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시민 3만여명 '의무급식' 요구를 짓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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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급식조례> '의무' 없는 수정안 만장일치 통과 / 시민사회 "죄값 치를 것...계속 투쟁"


의사봉을 두드리며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이재술 대구시의회 의장(2012.9.20.대구시의회 본회의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의사봉을 두드리며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이재술 대구시의회 의장(2012.9.20.대구시의회 본회의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민 3만여명의 이름으로 제출한 '친환경 의무급식 조례안'이 결국 의무 없는 '권고수준'의 수정안으로 시의회를 통과했다. 시민단체는 "오늘 시의회는 죽었다"며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대구시의회는 9월 20일 오전 본회의를 열고 '대구광역시 친환경 의무급식 지원 조례안'에 대한 행정자치위원회 수정안인 '대구광역시 친환경 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을 토론이나 의원 질의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자리에는 시의회 전체 의원 33명 중 이재술 의장을 포함한 30명이 참석했고, 김범일 대구시장과 채홍호 기획관리실장, 우동기 대구시교육감과 성삼제 대구시부교육감도 함께했다.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모두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안' 통과를 찬성했다(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모두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안' 통과를 찬성했다(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누리당 소속 이재술 시의회 의장은 본회의를 개의하면서 '의무급식 수정 조례안'을 표결 처리에 붙였고, 의원 전원이 '찬성'하자 즉시 수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대구시에 제출된 '의무급식 조례안'은 제정 수위와 제정 여부를 놓고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시의회간 대립을 이루다 9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러나, 시의회는 행자위가 안건심사(9.11)에서 지자체의 의무를 비롯한 대부분 핵심 조항을 삭제하거나 변경한 수정 조례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결국, '친환경 의무급식'은 '친환경 학교급식'으로 변경됐고, '급식에 사용되는 모든 경비를 국가나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부담한다'는 조항과 '지원금 사용내역 공개' 조항이 삭제돼 지자체를 강제할 수단이 사라지게 됐다.  

또, '시장이 급식지원센터를 설치해 급식재료의 생산과 수급을 운영하고 집행한다'는 조항은 '구청장과 군수가 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경우 시장은 행정적, 재정적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변경돼 시장 재량에 맡겼고, '급식경비, 지원방법, 지원규모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심의위원회'는 '심의' 기능만 부여해 실질적인 '의결' 권한을 제한했다.  

본회의에 참석한 김범일 대구시장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본회의에 참석한 김범일 대구시장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게다가, 시의회는 이날 아침 "수정 조례안 원천무효, 본회의 부결"을 촉구하며 시의회 앞에서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던 '친환경의무급식 조례제정 대구운동본부'의 농성장을 경찰을 동원해 강제로 해산시켰고, 오전 10시에 예정된 본회의 시간을 사전 고지 없이 30분 앞당겨 시민 방청 없이 진행시켰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야당은 한 목소리로 "수정 조례안은 원천무효"라며 시의회를 비판했다.

'친환경의무급식 조례제정 대구운동본부'는 성명서를 통해 "9월 20일은 대구시민에게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누더기 수정안을 통과시킨 시의회는 시민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당색을 갖고 희망찬 대구를 입에 올리는 부자연스러운 행태가 극에 달했다"며 "시의회는 완전히 비판과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질타했다.

'시의회는 죽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 중인 시민단체(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의회는 죽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 중인 시민단체(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민주통합당 대구시당도 성명서를 통해 "시민들이 힘들게 청구한 조례안을 시의원들이 난도질하고 대폭 수정한 것도 모자라 질의나 토론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며 "불통과 권위만을 보여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도 논평을 내고 "시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의무급식 주민조례를 무용지물로 만든 시의회는 죗값을 치를 것"이라며 "대구시와 교육청, 시의회는 위선, 아집, 소통불능으로 본인들의 위치를 지킬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전형권 대구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오늘 시의회는 시민 방청도 불허하고, 평화적인 단식 농성장도 강제로 해산시키더니 결국 만장일치로 누더기 조례안을 가결시켰다"며 "이는 시민을 우롱한 것이자, 민주주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재식 대구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오늘 시의회는 죽었다"며 "상실감을 느껴 다른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시의회 안에서 본회의가 진행 중인 시각, 시의회 입구에는 시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의회 안에서 본회의가 진행 중인 시각, 시의회 입구에는 시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2012.9.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반면, 김원구 행자위 위원장은 "조례 원안은 지방자치법상 시장에게 있는 예산 의결권과 편성권, 학교급식법 등의 상위법을 침해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자체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원안을 제정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시의회는 본회의를 통과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조례안을 대구시로 넘겨야 하며, 대구시는 조례규칙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심의를 마친 뒤 20일 이내에 조례안을 공표해야 한다. 그러나, 공표한 날로부터 곧바로 조례안이 발효되는 다른 조례안과 달리, 이날 통과된 수정 조례안은 2013년을 시행 시기로 명시해 내년 1월 1일이 돼야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한편, '친환경의무급식 조례제정 대구운동본부'는 21일 오후 김원구 행자위 위원장 자택 앞에서 '수정 조례안 원천무효' 집회를 열고, 같은 날 저녁에는 대표자 회의를 갖고 운동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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