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현직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충격과 분노로 가득찼다. 다행히 참을 수 없는 국민의 거센 저항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로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내란'은 새벽 동트기 전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12.14)를 거쳐 이듬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와 함께 파면당했고 지금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현직 대통령의 필연적 말로였다.
'계엄의 밤'은 국민을 다시 모이게 했다. 목청은 분노로 높아졌다. 윤석열에게 75.14%의 득표(2022.3.9, 20대 대선)를 안긴 대구에서도 12월 4일 1차 시국대회를 시작으로 이듬해 4월 4일까지 26차례의 시국대회가 열렸다. 연인원 11만여명이 겨울과 봄의 광장을 불밝혔다.
대구 도심인 동성로는 매주 수 천의 시민들로 가득찼다. 특히 윤석열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를 지켜보던 12월 14일에는 무려 4만여명(주최측 추산)이 발디딜틈 없이 도심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쳤고 "탄핵 가결"에 환호했다. '보수의 상징'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고, '박근혜 파면'을 바라던 2016년 겨울 이후 8년 만의 최대 인파였다. 광장의 외침은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회의'가 주도했고 여기에는 지역 91개 단체가 참여했다.
시민 저항에 따른 '대통령 파면'은 조기대선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파면'으로 치러진 첫 '장미대선'(2017.5.9) 이후 8년 만의 '대통령 보궐선거', 21대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이유는 8년 전과 같으며, 그 무게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만큼 무겁다. 박근혜는 '국정농단'으로 불렸고 윤석열은 '헌정유린', '내란'으로 지목된다. 국민이 준 권한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유린한 대통령, 그들은 역사의 죄를 씻을 수 없다. 주권자 국민의 대의기구에 총부리를 겨눈 윤석열은 '내란' 법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 뜻을 배반한 죄과는 수 백년이 지나도 역사의 법정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박근혜 파면 이후 정권교체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으나 불과 5년 만에 이름만 바꾼 똑같은 보수정당의 후보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넘겨주었다. 그 역시 파면됐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은 대선 때마다 '파면될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다.
대구는, ▲박근혜 파면으로 치러진 19대 대선(2017.5.9)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게 45.36%, 지금은 국민의힘에서 한솥밥 먹고 있는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14.97%,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12.60%의 득표율을 안겨줬다. 무려 72.93%를 '보수정당'에 몰아준 셈이다. 반면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대구에서 21.76%를 얻는데 그쳤다.
▲20대 대선(2022.3.9)도 마찬가지였다. 대구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75.14%의 몰표로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올렸다. 불과 3년도 못돼 탄핵될 그를.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구에서 21.60%에 그쳤다. 5년 전 문재인 후보 득표율(21.76%)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후보나 정당에 대한 호불호, 정책과 공약에 대한 판단도 있겠으나 '대구' 표심은 변함없는 '보수 일색'이었다. '보수의 성지', '보수 텃밭'으로 불릴 만했다.
심지어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의 심장'은 아니다. 심장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이지만 대구의 과거는 '보수 일색'이 아니었다. '보수 몰표' 이전의 역사가 있었다.
▲1956년 3대 대통령선거, 당시 진보 성향의 무소속 조봉암 후보는 대구에서 72.38%를 얻었고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27%에 그쳤다. 5.16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처음 출마한 1963년 5대 대선에서도 '고향 사람'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지는 않았다. 대구 시민들은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51.2%를 줬지만 민주당 윤보선 후보에게도 43.8%의 만만찮은 지지를 보냈다. 최근 문재인·이재명 후보의 21%와 비교하면 두 배나 높은 득표율이었다.
< 제3대 대통령선거(1956년) 대구지역 득표율 >
▲1971년 7대 대선에서도 대구는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67.4%를 안겼지만 신민당 김대중 후보도 31.89%를 얻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민주당 계열의 후보들이 대구에서 대부분 10% 안팎이나 20% 턱걸이 수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1971년 김대중 31.89%는 '보수 몰표 이전의 대구'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이후는 그야말로 '보수 몰표'였다.
민주당은 이번 21대 대선의 대구 목표를 30%로 세웠다. 1971년 대선 이후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 '30%의 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탄핵·파면으로 이어진 실망과, 여전히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채 경선과 단일화 논란을 겪는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이 겹쳐진 점도 30% 기대를 더하고 있다. 지난 대선의 21.60%보다 거의 10%p 높은 수준, '보수 몰표' 성향의 대구가 어느 정도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12.3비상계엄이 부른 6.3조기대선, 6월 3일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전국 유권자 44,391,871명의 선택이 이뤄진다. 대구 유권자는 2,049,078명, 경북 유권자는 2,213,614명이다. 대구 661곳, 경북 916곳의 투표소가 유권자를 기다린다. 대구의 사전투표율은 25.63%로 전국 평균(34.74%)을 까먹으며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대구는 '파면된 대통령' 2명에게 몰표를 줬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80.14%,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75.14%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초겨울 비상계엄부터 초여름 대선까지 긴 혼란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보수 몰표' 이전과 '보수 몰표' 이후의 대구, 압도적 지지를 몰아준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을 지켜본 대구, 1971년 이후 민주당 후보에게 단 한번도 30%를 내주지 않은 대구, 그 대구의 시민들은 2025년 21대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계엄이 부른 조기대선의 당락 윤곽은 6월 3일 밤 자정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주권자 국민의 오늘 선택에 달렸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