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배달 40년..."누군가에게 따뜻한, 얼마나 뿌듯해"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2.1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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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석(63)씨 / 한 장에 150원 남아..."나보다 가족이 먼저니까. 어떤 부모라도"


허리를 숙여 까만 연탄 4장을 집는 손길이 바쁘다. 집게로 연탄을 들고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빨강 화덕 옆 연탄 탑은 높아져만 갔다. 장갑을 낀 채 얼굴을 한번 훔치자 까만 연탄재가 볼에 묻었다. 장갑을 벗어 볼을 닦는 손끝은 오랜 세월 박힌 재 때문에 이미 검게 물들었다.  

14일 아침 7시 30분. 대구 북구 고성동1가 낮고 허름한 주택이 즐비한 골목길 사이로 하얗게 변한 연탄재들이 늘어섰다. 가정집 환풍기와 굴뚝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대구에서 40년째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김대석(63.대구 동구 율암동) 아저씨는 이날 아침 7시부터 연탄을 배달하기 위해 이 동네를 찾았다. 아저씨의 1톤 트럭에는 연탄 600장이 빽빽하게 실렸다. 

"2월은 연탄 비수기지. 날씨가 점점 풀리니까...10월부터 11월까지 많이 팔리고 2-3월은 적게 팔리고. 날씨가 추워야 돈을 많이 버는 셈이지. 그래서 연탄배달부들은 다 두 달 인생이야"  

아침부터 연탄을 배달하는 김대석씨의 뒷모습(2013.2.14.북구 고성동1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침부터 연탄을 배달하는 김대석씨의 뒷모습(2013.2.14.북구 고성동1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복잡한 골목길은 미로 같았다. 아저씨는 몇 분 간 길을 헤맸다. 어느 다세대 주택에서 백발의 노인이 "여기"라고 손을 흔들어 겨우 배달할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골목이 좁아 대문 앞까지 트럭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트럭을 골목 어귀에 세우고 수레를 꺼내 연탄을 배달해야 했다. 먼저, 조수석에 있던 시커멓게 변한 장갑 두 켤레를 겹쳐 끼고 집게를 들어 집 구조를 확인했다. 

한 아주머니와 할머니, 아저씨가 사는 4칸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주문한 연탄은 모두 400장. 아저씨는 7시 40분부터 9시까지 대략 1시간 30분 동안 연탄을 날랐다. 모든 연탄을 직접 집게로 들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아저씨는 수십 번도 더 허리를 굽혔다 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연탄이 깨지기 때문에 발걸음도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이 동네는 양반이지. 높고 가파른 곳에 배달할 때는 얼마를 애를 먹는다고. 대부분 형편이 좋지 않은 곳들이라 소량이라도 배달을 가기는 하는데 참 그 사람들도 나도 서로 힘들지? 그래도 겨울 내내 누군가한테 따뜻한 연탄 1장이라도 배달했으니 얼마나 뿌듯한지...그 재미는 있어"

트럭에서 연탄을 내리는 김 아저씨(2013.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트럭에서 연탄을 내리는 김 아저씨(2013.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번 정도 오가던 아저씨는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수레를 멈춰 세웠다. 양쪽 무릎을 잡고 퉁퉁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작년에 수술한 양쪽 무릎 관절이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장당 3.65kg하는 연탄을 매일 수백장에서 수천장까지 나르다 보니 허리는 굽었고 무릎 연골은 닳았다. "직업병이지. 약을 안먹으면 버틸 수가 없어. 그래서 연탄배달부들은 허리도 다리도 다 굽었어" 아저씨가 말했다.    

40분정도 골목길에서 대문까지 수레로 연탄을 모두 실어 날랐다. 이번에는 대문에서 주택 안까지 배달을 이어갔다. 아저씨는 마당 한구석 연탄화덕 옆 바닥에 동그랗고 까만 연탄자국을 빠른 눈짓으로 확인하고 다시 연탄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입김도 진해졌다. 추위에 맑은 콧물까지 흘렀다. 연탄 400장이 아저씨 키 높이만큼 쌓이자 배달이 끝났다.

