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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태일
[정은정 칼럼] "무수한 전태일의 형상들, 시민들에게 말 걸고 손 잡고 함께 걸어가는 꿈을"
2019년 11월 19일 (화) 12:34:17 평화뉴스 정은정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2010년 11월 13일은 전태일 서거 4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전체 조합원 「전태일 평전」 읽기를 통해 전태일의 삶을 알고 정신을 따라 배우고자 했다. 우리 노동조합에서도 민주노총이 제시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했지만, 연세가 많고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은 조합원께 무작정 책을 읽으라고 할 수 없었다. 대신 KBS에서 2003년에 만든 <인물현대사 – 전태일편> 편집해서 영상을 상영하고 얘기를 나누는 교육을 진행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대부분 조합원들은 전태일의 삶과 죽음 앞에서 숙연해졌다. 특히 한 대학의 환경미화원 조합원께서 “나도 저 때 섬유공장에 다녔는데....”하며 말끝을 흐리고 “내가 전태일하고 동갑이네. 근데 나는 몰랐네 저 사람이 그랬는지...”하며 눈물을 훔쳤다. 나이든 환경미화원 노동자는 전태일의 친구이면서도 노동조합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태일을 알지 못했다.

2012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아이는 친구 3명과 함께 “직업탐구보고서”를 쓰기 위해 나를 인터뷰했다. 큰아이를 제외한 3명의 아이들은 노동조합이라는 걸 처음 듣는다고 했다. 누구를 가장 존경하냐고 물어서 전태일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데 전태일을 전혀 몰랐다. 가난한 노동자로 살았지만 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준 사람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 자기를 불태운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아이들은 놀란 눈이 되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노동조합도, 전태일도 알려주지 않았다.
 
   
▲ 전태일 열사와 전태일 열사의 진정서 / 사진 제공. 전태일재단(편집.평화뉴스)

지하철 반월당역에서 내려 삼덕네거리 쪽으로 걸어 다니는 일이 가끔 있다. 걷다 보면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고등학교를 만나게 된다. 오래된 학교는 도로쪽에서 들여다봐도 담쟁이 덩굴로 덮인 채 고풍스럽고 예쁘다. 좀 여유가 있던 날, 천천히 걸으며 학교 담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다 작은 표지판 하나를 만났다.

인재의 산실 대구라는 제목에 “아래 수많은 인물을 배출해 ‘인재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대구.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인물들 가운데 대한민국 정치, 경제, 정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세 거인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삼성 창업주, 김수환 추기경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태산북두와 같은 이 세 분은 대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세 분은 대구에서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썼다” 하고 그 밑에 ‘대구사랑 대구자랑’은 대구광역시와 매일신문사가 공동으로 선정했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고등학교 담장의 표지판 / 사진. 정은정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그 표지판을 흘겨본다. 박정희, 이병철, 김수환에 대한 평가는 따로 한다 해도 전태일을 빼 먹은 건 정말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중구 동산동(현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열다섯 살인던 1963년에는 지금의 명덕초등학교 자리에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니며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였던 시절"을 보냈다. 전태일은 대구에서 태어나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사람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전태일만큼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교훈과 영향을 준 사람은 드물다.(전태일 평전 서문, 2009년 4월, 전태일재단) 전태일이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 '전태일 소개 영상' 캡처 / 영상 제공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 '전태일 소개 영상' 캡처 / 영상 제공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전태일을 ’대구사람‘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대구는 전태일을 이대로 외면하고 추방해서는 안된다. 그런 뜻이 모여 올 3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창립되어 “대구 전태일기념관”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이미 9월 17에 전태일이 세 살던 남산동 옛집 매매 계약을 체결했고, 내년 50주기에는 본격적으로 기념관을 짓고자 한다.

전태일의 삶은 짧았지만, 그 삶은 무수히 많은 형상으로 사람들 마음에 새겨져 있다. 전태일을 여리고 착한 마음을 가진 순수한 인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조직하고 실천한 활동가로도, 가진 자들의 세상을 뒤집고자 했던 혁명가로도, 예수의 영성을 닮은 선지자로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무수한 전태일의 형상들이 대구의 노동자들과 학생들과 거리의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잡고 부둥켜 안으며 진정한 노동 존중 사회,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함께 걸어가는 꿈을 꾼다.

   







[정은정 칼럼 3]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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