트 앞 매주 화요일마다 서는 '월성 화요시장'. 지난 27일 오후 흰색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쓰고 파란색 자켓을 입은 백발의 남성 재미동포 박영두(76)씨다.
6.3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모국인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1970년대 미국에 건너간 이민 1세대로서 현재는 한국 국적이 없다. 그 탓에 대한민국 선거 투표권이 없어 이번 대선에 투표를 할 수 없다. 대신 유세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고향 대구에 와 난생 처음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딱 한달 동안 대구에서 특이한 여정을 보내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 그는 "기호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누구도 지지를 강요한 적 없다. 지지할 정치인을 고른 것도, 한국에서 유세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본인 선택이다. 미국 대표 휴양지 캘리포니아 주 팜스프링스에서 성공한 호텔 사업가인 그가, 뜬금 없이 한국 대선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말하자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노신사를 막을 수 없었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조기대선. "조국의 위기 앞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고 한국에 온 이유를 밝혔다. "내란 심판, 국민의힘은 안된다"는 일념으로 보름째 중구 동성로, 달서구 월성동, 달성군 현풍 등 대구 곳곳에서 유세 중이다. 27일 이날은 전통시장을 돌며 피켓을 들고 "기호 1번 이재명"을 외쳤다. 도너츠 1만원치를 사면서 상인들에게 "이제 이재명을 뽑아주세요"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이날 달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선거운동을 하러 한국에 오게된 이유에 대해 "윤석열의 얼토당토 않은 계엄을 보고 나 하나라도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며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나. 그때 미국 친구들도 다 놀랐다. 해괴한 일이다. 1960년대 아프리카 콩고 이디아민 같은 독재자가 나오는 그런 나라가 될 가능성 커 보였다. 내 고국에서 이런 일이 있다니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한 대선이다. 잘못 선택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진다"면서 "국민을 총칼로 때려잡는 정권이 나와선 안된다. 나의 단 한마디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작은 우국충정으로 한국에 왔다"고 설명했다.
당초 그는 4월에 한국에 부인과 함께 왔다가 5월 초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5월 12일 다시 혼자 한국에 왔다. 그리고 서울 민주당에 가 "대선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교민 담당'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하고 고향 대구로 가겠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 대구시당에 가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박영두씨는 "고향 대구에 가서 이 꼴통 TK 친구들을 만나 보수 언론의 잘못된 보도, 보수 정당의 옳지 못한 정책을 비판하고 싶어서 백수 신분(현재 CEO 자리를 사위와 딸에게 물려주고 경영에서 물러남)에 한국까지 왔다"며 "고향 대구 사람들을 일깨워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네마다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며 "생전 처음 하는 일인데 아주 신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제21대 대선 재외투표율(79.5%)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그는 "한국 사람들보다 교민들이 더 놀랐다(비상계엄)"며 "투표율이 높을 거다. 많이 분노했다. 엄청 화가 난 상태"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예전에는 미국인들이 한국을 잘 몰랐는데 이제 음식, 노래, 영화 다 유명한 나라가 됐다"며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계엄을 하다니. 교민들을 쪽팔리게, 부끄럽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한국 국적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 혐오 발언 탓에 이민자들이 살기 힘들어진 탓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같은 혐오 정치는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줘 경제를 망친다"면서 "이미지 타격이 엄청나서 국가 경제를 망친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대구 사람들은 이걸 너무 모른다"면서 "내란 정당은 심판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구시민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손글씨로 적어왔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보수정당은 최소 5번 당 명을 바꿨다. 그때마다 잘못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또 "그럴 때마다 엎드려 절하며 '잘못했다', '용서해주세요' 한다. 지은 죄가 많은데도 대구 사람들은 매번 받아줬다.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고 촉구했다. 그는 "더 이상 정치에 등을 돌리면 안된다. 정치를 외면하면 저질 정치인에게 지배 당한다"면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 이제 TK에서 없어야 한다. 묻지마 투표하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번엔 좀 바꿔서 다른 선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영두씨는 1949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대구에 이사 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영남대학교 토목공학과(현재 건설시스템공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다가 비슷한 시기 군에 입대했다. 1971년 미국에 유학 간 큰형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간 이미 1세대로서 악착 같은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맥주회사에 취업해 일을 시작했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캘리포니아 오리건 주 링컨시티로 가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식당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오리건 주 포틀랜드로 건너가 큰 식당을 열었다. 세탁소, 식당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했다. 2000년대 들어 호텔업에 뛰어들었다. 캘리포니아 주 팜스프링스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경영자(CEO)가 됐다. 최근 CEO는 가족에게 물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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