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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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저 | 돌베개 | 1998)


어렴풋이나마 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이다. 길이라는 것이 여럿의 발걸음이 내어놓은 결과이면서 아무리 큰 길이라도 계속 지나지 않으면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책은 언제나 삶의 새로운 길을 내딛는 용기와 많은 이들이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지혜를 준다는 것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 스무몇해 전 그즈음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저 | 돌베개 | 199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저 | 돌베개 | 1998)
그 당시 대부분의 독서가 선배들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연한 것이었다. 동아리방 책장에서 건져 올린 의외의 수확이었다. 잠시 읽다가 가방에 넣게된(?) 88년 초판본은 그 이후로 영인본이 나오면서 출판사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20년이 넘게 우리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책도둑의 심리적 죄책감으로, 그 후 얼마동안 생일날처럼 후배들에게 선물할 기회가 생길때마다 사회과학서점 이름으로 포장된 이 책을 곧잘 후배들에게 들이밀었다. 거리와 광장이 길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젊은 나에게 너의 길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사색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책 속의 편지에서 표현한 옆 사람의 체온마저 증오로 변화시키는 여름징역살이의 ‘부당한 증오’는 스무해가 지난 지금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감옥 밖의 일상이 되었다. 그 증오는 폭력과 살인이 되어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당시 젊은 내가 갇혀있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뛰어넘지 못하고 중년을 향하면서 나무는 낙락장송이나 명목이 나무의 최고의 형태가 아니라 나무의 완성은 숲이라는 깨달음조차도 잊어버린 것이 그 원인이리라.

변화는 중심부에서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심은 자기 존재의 유지를 위해 중심으로 동화(同化)하려는 탄탄한 문맥이 존재할 것이다. 변방과 마이너리티의 창조성으로 변화의 숲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부당한 증오’의 시대를 변화시킬 희망이 될 것이다. 변화를 갈망했던 무리들도 중심부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기준을 맞추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엉망이 되었다.

다시 스무몇해 전, 한 청년이 책을 읽고 타자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해서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길은 목표나 성과 따위가 아니지 않는가. 길은 멈춤으로써 더 이상의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진실 속에서 늦었지만 다시 함께 가자고 말하는 것. 동화(同化)가 아니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길, 힘 좀 보태달라는 구걸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나도 변화하는 것. 함께하면 길은 따라 오는 것.
 
 
 





[책 속의 길] 96
이정화 / (주)상상공작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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