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가 땅의 사람들을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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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 칼럼] 네그리·하트의 제국론과 성주 소성리의 저항


정치적 근대화를 이루려면 그 내부에 토크빌이 주목했던 풀뿌리 민중들의 연대와 공동체가 필요하며 국가의 승리는 불완전해야한다--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군의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 소성리는 인구 백 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다. 경북 산골 마을을 거점으로 글로벌 미사일 방어망을 촘촘하게 구축하려는 미국 군사 제국주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 국적의 전투경찰이 무려 8천명이나 배치되어 마을을 몇 겹으로 포위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맞서 소성리 주민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의 시민들은 현재 사드 배치 기지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상태다.

오늘로 성주 항쟁 300일 째다. 작은 산골 마을과 국가 또는 제국 사이의 전쟁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웃지 못할 일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사드 배치 공사에 필요한 유류를 반입하려는 국방부 당국은 주민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부식 추진 차량으로 위장하여 유류 차량을 진입시키려 했으나 주민들에게 적발된 것이다. 주민들의 수십 배에 이르는 병력이 마을을 둘러싼 엄중한 상황 속에 이뤄진 군 당국의 ‘비밀 작전’은 이처럼 주민들의 힘에 의해 한 편의 소극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고 마침내 주민들은 군 당국으로부터 이 같은 기만 행위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경유를 실은 육군 부식차량을 막아세운 주민들(2017.5.4)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경유를 실은 육군 부식차량을 막아세운 주민들(2017.5.4)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제국과 네이션 스테이트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지닌 채 전 세계를 지배하는 양상과 그러한 상황에서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저항의 양상을 탐구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의 우리말 번역본이 우리 지성계를 매혹시킨 것이 2000년대 초반이지만 미국 제국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이라크 침략 전쟁이 벌어진 것은 불과 2~3년 뒤인 2003년이다. 이론적 담론은 언제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다.

제국의 바깥은 없다는 네그리·하트의 포스트모던 제국론의 근거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동유럽 공산 블록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글로벌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지구적 규모의 제국 주권은 더 이상 이념적 갈등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정의나 인권 보호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수호가 제국 주권의 목적이며, 필요하다면 제국의 주권 행사 방식으로서 전쟁이라는 수단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 수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지구적 제국 주권의 첫 번 째 전제 조건이다. 둘째,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숱한 네티즌들로 말미암아 지구적인 대항 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이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근거는 모두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성립된 근대적인 네이션 스테이트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지구적 제국 주권의 행사나 그에 대한 저항이나 모두 네이션 스테이트의 우회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션 스테이트를 저항의 거점으로 삼아 세계화된 자본에 대항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본의 확장에 기여하여 글로벌 민주주의(다시말해, 대항 제국)의 성립에 장애가 될 뿐이라는 것이 네그리·하트의 주장이다.

지배가 글로벌한만큼 저항도 글로벌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네이션 스테이트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자본이 국경을 넘어 매끄러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여 강력한 규제 완화 등의 친자본적인 국가 정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국가의 행정기능은 입법과 사법 기능을 압도하며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의 모습을 띠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제국의 초월적 권능은 국가의 약화나 우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에 포섭된 강력한 국가의 협조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국의 주요 기능이 전쟁 기계로서의 역할이지만, 이 역시 영토에 대한 국가 주권의 양도를 통해 군사기지 제공 등 적극적인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제국의 군사적 기능 역시 불가능하다.

제국의 확장과 국익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에서 묘사되는 제국의 시대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권력이 지구적 제국 주권에 의해 약화된다 하더라도 국가를 구성하는 네이션의 이해관계를 해쳐서는 안된다. 제국주의와는 달리 제국의 확장은 네이션들의 존재와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진전이 어느 단계를 지나면서부터 네이션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네이션이라는 큰 이름으로 가리워져 있던 노동자, 농민, 여성, 비정규 프리케리어트 등, 네그리·하트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민중들의 삶은 세계화를 추진하는 강력한 정치경제 권력에 의해 피폐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반동 현상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독트린은 결국 다시 부국강병의 논리에 기초한 네이션 스테이트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 부국강병의 논리를 버리지 않는 이상 그 결과는 다시 과거의 제국주의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과거를 다시 반복할 때 역사는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역사적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선 제국주의는 정복의 대상으로서 바깥과 타자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현재 상황이 그러한가?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역할을 지금은 중국이 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화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과 대규모 교역과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거래를 하면서 자본주의 무역 금융 질서를 공유하고 있는 거래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타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미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을 추구하지만 중국을 문명의 타자로서 교화나 정복 대상으로 천명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 일이다. 사드와 x 밴드 레이더라는 무기 체계가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으면서도 명목상으로는 북핵의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 경찰병력과 피켓을 든 소성리 주민(2017.5.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 경찰병력과 피켓을 든 소성리 주민(2017.5.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네그리·하트 류의 제국론이 가능하기 위해서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미국의 제국적 주권의 바탕에는 전 세계적으로 7백 개 이상의 군사 기지를 마치 미국 영토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어디까지나 정의로운 전쟁 수행의 명분을 잃어서는 안되고 미군사기지가 배치되어 있는 개별 네이션 스테이트의 국익과 부합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미국의 군사 행위는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 우리가 사드 배치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드배치가 우리의 국익을 거스른다는 것을 미국과 한국 정부가 공통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이 결정된 직후, 미국의 한 진보 언론의 논평은 사드 배치가 한국의 국익을 훼손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은 미국 정치권과 군 지도자들의 압력에 의해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지정학적 목적을 달성해주도록 한국의 국익national interest을 스스로 해치고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도록 강요받은 결과에 따른 것이다.”(<카운터펀치>, 2016년 8월 16일 자)

