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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 없어지면"...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내년 예산 0원 '전액 삭감' 논란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3.10.0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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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국 44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0원
언어, 체불, 구직, 법률, 문화, 교육 등 실생활 상담
현장에서도 반발 "이주민 느는데 엇박자, 폐지 반대"
고용부 "효율성 제고 위해 재편성...지자체와 연계"


언어, 체불, 교통, 결혼, 출산 등 대구지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생활 중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타향살이도 힘든데 잠시 기댈 곳조차 없어 더 서럽다. 지역에서는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지난 13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더 이상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대구센터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4일 오후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차례가 오면 국가별 마련된 상담 창구에 가서 자국 언어로 상담을 진행했다.

임금 등 노동 문제부터 구직활동, 생활 고충까지 상담 내용도 다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성서공단에서 3년째 자동차부품 제조 일을 하고 있다는 쥬쥬(28)씨는 걱정이 크다. 이 마저 없어지면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앞이 막막하다.

쥬쥬씨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실력이 많이 늘었다"면서 "월급을 적게 받았을 때도 센터에서 해결해 줬는데, 폐소하게 되면 지원을 받을 곳이 없어져 난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 쥬쥬(28)씨가 상담을 받고 있다. (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 쥬쥬(28)씨가 상담을 받고 있다. (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지난 2014년 네팔에서 한국에 와 4년 10개월 일하다 비자 문제로 귀국한 이후, 다시 돌아와 구직활동을 하는 묘한(35)씨도 이날 센터를 찾았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거나 이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센터 상담사들이 통역해 잘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센터가 없어지면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을 쉬는 일요일에도 상담받을 수 없어 불편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문화·언어 소통 한계로 한국 정착에 고충을 겪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고충 상담 ▲한국어·법률·정신건강 교육 ▲구직 정보 제공 ▲문화행사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설립돼 현재 전국 9개 거점센터와 35개 소지역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앞서 2010년 설립돼 13년째 법률, 문화, 언어 교육 등 이주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한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예산 5억여원을 편성했다.
 
각국 언어로 적혀 있는 건설현장 사고 예방 카드북(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각국 언어로 적혀 있는 건설현장 사고 예방 카드북(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주중에는 중국,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각 국가별 상담원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말에는 5개국에 더해 스리랑카,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상담을 한다.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따르면, 2023년 평균 상담 건수는 주중 60여건, 외국인노동자들이 일을 쉬는 주말에는 230여건이다. 일요일에 진행하는 교육 사업도 400~500여명이 참여한다.

하지만 고용부는 지난 9월 2024년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 사실상 센터 문을 닫으라는 것이다. 2024년도 예산안은 국회 각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12월 확정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내년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역대 최대 규모인 12만명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의 권익을 위한 서비스는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센터 업무 중 상담 업무는 고용노동부로, 교육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 이관하겠다고 통보했다.

전국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반발했다. 외국인력이 계속 늘어나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데도, 일방적인 폐쇄 조치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정착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지난달 17일부터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4일 기준으로 대구시민 2,400여명이 서명했다. 전국 온라인 서명은 1만1천여명이 동참했다.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방문한 상담받는 이주노동자(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방문한 상담받는 이주노동자(2023.10.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덕환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장은 "센터가 폐소되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업무를 맡게 되는데, 외국인노동자들이 쉬는 일요일에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면서 "외국인 노동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서비스 지원을 도맡아 하는 센터를 없앤다면 그야말로 '엇박자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신혜영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운영·교육팀장은 "센터를 방문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폐소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지게 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며 "예산 삭감 반대 서명운동에도 자발적으로 먼저 서명하기도 하고, 사업주들이나 유관기관 관계자들도 센터가 없어지면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외국인력이 산업현장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기본 방침"이라며 "외국인노동자 지원 성과·효율성 제고를 위해 내년부터 지원방식을 개편하고 필요예산을 재편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용허가제 하 각종 행정과 직장생활 관련 상담에 대해 연중무휴로 제공되는 전화상담과 함께 주말 대면상담을 검토 중"이라면서 "각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별 외국인노동자센터·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생활정보 상담, 지역 교류·문화 프로그램의 원활한 연계를 실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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