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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4대강,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르포] 영주댐 건설로 인해 변화한 '흰수마자의 고향'
2019년 08월 04일 (일) 15:36:08 프레시안 이대희.최형락 기자 eday@pressian.com, chr@pressian.com

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 예천을 지나 문경에 흘러 들어와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길이는 110.69㎞. 지나치는 곳 사람들의 식수로, 농업용수로 활용된다.

최초 발원지 부근인 봉화에서는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되는 탓에 수질이 퍽 깨끗하지는 않았다. 영주를 지나며 얘기가 달라졌다. 소금처럼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굽이진 강물을 감쌌다. 두꺼운 모래층은 천연 정화 장치가 되어 물을 청소했다. 깨끗해진 물을 따라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가 헤엄치고, 삵과 수달, 먹황새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자연을 풍요롭게 가꿨다.

모두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까닭은, 영주댐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달 31일 영주댐이 들어선 후 내성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영주-예천 일대를 천변을 따라 돌아보았다. 상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댐 상류로도 녹조가 두껍게 올라와 있었다. 자연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진 회룡포의 모래톱이 깎여 나갔고, 그 사이로 침입한 물이 고여 썩은내를 풍기고 있었다. 

   
▲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를 지나는 내성천 상류에도 녹조가 짙게 올라왔다. 현지 주민들은 이 같은 사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댐 상류에도 녹조가

"너무 빨리 변합니다. 여기까지 녹조가 올라온 건 처음 봅니다."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는 내성천 상류 30㎞ 구간에 자리한 동네다. 이곳에서는 영주댐이 들어설 때 약 10여 가구가 보상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지 않은 김진창(61) 씨는 이 같은 변화가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는 평생 석포리에서만 살았다. 댐이 올라간 후, 매년 풍광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도 댐 상류 지역인 석포리의 상황은 그간 댐 하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았다고 했다. 올 여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상류에도 녹조가 두껍게 올라오기 시작했단다. 

수공은 댐을 건설하는 한편, 물길을 내기 위해 석포리의 땅 여럿에 물길을 냈다. 그곳에 농사를 금지하고 물을 받아놓았다. 그 물길을 따라 흐르던 물이 댐까지 가닿는다. 사람이 농사 짓던 땅을 벼이삭 대신 잡초가 무성하게 채웠다. 석포리는 점차 버려지고 있었다.

"수공에서 돈 수천억을 써서 수질 개선한다고 하대요. 그런다고 물이 깨끗해질 줄 압니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는 누가 이 책임 질 겁니까."

김진창 씨와 이야기 후 천변으로 향했다.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두월교(본 위치에서 이전) 부근에 자리 잡아 하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공이 수몰 예정지에 있던 나무를 이곳으로 옮겨다 심어놓았다. 마을이 사라지면서 주민들과 수백 년을 함께 한 나무도 강제 이주 당한 흔적이다. 그나마 이 나무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수백 년 된 고목 여러 그루가 강제 이전 과정에서 죽었다. 

나무 곁에서 하천을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하천 전체가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짙은 녹색의 물이 하류로 흘러가고 있었다. 녹조들은 조만간 썩어 검은색으로 변할 것이고, 유독물질을 내뿜을 것이다.

내성천 상류에까지 이처럼 두껍게 녹조가 올라온 건, 영주 지역에서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달 25일부터 28일까지 비가 내리긴 했다. 하지만 강수량은 10㎜ 미만이었다. 그 이전 큰 비가 내린 때는 지난 달 21일(68㎜)이었다. 거의 열흘 가까이 비가 오지 않은 후, 녹조가 하천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더 근본적 원인은 결국 댐이다. 댐이 자연스러운 물길을 막아 하천의 흐름을 방해했다. 더구나 이곳에는 유사조절지도 있다. 하천 상류에서 하류로 모래가 흘러내려와 댐을 막으면, 댐 기능에 문제가 일어난다. 이 때문에 댐 건설 시 댐 상류에는 유사조절지를 건설해 모래 흐름을 막는다. 석포리 남부에도 유사조절지가 들어섰다. 이처럼 물길을 막는 장치가 여럿 생기니 유속은 느려지고, 그 때문에 녹조가 창궐하게 됐다. 

댐은 지역도 갈라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영주댐을 해체하고 내성천의 옛 모습을 복원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고향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난 이주민들이 영주댐 담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해체된 마을에 차라리 담수라도 해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유다.

   
▲ 지역을 떠난 주민 일부는 수공의 뜻에 맞춰 조기 담수를 요구하고 있다. 댐은 하천을 죽이고, 마을 공동체도 죽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해체된 공동체, 잃어버린 문화재 가치

유사조절지를 지나 계속해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내매교회 터를 지났다. 영주 내매교회는 경북 북부에 처음 세워진 교회다. 한국전쟁 당시 불탔으나 이후 복원했다. 전쟁도 이긴 교회는, 댐 공사를 견뎌내지 못했다. 소중한 지역 문화재는 해체돼 다른 곳에 대신 들어서게 됐다.

1910년 설립된 기독교 내명학교 이전지도 지났다. 이곳 역시 본래 있던 곳에서 밀려나 유사조절지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내매동이 수몰대상지가 됨에 따라 소중한 문화재들이 본래 있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 셈이다. 

영주댐 공사로 인해 지역 문화재 17점이 자리를 옮기게 됐다. 수공은 옛 금강마을 주민들의 이전지인 동호이주단지 부근에 이들 문화재 대부분을 한데 모아 복원하고 있었다. 복원 공사 중인 문화재 이전지를 슬쩍 둘러보았다. 한 고택이 보였다. 본래 재료 대신, 한 눈에 보기에도 새로운 나무를 갖다 썼음이 확연했다. 목재 건물을 이전하면 특유의 뒤틀림 현상으로 인해 본 재료를 사용할 수 없다. 

