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주 "고문과 국가폭력의 피해...치유와 과거청산을 위한 온 사회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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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 간첩조작사건으로 14년 복역...고문과 사상전향 강요
"5,18, 저항했지만 살아남은 죄책감...과거청산은 피해자 치유와 사회적 공감대에서 시작돼야"


"고문과 국가폭력 생존자가 다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노력뿐 아니라 온 사회의 힘이 필요합니다"

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는 14일 저녁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인의협)가 주최한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포럼은 'Beyond Trauma-내가 바라는 세상‘을 주제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시민 30명가량 참석한 가운데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 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 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강 이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가했고, 1985년 5월 '구미유학생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주도로 이뤄진 간첩조작사건으로 독방 수감과 고문을 견디고 14년 6개월만인 1999년 비전향 장기수 중 가장 어린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출소했다.

강 이사는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나는 수협건물에서 총을 들고 싸웠다"며 "목숨을 건져 집으로 돌아갔지만 5.18이후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있어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헤매다가 복학을 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강 이사는 "광주는 제 힘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트라우마의 원천이기도 하다"며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광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2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등 국가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을 치유하는 '광주트라우마센터'(광주광역시)의 초대 센터장을 맡기도 했다. 강 이사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못 하겠다고 했지만 의무와 당위에 따라 센터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는 "안기부가 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했고 지하수사실에서 30여일간 고문을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당한 유학생이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한 간첩조작사건이다. '구미'는 유럽의 한자표기인 구라파(歐羅巴)와 아메리카의 한자표기인 미주(美洲)를 뜻한다. 강 이사는 "유럽이나 미국은커녕, 서울 한번 제대로 가본 일이 없던 제가 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된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 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강용주(57) '진실의 힘' 이사(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 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또 "대구 교도소 보안과장은 나를 독방에 가뒀다. 그리고 2주간 손과 발을 꽁꽁 묶어두고 전향하라고 강요했다"며 "비전향수는 장기수가 많고,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이사는 “전향제도 폐지를 위해 단식했던 날이 300일이 넘었다. 길게는 한 달 가량 단식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1992년 사상전향제도가 헌법상 권리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후 1998년 사상전향제도는 폐지됐지만 정부는 좌익수나 양심수들에게 가석방 결정의 전제조건으로 대한민국 체제와 법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을 서약하는 '준법서약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강 이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준법서약제도는 사상전향제의 변형이다.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으로 도입한 건지 서글펐다"며 준법서약서 쓰기를 거부해 14년 6개월 만에야 그의  청춘을 통째로 집어삼킨 감옥에서 나왔다. 그러나 국가가 주는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3개월마다 활동내역을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살아야 했다. 그는 "19년을 싸워 보안관찰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냈고, 지난해 비로소 보안관찰에서도 면제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출소 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조작간첩사건 재심을 준비하는데 고문 후유증을 치유하지 못해 고생하시는 분을 만나게 됐다"며 "이들을 돕기 위해 정신과전문의, 임상심리학전문가, 변호사, NGO 활동가들과 함께 '고문치유모임'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문과 국가폭력 생존자가 다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노력뿐 아니라 온 사회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문치유모임인 ‘진실의 힘’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국가안전기획부, 보안사, 경찰 대공분실 등에 끌려가 고문  당한 끝에 자백과 불공정한 재판을 받아 ‘간첩’으로 만들어진 피해자들 가운데 재심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손해배상금을 출연해 만든 재단법인이다.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포럼(2019.5.14.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 평화뉴스 윤명은 수습기자

강 이사는 "80년대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엄혹한 시절 온몸으로 투쟁했고,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를 다져온 사람들"이라며 "군사독재정권 시절 열사나 의문사사건 희생자들의 가족인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분들, 양심수의 어머니들인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분들이 인권활동가로 변모해 한국 인권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진정한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또 "과거청산을 위해 진상조사 보고서, 재심재판, 기념·위령사업, 법적·제도적 차원의 청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자의 관점'을 갖는 것"이라며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좌절, 고통, 눈물에 공감하고 함께 나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피해자의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는 것에서 과거청산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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