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과 청도 삼평리의 한가위

평화뉴스
  • 입력 2013.09.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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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추석 직후 송전탑 공사 재개 예상, 전국적 연대 절실


한가위가 며칠 남지 않았다. 시절이 하도 수상하고 물가는 비싸, 서민들 형편에 명절 다가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가위는 한가위다.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자매들 얼굴을 이럴 때 잠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뜸했던 지인들과 명절 핑계로 문안인사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푸근해지고, 또 그럭저럭 살아갈 힘들을 얻곤 한다. 한가위 보름달이 솟는 것을 바라보다 보면, 어둡고 막막하던 일상의 삶에 또 다시 작은 희망의 등불이 켜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번 한가위를 풍성하고 흐뭇한 명절은커녕, 한바탕 전쟁을 준비하는 비장한 결의의 시간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8년 동안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산 위의 움막과 농성 텐트에서 살아야 했던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다.

지난 11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밀양을 방문했다. 주민들은 여러 언론들이 “추석 직후 공사 재개”를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총리의 밀양 방문이 “공사 직전에 공사를 막을 수 있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호소했다.

밀양 주민들의 호소

주민들 대다수는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살던 곳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얼마의 돈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주민들이 입게 될 재산의 피해, 거대한 철탑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에는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밀양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 그랬기 때문에 송전탑 경과지 1,584세대 주민 중에서 무려 1,813명이 보상 반대 서명에 참여한 것이다.

주민들이 8년째 공사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밀양 구간의 노선이 너무나 잘못 그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밀양 구간은 다른 지역과 달리 민가와 농토에 너무 가깝게 설계되었다. 밀양 구간에서는 총 20개 마을 이상이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는다.

또 지난 8년간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현장 인부들로부터 당했던 인권유린, 욕설, 폭행, 성폭력 사태, 용역 투입으로 인한 분신 사망사건이 있었다. 주민설명회 참석자는 전체 경과지 주민의 1퍼센트 수준에 불과했다. 단일 사건 최대의 고소 고발 사태가 벌어졌고, 지금도 26명에 대해 1일 100만원의 벌금을 청구하는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소송이 들어와 있다. 이런 부분들이 주민들을 계속 자극해왔다.

한국전력은 추석 직후에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 그러나 공사 강행의 명분이 없다. 신고리핵발전소 3호기의 완공시기는 부품성적서 위조 사건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부품 성적서 위조로 인한 공사 지연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2014년 8월까지 계통 병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2014년 여름까지 화력 발전소 등이 다수 준공될 것이기 때문에 전력 수급의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주민들은 판단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장서 굴착기에 몸을 묶고 눈물 흘리는 할머니(2013.5.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밀양 송전탑 공사장서 굴착기에 몸을 묶고 눈물 흘리는 할머니(2013.5.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공사가 다시 강행될 경우, 물리적 충돌로 인한 인명 사고이다. 지난 6월,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밀양 주민들의 건강진단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이 무려 69.6퍼센트나 되었다. 9.11 테러를 겪은 뉴욕 시민의 4배 수준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계속 막다른 곳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8년간 싸워온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이 주민들을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게 하지나 않을지, 그것이 너무나 두렵다. 

어떤 보상으로도 송전탑으로 인한 고통을 상쇄할 수 없다. 한전 자료에 의하더라도 신고리 3호기까지는 기존 선로의 용량을 증대해서 송전할 수 있다. 밀양 송전탑을 지중화하는 방식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심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밀양 구간을 345kV로 지중화하면 신고리 4호기까지 송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한전도 인정하고 있다. 2025년까지 설계 수명이 종료되는 고리 1~4호기를 빼고 나면 아직 건설되지 않은 신고리 5~6호기까지도 송전이 가능하다. 

주민들이 쓴 호소문의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보자.

"존경하는 총리님! 저희들은 공사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다시 산꼭대기까지 힘든 걸음으로 매일처럼 올라다녀야 하는 상황, 인부와 공권력에 맞서 애처롭게 싸우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지 않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밀양 주민들 다수의 목소리는 ‘보상은 필요 없으며, 지금 살던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한결같은 8년 동안의 목소리를 부디 총리께서는 귀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다시 한번 밀양을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총리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한가위가 반갑지 않은 할매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는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정 총리의 이번 방문이 결국 공사 강행을 위한 포석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한전 측은 총리가 밀양을 다녀간 11일 이후 근거 없는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공사 강행을 위한 여론몰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급기야 15일 한전은 “송전탑이 지나는 밀양 지역 마을들의 절반이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한전의 발표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일방적인 것에 불과하다. 주민총회나 주민서명 등의 요건을 갖춘 게 아니라 일부 소수 주민만이 합의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주민들은 이 같은 한전의 여론몰이에 맞서기 위해 16일부터 ‘보상 반대 서명’을 받아서 추석 연휴가 끝나면 발표할 예정이다. 또 공사 재개가 임박하다고 보고 마을별로 공사를 막을 실제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청도 삼평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전은 그동안 밀양 구간 공사 재개 이전에 반드시 청도 구간 공사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 삼평리 농성장에 며칠 전 정보과 형사들이 찾아와서 사실상 공사가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농성장을 지키며 뜨거운 여름을 나야 했던 삼평리 할매들은 한가위가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산을 지키는 삼평1리 할머니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산을 지키는 삼평1리 할머니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의 싸움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힘껏 연대하겠다는 전국의 시민들의 각오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아고라 서명이 이어지고 있고, 전국의 시민들이 ‘밀양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네트워크를 조직해 송전탑 문제의 진실을 알리고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다. 대학생과 청년들의 지지·연대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영남권 민주노총 지역본부들도 이미 연대를 선언하고, 만에 하나 공사가 재개될 경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청도 삼평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8월 15일 ‘삼평리 예비소집의 날’에 모인 대구 경북 시민들의 연대 열기는 맹렬했던 여름의 폭염을 꺾을 정도로 뜨거웠다. 참가자들은 더 이상 삼평리의 싸움이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할매들 한분 한분과 포옹했다. ‘삼평리의 친구들’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는 9월 22일(일)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1차 비상소집’ 행사를 열기로 했다. 힘찬 투쟁의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밝은 달빛 아래에서 삼평리 할매들과 함께 한바탕 신명난 잔치를 열 계획이다.   

밀양과 청도 삼평리의 한가위가 결코 외롭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







[변홍철 칼럼 24]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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