동호이주단지에서는 댐이 내려다보인다. 높은 곳에 자리한 이주 단지가 내려다보는 곳은 잡초가 뒤덮은 거대한 분지가 되었다. 수몰대상지이자, 하천이 흐르던 곳이다. 수북이 올라온 잡초로 인해 하천 흐름은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았다. 훼손된 여러 문화 가치도 눈에서 사라졌다. 

인근에 화물열차역으로 운영되던 평은역이 있었다. 영주댐 건설로 인해 2013년 3월 28일 폐역됐다. 한국 철도역사 상 댐 공사로 인해 철거된 첫 기차역이다.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해 부전역으로 이어지는 중앙선로 중 영주-안동 구간이 통째로 해체됐다. 모두 영주댐 때문이다. 산을 뚫는 6㎞ 구간의 터널이 만들어졌다. 과거 내성천에 반사된 햇빛을 보며 달리던 기차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가게 됐다. 이 공사에만 2000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한 금강마을 한켠에 죽은 소나무 밑둥이 보였다. 여러 꽃들로 교묘하게 나무 밑둥은 가려져 있었다. 옛 금강마을에 있던 수령 200년의 노송이다. 이전되는 주민들이 예전 동네의 기억을 갖고 싶다며 함께 옮겼으나, 주민의 일상과 추억을 빨아들여 나이든 나무는 새 공간에서 죽어버렸다. 인근 오토캠핑장에도 거대한 450년생 나무 한 그루의 시체가 보였다.

주민과 함께 일상에서 숨 쉬던 고 문화재들이 일상과 분리되어 새 옷을 입었다. 작은 테마파크라 할 만한 이런 가상의 문화재 공간이 생김에 따라 개별 문화재는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지역성과 역사성이 송두리째 훼손됐다. 이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었다.

   
▲ 옛 금강마을의 수령 200년산 노송이 새 이전지에 죽은 채 방치돼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회룡포가 죽어간다

댐 바로 아래에 이제 관광지화한 무섬마을이 있다. 댐 바로 곁에 자리한 데다, 내성천 특유의 모래톱이 쉽게 관찰되는 지역이다. 수공이 가장 신경 쓰는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에는 그나마 옛 내성천의 모습이 남아 있다. 모래톱이 작게나마 관찰된다. 실은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퍼다 쌓아 이 모습을 억지로 유지하는 거라고 현지인이 귀띔했다.

석탑교를 지나고 우래교를 거쳐 형호교로 들어서면서 영주에서 예천으로 들어섰다. 선몽대로 향했다. 예천 관광 8경의 하나다. 퇴계 이황의 증손자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 건립한 건물이다. 내성천 모래톱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꿈을 꿨다’는 이름이 붙었다. 

모래톱이 남은 곳은 얼핏 눈으로만 보아도 선몽대 바로 앞뿐이었다. 조금만 곁으로 눈을 돌리자 수풀이 모래를 뒤덮어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성천은 모래와 함께 움직이는 하천이다. 이 특유의 환경이 흰수마자가 살 수 있는 터를 제공했다. 모래 흐름이 끊어지면서 단단한 땅이 드러나고, 물이 더러워지자 한 번 들어온 잡초들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풀뿌리가 땅을 단단히 움켜쥠에 따라 땅은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은 풀이 천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성천이 점차 죽어가고 있다. 

이곳의 물 역시 녹조로 인해 초록빛으로 변했다. 걸쭉한 녹색의 물이 콸콸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다 내성천 관광의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회룡포로 들어왔다. 특유의 단단한 지형으로 인해 내성천이 직진하지 못하고 거대한 커브를 돌아 다시 아래로 흐르는 물 흐름에 따라 섬 아닌 섬마을이 된 곳이다. 커브가 큰 만큼 모래톱도 크고 모래도 곱다. 내성천을 상징하는 지역의 하나다. 

옛 모습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손 아래로 흘러내리는 고운 모래가 사라지고 있었다. 굵은 자갈이 모래 땅을 침투하고 있었다. 침식되지 않은, 옛 모습이 남은 모래톱과 깎여 나간 땅의 높낮이 편차가 확연했다. 댐이 상류에서 내려오는 모래를 막자 유속이 빨라지고, 그 때문에 물이 씻어나간 모래땅에 다시 모래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 모래톱을 점차 침투해 들어오면서 새로운 물길이 조금씩 생겨나고, 그 때문에 모래톱 면적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물 일부는 미처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었다. 그곳에서 불쾌한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환경이 좋지 못했다. 이 곳의 옛모습을 아는 이에게는 녹조 만큼이나 충격적인 상황이다. 

이 모든 급격한 변화는 4대강의 물그릇을 만든다는 목적으로 올라간 영주댐으로 인해 발생했다. 내성천은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영주댐이 있는 한, 이 죽음은 지속될 것이다. 

   
▲ 옛 금강마을의 수령 200년산 노송이 새 이전지에 죽은 채 방치돼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금강마을 이전지에서 바라본 영주댐의 모습. 댐 아래 푸른 지역이 모두 수몰 예정지다. ⓒ프레시안(최형락)
   
▲ 댐 상공에서 내려다 본 모습. 녹조가 시퍼렇게 물을 뒤덮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예전 모습을 찍은 사진과 현 모습을 대조해 봤다. 내성천 특유의 모래톱이 거대한 초목 지역으로 변화해버렸다. 영주댐 공사가 지역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프레시안(최형락)
   
▲ 깎여나간 모래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회룡포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회룡포의 모습. 옛 모래톱 지역이 남아있는 공간과 깎여나간 곳의 높낮이 차가 확연하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2019.8.3 (독립언론네트워크 / 프레시안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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