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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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더 이상 분노와 절망으로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절망과 분노

대선 이후 많은 지인들한테서 무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멘붕’이라는 말이 오고가는 인사 속에 자주 등장하고, ‘힐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세밑 덕담처럼 회자된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손가락 힘이 자주 풀리고, 잇따라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는 어쩌면 너무도 한가한 것일는지 모른다. 대선 결과가 곧 생사의 갈림길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분들 앞에서 나의 한가한 넋두리 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선이 끝난 후 노동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고 있다. 21일 한진중공업 노조원 최강서 씨, 22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 씨, 민권연대 최경남 씨, 25일 외대노동조합 위원장 이호일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통한 마음으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단언컨대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과 이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약자들의 생활고와 불안감, 사측의 계속된 압박과 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다. 

박근혜 당선자, 노동자들 죽음에 답해야

지금 이 땅의 노동자들은 유례없이 처참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노조는 하나하나 해체되고 있고,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소송을 통해 막고 있다. 이런 처참한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크레인 위로, 송전탑 위로 올라가 외치지만,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죽음에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5년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에서 박근혜 당선자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당선자가 주장한 ‘100퍼센트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하루빨리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테이블을 만들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평택으로, 울산으로 달려가, 이 추운 겨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송전탑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그 분들의 안전과 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10만 명당 31.2명이다. OECD 국가 평균 자살률 11.3의 2배를 넘어 3배에 육박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점이 이렇게 높은 자살률을 낳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살아가기가 너무 팍팍해서가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지켜보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는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박근혜 당선자 스스로 ‘통합’이라는 자신의 공약이 빈 말이 아니었음을, 지금 당장 행보로써 보여주어야 한다. 

연대하고 행동하자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고 힘없는 우리들끼리의 연대이다. 함께 버티고 연대하면서 같이 이 시간을 살아내자. 그 누구도 더 이상 분노와 절망감으로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함께 살자.

결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물론 중요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날선 언행을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태도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혹은 전화기를 들고 끝도 없는 언설의 덫에 매달리지 말고, 가장 가까운 농성장, 투쟁의 현장을 찾아가자. 가서 언 손을 함께 잡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자. 그런 작은 행동 속에서 다시 희망의 불씨를 찾아나가자. 

유신독재 하의 엄혹한 겨울, 1978년 새해를 맞으며 한 시인이 불렀던 그때의 시를 다시 꺼내 읽는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지금 우리 앞의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속의 불씨를 지켜내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정희성

새벽이 오기 전에
나는 머리를 감아야 한다
한탄강 청청한 얼음을 꺼서
얼음 밑에 흐르는 물을 마시고
새벽이 오기 전엔
얼음보다 서늘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저 어질머리 어둠에 불을 지피고
타오르는 불꽃을 확인해야 한다
얼음 위에 불을 피우고
불보다 뜨거운 마음을 달궈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나는 보리라
얼음 위에서 어떻게 불꽃이 튀는가를
겨울의 어둠과 싸우기 위해
동지들의 무참한 죽음과
보다 값진 사랑과
우리들의 피맺힌 자유를 위해

나는 보고 또 보리라
불이 어떻게 그대와 나의
얼어붙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저 막막하고 어두운 겨울벌판에서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아아 눈보라 채찍쳐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 정희성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비, 1978년)에서  







[변홍철 칼럼 18]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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