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과 6년 싸움...삼평리,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12.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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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시험송전, 남은 건 소송 80건과 벌금 2억원..."또 다른 시작"


"웅웅 거리는 소리에 잠도 안와예. 아침부터 철탑만 보고 있으예. 보고 있으면 가슴이 막 답답해예"

김춘화(64.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할머니는 29일 아침부터 마을에 들어선 345kV송전탑으로 전기가 흐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철탑이 생긴지 석달이 됐지만 산을 바라보면 여전히 낯설기만하다. 

철탑은 들어섰다. 80m짜리 3개 철기둥 아래 무성했던 은사시나무 숲은 사라졌다. 풍경이 바뀐 자리에는 찬 바람만 몰아칠 뿐이다. 농토를 가로지르는 송전선로로 전기가 흐르자 웅웅대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철탑 아래 할머니들은 지칠줄 모르고 6년째 철탑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기가 흐르는 높은 철탑을 올려다보며 할머니들은 절망하기보다 다시 삼평리의 '희망'을 노래한다.

'송전탑 철거'를 외치는 삼평리 주민들.(2014.12.25) / 사진.<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송전탑 철거'를 외치는 삼평리 주민들.(2014.12.25) / 사진.<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29일부터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의 신경은 곤두섰다. 한국전력이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건설을 끝내고 28일부터 시험송전을 하면서 삼평리로도 송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6년 싸움에도 삼평리에 모든 송전탑이 들어섰지만 주민들은 오늘도 농성장에서 '철탑'과 싸움을 하고 있다.

삼평리 주민들의 2014년은 그 어느 해보다 강렬했다. 한전이 지난 7월 21일 삼평리에 들어설 송전탑 3기 중 마지막 남은 1기인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70대 이상 할머니 10명을 포함한 삼평리 주민 15명은 지난 2009년부터 6년째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벌여왔지만 한전 직원과 경찰병력 등 6백여명의 물리적 열세에 밀려 철탑이 들어서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삼평리 폭력적 송전탑 공사강행 규탄" 기자회견(2014.7.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삼평리 폭력적 송전탑 공사강행 규탄" 기자회견(2014.7.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삼평리 주민들의 싸움은 끈질겼다. 경찰과 한전의 버스를 막고 공사 자재 반입을 중단시키기 위해 트럭과 헬리콥터 아래 드러누웠고, 공사장 앞에 농성장과 컨테이너, 평화공원 등을 설치하고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문화제와 기도회, 집회를 매일 밤 열기도 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만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로 '도와달라' 호소했고, 국회의원들에게도 '공사 중단'을 애원했다. '공사 중단' 촉구 삼보일배도 했고, 공사장에 망루를 짓고 밤을 지샜다. 경찰의 연행과 부상자는 이어졌지만 공사장 앞에 몸을 뉘이며 '철탑만은 안된다'고 외쳤다. 시민단체 활동가, 정치인, 대학생 등 1천여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주민들의 싸움을 응원했다.

경북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 이억조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송전탑 공사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2014.8.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북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 이억조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송전탑 공사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2014.8.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도지사도 국회의원도 주민을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송전탑 반대 주민에게 추석 기간 돈봉투를 돌린 청도 경찰과 한전 직원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옷을 벗고 입건됐다. 그러나 공사는 강행됐고 철탑은 들어섰다. 대도시 주민들을 위해 계획된 경남과 경북의 송전탑에는 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전 후 남은 것은 주민 등 30여명을 상대로 한 한전의 소송 80여건과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 따른 '이행강제금' 2억2천여만원. 소송과 벌금 폭탄은 야속하게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삼평리 성탄절 예배(2014.12.25) / 사진.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삼평리 성탄절 예배(2014.12.25) / 사진.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평리 주민들의 저항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탈핵과 탈송전탑을 위한 착한 에너지 학교', 삼평리 주민 할머니들의 농사를 돕기 위한 '농촌봉사활동', 소송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예술심료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할매학교 시즌2'를 벌일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특히 ▶송전탑 철거 ▶에너지 삼대악법(전원개발촉진법·전기사업법·송변전시설주변지역지원법) 철페 ▶마을 공동체 회복을 촉구하며 삼평리 투쟁 시즌2를 이어갈 예정이다.

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소송 10건에 시달리고 있는 김춘화 할머니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앞으로는 철탑을 뿌리 뽑는 일만 남았다. 우리 주민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내년에도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변홍철 대책위 집행위원장도 "송전탑이 들어섰지만 아직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홍철 / 이보나
변홍철 / 이보나
변홍철 집행위원장은 "공사과정에서 한전과 정부가 보여준 각종 비리에 오히려 송전탑이 명분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면서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더 절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낙관하겠다"고 했다.

이보나 대책위 상황실장도 "내년 봄부터 기지개를 펴고 다시 삼평리의 평화를 위한 송전탑 철폐 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민들은 이미 올해 싸움에서 저항의 정당성은 주민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싸울 것"이라며 "평생 주민들이 일군 땅을 강제로 수용하는 악법을 없애고, 건설된 철탑을 뿌리 뽑는 그날까지 주민들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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