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손배소송 폭탄을 막을 노란봉투법이 10년 만에 국회 벽을 넘었다.
국회는 지난 24일 오전 본회의를 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재적 186명 중 찬성 183명, 반대 3명으로 통과시켰다. 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배 폭탄'이 노동자들을 옥죄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내용을 보면, 합법적으로 이뤄진 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사용자의 정의에 대해 '사업주, 사업의 이해관계자 또는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라고 명시했으나,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는 내용을 신설했다. 하청노동자가 실질적인 지시를 받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조합 정의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라는 내용을 삭제해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확보하려는 취지를 담았다. ▲노동쟁의의 개념에 대해서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불일치'→'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수정해 사업상의 결정 사항이 노동조건의 변경을 불러올 때는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특히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에만 국한됐던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그 밖의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법원이 손배 책임을 노동자에게 인정하는 경우 책임 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조항 등을 신설했다.
줄곧 개정안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지난 23일 오전부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를 진행했으나 24시간 만에 종료됐다.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천하람, 이주영 의원 3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재계도 "불법 파업을 조장해 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공포하는 일만 남았다. 다만 공포 즉시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공포일로부터 6개월간 법 시행을 준비하는 작업을 한다. 내년 3월 시행 예정이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노사 의견을 수렴하고,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나 고용 절차, 노동쟁의 범위 등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노란봉투법의 역사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에서 지난 2003년 1월 정리해고에 반발해 파업을 벌였던 고(故) 배달호씨(당시 50세)가 사측이 제기한 65억원의 손배 청구와 임금 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10월 고(故) 김주익(당시 40세)씨도 부산 한진중공업 사측 정리해고에 반발해 크레인 농성을 하던 중 사측이 150억원 손배를 청구하자 이에 반발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 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발해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사측은 47억원의 손배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2014년 이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환으로 숨진 해고자와 가족은 30명이다. 쌍용자동차의 손배소송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노란봉투에 4만7,000원의 성금을 보내는 운동을 펼쳤다. 여기에서 노란봉투법이 유래됐다.
제19대 국회에서 지난 2015년 법안이 처음 발의된 뒤 현재 제22대 국회까지 수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경영계가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꾸준히 반대해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제21대와 22대 국회에서는 한 발 진전이 이뤄져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모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물거품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노조법 2, 3조 개정"을 공약으로 냈다.
대구지역 노동계는 법안 통과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다만 향후 노동부가 사용자성 정의나 쟁의 범위 등 관련 기준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25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노란봉투법이 처음 국회에서 발의되기 전부터 수많은 노동자들이 손배 폭탄이라는 압박 속에 돌아가셨고, 여전히 이것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많이 늦었지만, 이제서야 후진국형 노동 정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청이나 파견, 특수고용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확대된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사용자성이나 노동쟁의 범위 등에 대한 기준을 노동부가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우려는 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서 배제됐던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매뉴얼에 잘 담겼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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