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생의 죽음과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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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죽어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경쟁과 서열화의 사슬을 끊어야


생의 꽃봉오리가 채 영글기도 전에

지난 7일 수성구 범어동 한 아파트 13층에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매번 그랬지만, 참담한 마음에 며칠째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몸집이 작았다는 그 친구가, 자신이 사는 10층을 지나 13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짐작해 보려고 하면, 손발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유야 어쨌든, 아름다운 생의 꽃봉오리가 채 영글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어린이의 명복을 먼저 빕니다. 부디 슬픔과 아픔,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뛰고 노래하며 웃을 수 있기를… 그 어린 나이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판단해 버리도록 만든 이 끔찍한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부디 용서해 주기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사회, 청소년 자살률이 전세계 1위인 나라. 이런 사회, 이런 나라에서 소위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부모라는 작자들이, 지금 이 시각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고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범죄라는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더구나 대구 수성구가 이런 참담한 일이 전국에서도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번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도, 해당학교나 교육청도 다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사건의 경위와 원인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불행이 유독 수성구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이 이 지역의 높은 사교육열, 지나친 경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쟁 같은 경쟁의 지옥도

가령 이번에 세상을 떠난 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학생현황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 지역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이 학교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올라가면서 학급수와 학생수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6학년은 5학년에 비해 5학급이 더 많고, 학생 수는 무려 140명 정도 더 많습니다.

사회 전반의 저출산 추세나 다른 요인으로는 이 학교의 저학년과 6학년 학생수의 가파른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소위 대학입시에 강한 ‘명문고’들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 학군으로 진입하기 위해, 5학년과 6학년 초에 전입해 오는 학생들 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이것은 결국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사실상 치열한 입시경쟁이 일상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이번에 일어난 슬픈 일은 과연 이런 현실과는 무관한 것일까요? 

물론 이것은 단지 수성구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지역들은 또 수성구를 ‘준거집단’ 삼아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까요. 다른 학군의 학교와 상위권 학생들은 수성구 학생들을 따라잡기 위해 가랑이가 찢어질 노릇이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이중 삼중의 열패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학생간, 학교간, 학군간 서열화와 교육불평등, 전쟁 같은 경쟁의 지옥도로부터 어느 한 군데라도 자유로운 곳이 있습니까?

한 초등학생의 죽음을 접하고, 저는 수성구에 사는, 그리고 대구에 사는 동료 이웃들, 책임감을 공감하는 부모들에게, 그리고 교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런 사회를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요? 이런 비극이 내 아이에게만 일어나지 않으면 상관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저는 또 한편으로, 이런 질문과 고민이 어른과 부모들, 교사들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화한 질문과 해법은 반드시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웃의 어린이들, 지역의 청소년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슬픈 일들을 동료의 문제, 친구의 문제, 그리고 나아가 바로 내 문제라고 느끼고 있나요? 이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질문들, 아니 어쩌면 너무나 고통스럽고 불편해서 피하고 싶은 질문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편함과 고통, 두려움을 이겨내고 질문을 직시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함께 손잡을 수 있는 이웃과 동료가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질문 속에서 비록 희미하나마 어떤 답이 보인다면, 그것을 움켜쥐고 함께 실천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현실에 큰 타격을 줄 수 없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행동일지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부모들의 참회를 위한 작은 촛불켜기 같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각자의 슬픔과 고통을 고백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려는 작은 광장을 우리 속에, 우리 마을 가운데에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이 곧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치’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경쟁? 무식한 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이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그 끔찍한 경쟁과 서열화, 교육불균형을 국가가 나서서 또 다시 부채질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오는 6월 25일, 전국의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시행된다고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어느 지역 교육청은 일제고사를 앞두고 10억원대 ‘격려금’을 뿌렸다고도 하고, “시험 잘 치면 상금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답니다. 중3인 딸아이 얘길 들어보니, 안 그래도 기말시험 앞두고 스트레스 받는데 일부 교사들은 일제고사 점수를 높이기 위해 ‘예상문제’를 억지로 풀게 해서 학생들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하네요. 교사들도 학생들도 할 짓이 아닙니다. 또 다른 기사를 보니, 심지어 좋은 성적을 내려고 ‘찍기 요령’을 가르쳐주는 교사들도 있다고 하니, 일제고사에 따른 학교현장의 파행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끝없는 경쟁은 어린 학생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마저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경쟁을 줄이려면 우선 일제고사부터 없애야 합니다. 집집마다 사교육비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도 서민들이 사교육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일제고사부터 없애야 합니다. 학생과 학교, 지역까지도 줄을 세우는 서열화와 교육불균형의 현실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밝히고 있는 헌법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서열화와 교육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일제고사를 없애는 것입니다. 일제고사는 교육적인 면에서도 전혀 효과가 없다고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점수 따기 반복학습과 무식한 암기교육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일제고사는 없어져야 합니다.

저는 지난 3월 7일 일제고사일에 대구 수성구의 한 중학교 앞에서 일제고사 반대 일인시위를 했습니다. 오는 6월 25일에도 여러 교사, 학부모들과 동시다발 일인시위에 함께 할 예정입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초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네, 그러나 모두들 쉬쉬하며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이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에 바늘 끝만한 균열이라도 내는 것이, 부모이면서 보잘것없는 ‘글방선생’인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은 행동이, 앞에서 말씀드린 “각자의 슬픔과 고통을 고백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려는 작은 광장을 우리 속에, 우리 마을 가운데에 만드는 일”에 기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변홍철 칼럼 22]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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