아저씨는 장갑을 벗고 옷을 털어냈다. 햇빛 사이로 검은 재들이 흩날렸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차에서 테이프까지 꺼내 재를 닦았다. 까만 재들이 끊임없이 묻어났다. 사용한 장갑은 다시 차에 던졌다. 까맣게 변한 장갑 4켤레가 나란히 늘어섰다. "장갑은 이틀 밖에 못써. 연탄재가 독해서 몇 번 쓰면 심하게 닳고 헤져. 아끼다가 손만 버린다니까"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김 아저씨가 한 다세대 주택 연탄화덕 옆에 연탄을 쌓고 있다(2013.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 아저씨가 한 다세대 주택 연탄화덕 옆에 연탄을 쌓고 있다(2013.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문을 향해 "배달 끝났어요"라고 외쳤다. 한 아주머니가 미닫이문을 열고 나와 "수고하셨어요"라며 20만원을 건넸다. 아저씨는 6만원만 지갑에 넣고 나머지 14만원은 봉투에 담아 윗옷 주머니에 넣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연탄공장이 모든 배달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변경해 물건 값을 지불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당 500원 하는 연탄 값 중 350원은 공장에 줘야 물건을 떼와 배달을 할 수 있다. 자동차 기름 값과 식비도 개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일인데 제일 천대를 받는다. 장당 150원 벌어서 누구 코에 붙이나. 연탄배달은 돈벌이가 안된다. 벌어서 약값, 밥값, 기름 값으로 다 나간다"고 아저씨는 혀를 찼다.  

오전 10시. 아침 배달을 마친 아저씨는 연탄재를 수거하기 위해 수성동1가로 이동했다. 폐업한 오락실 주인이 연탄재 500장을 치우는 대가로 일당 3만원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라도 벌어야하지 않겠나. 일도 별로 없는데..."라며 씁쓸히 말했다.

폐업한 오락실 계단에 쌓인 연탄재를 보는 김 아저씨(2013.2.14.수성동1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폐업한 오락실 계단에 쌓인 연탄재를 보는 김 아저씨(2013.2.14.수성동1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차로 이동하는 중 아저씨는 쌍화탕 한 병과 관절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삼켰다. 차 유리창에는 무릎 관절에 좋다는 치료방법과 치료사 전화번호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어깨 너머로 연탄재만큼 검은 아저씨 손끝과 장부, 유리창, 시트도 보였다. "잘 안지워져. 코랑 귀에서는 계속 검은 게 묻어나. 그래도 연탄배달부만큼 깨끗한 사람들도 없어. 매일 씻으니까"라며 크게 웃었다.  

경남 거창군이 고향인 아저씨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19살에 군대를 갔다. 제대 후 부산 합판공장에서 일했지만 적은 월급과 과중한 노동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를 전전하다 70년 초 대구 동구 율암동에 있는 한 연탄공장 배달부로 취직해 정착하게 됐다.

8년 동안 열심히 연탄을 배달했다.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전이라 연탄은 불티나게 팔렸다. 새벽이나 심야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리어카를 끌고 배달을 다녔다. 그러나, 난방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연탄 수요가 줄어들었고, 공장은 급기야 모든 배달부를 개인사업자로 변경했다. 아저씨는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1톤 트럭을 사서 장사를 시도했다.

연탄재로 검게 변한 장갑 4켤레(2013.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연탄재로 검게 변한 장갑 4켤레(2013.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다시 연탄공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돌봐야할 가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매달 월급을 받던 공장 노동자와 달리 개인사업자로서 연탄배달부의 여름철 수입은 '0원'이었다. 결국, 트럭을 갖고 여름철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아저씨는 이삿짐 배달을 하기로 했다. 봄과 여름에는 이삿짐, 가을과 겨울에는 연탄 '배달부'가 된 것이다.

"참 그때는 못살았지. 애들 입혀야지, 가르쳐야지, 아프면 병원도 가야지...키울 때 진짜 힘들었지. 근데 먹여 살려야지 나보다 가족이 먼저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나 아닌 어떤 부모라도 그렇잖아"

이제 슬하의 2녀1남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두 딸은 결혼 후 출가했고 막내아들도 직장을 구했다. 자식들은 매일 '검댕'을 묻히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 아저씨는 "말처럼 쉽지 않지. 마음은 고맙지만 현실이 안그래. 연탄공장에 가면 80대 노인도 배달해. 아줌마들까지...나이 많은 사람은 이거 아니면 먹고 살게 없어. 경비 하고 싶어도 거기도 자리가 없다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릎이 버텨주는 한 힘닿는데 까지 해야지. 아직 연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잖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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