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밀양] 의료진 방문도 막아…인권위 요청후에야 출입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 입력 2013.10.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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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과 식수, 의사 출입은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것"... 희망버스 참가자들, 현장 접근 못한 채 귀경

 
밀양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탈핵희망버스’가 출발했지만, 경찰이 '외부세력'이라며 통제에 나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밀양 주민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갔다. 또 의료봉사를 위해 공사현장을 방문한 의료진 역시 출입이 쉽지 않아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저녁 8시께 서울 송파구 종합운동장에서 전세버스2대가 밀양으로 출발했다. 버스에는 밀양의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탈핵희망버스' 참가자 85명이 탑승했다. 버스에는 송전탑 반대농성을 진행 중인 주민들에게 전달할 초콜릿, 과자, 핫팩, 비옷, 돗자리 등도 있었다.
    
126번 공사현장으로 향하던 희망버스 참가자 30여명이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126번 공사현장으로 향하던 희망버스 참가자 30여명이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5일 오전 2시가 가까워서야 밀양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109번 공사현장, 126번 공사현장, 금곡헬기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각 현장에서 송전탑 반대를 위해 농성중인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특히 109번 공사현장과 126번 공사현장은 산 속에 위치해있어 구호물품 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09번 공사현장, 126번 공사현장으로 출발한 참가자들은 공사현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109번 공사현장으로 출발한 참가자 40여명은 7시께에 현장으로 출발했지만,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경찰에 막혔다. 이들은 구호를 외치는 등 2시간가량 경찰과 대치상황을 이어갔지만 결국 공사현장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농성중인 주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었던 물품 역시 전달하지 못했다.

126번 공사현장으로 출발한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참가자 30여명은 오전 7께 공사현장으로 출발했지만 7시 30분에 경찰에게 막혔다. 참가자들은 "통행을 막는 것도 폭력", "할머니들이 보고싶다"고 말했으나 길을 열리지 않아, 기자 두 명과 서울교구 소속의 수녀 한 명만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남은 참가자들은 산길 등 우회로를 통해 농성장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경찰에 가로막혔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경찰에 고립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가자는 "산길에 올라가니 경찰 50명 정도가 죽 몰려왔다. 오도 가도 못하고 비탈길에 갇혀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2시간가량 대치 후에 금곡리 금곡헬기장으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이 농성장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묻자, 경찰은 외부세력은 공사현장 근처에 진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여기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막지 않는다"면서 "응원하러 와서 선동하는 행위를 수년간 지속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주민이 아닌 분들은 다 막는다"라고 말했다.
    
'길벗 한의사회' 소속 한의사가 126번 공사현장 농성장에서 주민들에게 침을 놓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길벗 한의사회' 소속 한의사가 126번 공사현장 농성장에서 주민들에게 침을 놓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그러나 경찰의 말과 달리, 경찰은 의료봉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의료진까지 통제했다. '길벗 한의사회' 소속 한의사가 공사현장을 방문했지만 경찰은 한전 소속 의사가 현장에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통제했다. 이에 한의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도움을 청했고, 4시간이 지나서야 126번 공사현장 농성장에 방문할 수 있었다.

공사현장 옆 농성장에서 만난 김아무개 한의사는 "한의사 면허증도 제시했고 전쟁터에서도 이러지 않는다는 말도 했는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면서 "지금까지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웬만한 농성현장에 다 가봤지만 의료진까지 차단한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 소속 의사가 있다는 경찰의 명분에도 "지금 주민들이 한전쪽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 날 김옥수(80)씨는 지나친 스트레스로 혈압이 200-100까지 상승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한전 소속 의사가 이 날 오전부터 현장에 있었지만 김씨는 한전 소속 의사에게 상담조차 받지 않았다. 김 한의사는 "제가 오지 않았다면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며 "의료진의 자유로운 접근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아쉬움과 분노를 표했다. 성공회대학교 1학년 김고은(20), 강아무개(20)씨는 "할머니들께 실제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엄청 죄송하다.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트위터아이디 badromance65씨는 "어르신들 얼굴 보는게 목적이었는데 못 보고간다"며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이 5일 오후 밀양 금곡리 금곡헬기장 앞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이 5일 오후 밀양 금곡리 금곡헬기장 앞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또 이들은 자신들을 '외부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경찰과 언론 등을 비판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오진호(31)씨는 "송전탑은 밀양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밀양 주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마음을 보태는 것이 외부세력이라면, 우리는 대체 누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밀양의 친구들' 소속 이종현(30)씨는 "밀양주민 입장에서 진짜 외부세력은 주민을 분노하게 만드는 경찰과 언론"이라고 말했다.

인권침해감시단의 이은정 활동가는 경찰의 과잉통제가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주민들이 고립감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로 힘을 얻으신다"면서 "(경찰이)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음식물과 식수 등의 반입, 신뢰할 수 있는 의사의 출입은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2013-10-05  21:52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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