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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길 위에 멈추어 서서 있다
⑧ 오택진 / "세치 혀가 아니라 내가 삶으로 답해야 할 몫"
2010년 12월 30일 (목) 01:14:00 평화뉴스 pnnews@pn.or.kr


2010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8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현장'의 사람들입니다. ▷헌 책방을 연 변홍철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새내기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영남일보 김일우 기자 ▷창립 20년을 맞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대표 ▷생존의 현장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20년 주민운동에서 풀뿌리의회에 들어간 유병철 북구의원 ▷논란 속에 6.2지방선거 연대판에 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김동렬 운영위원장 ▷4대강 사업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해 온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 ▷포화 속 한반도에서 여전히 '통일'의 꿈을 찾아가는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2010 송년'의 마지막 순서로,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의 소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길 위에 멈추어 서서 있다. 쉼없이 달려오던 길을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있다. 20대 초반 나의 ‘의지’와 ‘계획’대로라면 이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 겯고 함께여야 하지만 주변에는 아직까지 ‘깃발’을 지키고 있는 몇몇과 함께하는 착한 사람들이 아직 이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섰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들도 있고 뒤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으며 쓰러져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지금 아프다. 물질만능과 천부차별의 비정한 시대에 아프고, 흐르지 못하고 갇혀 있는 부끄러운 삶에 아프고, 미칠듯한 그리움과 목마름에 아프고 ....그렇게 우리는 다들 아프다. ‘희망’을 말하기에 현재의 삶이 부끄럽고 ‘포기’하기엔 살아온 삶에게 미안하다.

"...세상을 배우기 전에 운동을 배웠고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가르치려 들었다. 사람에 집중하기보다 이론에 집착했다...."
"...관성화된 정의...."
"...지난 시절 386들이 청와대로 국회의원으로 진출할때도 나는 왜 일찍 태어나지 못해 저런 혜택을 못받을까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성없이 권력의 해바라기 노릇을 하거나 권력에 심취해 우리가 비판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할 때 분노했다..."


‘나’의 문제에 집중하며 거리를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스마트폰에 옮겨 적은 메모들이다.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었는지 나의 오래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에 내 마음속에는‘진정성’이라는 세 글자가 무겁게 들어와 앉아 있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한 선배는 ”...우리는 잡혀가 본적은 있지만 목숨을 건 적은 없어....“라며 내게 ”...너는 (운동에)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나?..“라고 대놓고 질문했고 나는 ”없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랬다. 숨이 헉헉 차오르듯 미친 듯이 달려보지도 나도 할만큼 했어라며 호기를 부릴정도의 ‘땀’은 내겐 없었다.

 갓 스무 살 시절 거리에서 새롭게 인간의 존엄함과 평등 부정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배우던 나는 어렸고 세상을 다 몰랐지만 아는 것만큼은 실천하려 했다. ‘민주’, ‘평화통일’, ‘민중’이라는 가치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최루탄 빗발치는 속에도 '이것이 옳다‘는 확신과 진정성이 있었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목숨한번 걸어보지 못한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활동가로 나의 ’진정성‘을 들여다본다.

 나는 이제 웬만해서 감동하지 않는다. 오월의 눈부시게 맑은 하늘에 열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결의’하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모인 집회에 참가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고 연대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기보다, 얼마나 모였나? 왜 이렇게 밖에 집회기획을 못할까? 라며 속상해하고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깃발에 내 몸도 묻어가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거치면서‘아고라’를 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같은 촛불시민으로 연대의식을 가지면서도 ‘아고라’의 모든 내용과 방법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가진‘분노’와 ‘진정성’은 내겐 부끄러움이었다. 밤을 새워 거리에서 토론하며 한나라당 앞에서 촛불을 밝힌 그들에게 나는 한 걸음더 다가가지 못했다.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무대위의 사회자로 함께했지만.... 내겐 정말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절절함’이 있는가? 20년이 된 나의 ‘관성화된 정의’는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문한다.

 다수 시민이 일정조차 알지 못하는 시민대회를 진행하며 부정의한 권력과 자본에 목소리를 높였고, ‘비상’하지 않은 자세로 비상시국회의에 동참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하며, 실력과 전문성을 갖기 위한 노력은 미미하며, 차이를 인정한 존중과 진정성과 책임성이 바탕한 연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회의’는 많지만 ‘소통’이 부족하고 ‘평가’는 있지만 ‘성찰’이 부족하다.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 보다 있는 사람들이 더욱 합심하지 못해서 일을 잘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을수는 없다’는 당위에 억지로 몸을 끼워맞추며 정작 자신은 누구 한명에게도 긍정적 가치의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자화상이고 또 진보와 민주를 염원하는 우리들의 한 단면이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이 길이 정의로운 길이고 만민평등의 길이고 평화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라면 시간을 늦추지 말고 우리는 ‘진화’해야 한다. 모든 껍데기를 버리고 알멩이만으로 발가벗은 채로 나서야 하지 않겠나? 내세운 뜻이 ‘정의’라고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의가 진보가 민주가 올바른 주장만으로 가능했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시간표를 받아든 진보민주평화 진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이 흘러 나온다. ‘좋은 정부를 세우자’, ‘좋은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자’, ‘그래서 좋은 세상으로 가는 디딤돌을 만들어 보자’는 당위는 앞서 말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그대로 두고 현실화 되기 힘든 일이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너른 틀을 짜고 힘을 모으는 일이 ‘당위’로만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신뢰, 단체와 단체간의 신뢰와 세상을 잡아먹을 듯한 뜨거운 에너지가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관계외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진화’를 위한 진지하고 성실한 사색이 필요하다.

 길 위에 멈추어 서 있는 나는 여전히 아프다. 앞으로도 이 길을 갈 것인지, 다른 길을 찾을 것인지, 물러설 것인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을 계획하고 아픈 것이 아니고 그냥 아픈 것이기 때문에....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신성한 주권자들 세상을 바꾸는 민중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보다 더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와 의지다.

 세치 혀가 아니라 내가 삶으로 답해야 할 몫이다.

   





[2010 송년 ⑧] 오택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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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
(121.XXX.XXX.240)
2010-12-30 20:35:20
잘 읽었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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