제국의 사기(詐欺)와 네이션에 대한 물음

시진핑과 트럼프의 만남 후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잠정적이나마 대화 국면에 접어든 지금, 사드 배치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부조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배치되는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에게 1조5천억원의 청구서를 제시한 상태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런 불합리한 거래를 사기행위라고 지칭했다.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한국의 국익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국면이다. 이런 한미 간의 터무니없는 거래로 한국 국민 중 이득을 보는 사람 또는 세력은 누구인가? 차기 정권이 들어서기 전 사드를 서둘러 배치하기로 결정한 결정권자들이 어떤 절차를 밟아서 어떤 거래를 통해 사드 배치를 실행에 옮겼는지는 차기 정권의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부정과 부패의 의혹을 제외하고는 우리 쪽 손익계산서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번 한반도의 사드 배치 결정은 사실상 무기업자와 무기 거래 브로커의 사적인 거래의 차원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말하자면 국민 주권 매매나 다름없는 일이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글을 끝맺으려 한다. 국익은 영어로 옮기면 “네이션의 이익national interest”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현재의 상황은 국민국가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 모두의 공동체에서 네이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자본주의 체제는 네이션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땅과 사람을 서로 분리시켜 땅을 특정집단의 이익 실현의 자원으로 삼는 체제다. 이른바 원시적 자본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가능했다는 맑스의 진술은 현재진행형으로 바꿔야 사태의 진상을 알 수 있다. 미군 기지에 땅을 공여하는 것도 네이션의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이 곧 국익이라는 믿음을 한국민들은 공유해왔지만 이제 제국주의—제국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며 한미동맹 자체가 장사꾼의 거래로 성격이 바뀌는 지금, 네이션의 휘장 아래 감추어져 있던 물음을 물을 수밖에 없다. 누가 진실로 이 땅을 지켜왔는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땅의 사람들을 땅에서 몰아내 온 것이 근대 역사의 진실이었다면, 그 땅 위에서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진실은 억압되고 은폐된 진실이다. 양들이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과 사드가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은 똑같은 이치다. 그런데 모종의 사적인 거래만 짐작될 뿐 한국민, 즉 네이션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할 물건으로 땅의 사람들을 내몰 지경에 이르러, 우리는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였는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이가 레이더 앞에서 참외를 깎아먹는 시연을 벌이겠다, 기름을 밥이라고 우기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며 그들이 벌이는 웃지못할 소극의 현장에서 정작 밤새 불 밝히며 성주의 소성리를 지키는 이들은 소성리의 주민들과 이 땅의 기층 민중들이다.

네그리·하트의 제국론 3부작 중 마지막 저작으로 나온 <공통체Commonwealth>에 이르러서 두 사람은 근대적 생산관계 안에 대안적 근대성이 실현될 수 있는 어떤 사회경제적 층위를 언급한다. 첫째 땅이나 천연자원 같이 미리 주어진 공유재를 지켜내고 둘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생산수단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공통의 사회관계 또는 삶형태들의 네트워크를 지켜내는 것이 네그리·하트가 꼽는 이른바 대안 근대성의 조건들이다. 사드는 가공의 전쟁 무기들을 파괴하기 이전에 땅의 사람들과 문화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주민들과 전국 각지의 반대자들은 인터넷과 여러 형태의 sns 장치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산골마을 주민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처럼 근대 국가의 작동 원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때마다 보수여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가 결국 업보로 돌아온 것이라며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 일부 네티즌들의 의식은 사드 배치에 대한 저항 운동이 계기가 되어 근대적 네이션 스테이트 체제의 강고함으로 인해 보이지 않던 어떤 다른 삶과 정치 체제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시인 김수상은 이런 인식 전환의 가능성을 공화국의 기초로서 “민주공화군 성주군”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니들이 이 맛을 아느냐?/이 해방공동체의 어묵 맛과/민주공화군民主共和郡 성주군의 떡국 맛을,/소야의 아름다운 벌판에서 온 몸으로 맞는/평화의 첫눈 맛을, 니들은 아느냐?”(“니들이 이 맛을 아느냐? 중에서)






[이승렬 칼럼 4]
이승렬 /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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