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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옆 낙원...담장 뒤 생지옥,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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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 2023)

◆ 10분간 화면 없는 비명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그리고 장면은 순식간에 바뀐다. 초록색 잔디밭이 드넓은 정원에 해바라기와 라일락, 장미꽃이 피었다. 

어쩐지 노랑은 더 노랗고, 초록은 더 새파랗다. 정원 한 가운데 수영장에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숲으로 소풍을 갔다가 돌아온 일가족은 꿈 같은 대저택에 돌아와서도 케익과 커피를 즐긴다. 

집 안팎을 오가며 대자연이 펼쳐진다. 너무나 안온하고 화목하고, 어쩐지 목가적이기까지하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대저택 주인 부부는 자녀들을 등교시키고, 어머니를 초대해 정원을 보여준다. 

남편 직장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동네 가십도 주고 받는다. 파스텔톤 옷들을 하녀들에게 나눠준다.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미래를 꿈꾸고 속삭인다. 

◆ 그러나 벽. 대저택을 둘러싼 높은 담장과 철조망 넘어 불길한 회색빛의 연기가 끝없이 지나간다.

가족들이 일상 생활을 지낼 때도 담장 넘어로 거친 신음과 비명이 들려온다.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총성과 비명이 뒤섞여 이따금 놀라게 한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낙원과 지옥이 오간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너무 아름다워 더 끔찍한 낙원은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 바로 옆 독일 나치 총지휘관의 집이다.  

벽 넘어 한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곳. 소리로만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곳. 

천국 바로 옆에 있는 생지옥 홀로코스트, 인종 대학살의 현장이다. 

꽃과 풀, 나무 등 생명으로 가득찬 저택 옆 비명과 연기는 가스실과 시체 소각장에 흘러나오는 비극이다. 

◆ 영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2023.제작 A24)>의 장면이다.

유대인 출신의 영국 국적을 가진 조나단 글레이저(59)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역사 드라마 필름이다. 

제76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국제영화상과 음향상도 석권했다. 

한국에는 지난 5일 정식 개봉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개봉 일주일만에 전국 누적 관객 7만,3237명을 기룩해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7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평단과 관객 모두의 지지를 받는 흔치 않은 예술영화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공식 한국 포스터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공식 한국 포스터 / 사진.A24

◆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고문과 폭력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죽음과 인종학살을 전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나치 총지휘관 루돌프 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화면만 본다면 젊은 총지휘관의 평범한 고뇌를 다룬 영화라고 보일 정도다. 

하지만 소리가 끝없이 관객을 망치질 한다. 가끔 들려오는 비명과 총성은 무참함을 더한다.

화면이 아름다울수록, 풀과 꽃이 아름다울수록 담장을 타고 넘어오는 비명은 커진다. 

청각과 시각의 불일치는 담장 뒤 영원히 박제된 시대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 사진.A24

◆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무나 평범한 악의 얼굴. 그곳이 천국이라면, 지옥 바로 옆이라도 당신은 살 수 있는가? 

160만여명이 학살된 그 곳에서, 영화의 제목처럼 '이익지대'의 편익성만 추구할까? 

화려한 건물에서 나치 회의 후 계단을 내려가다 이유 없이 구토하는 루돌프가 될까? 

수용수에서 죽은 희생자들의 옷과 귀중품들을 가져와 몸에 걸쳐보는 부인이 될까?

밤이면 더 심하게 불타오르는 굴뚝과 비명을 듣다 끝내 참지 못하고 떠나는 어머니가 될까?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는 이들을 위해 목숨 걸고 나가 흙더미마다 사과 한알을 심는 소녀가 될까? 

◆ 이 작품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까지 들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  감독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오스카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오스카 유튜브 화면 캡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감독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학살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봐라. 그리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라. 가자 전쟁의 비인간화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느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 장면)

종이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이 같은 문장을 읽고 무대를 내려간 조나단 감독. 이후 유대계 내에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학교가, 병원이, 민간인이, 아이들이 죽고 폭격 받고 고문 받는 세상에서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다면 영원한 피해자도 영원한 가해자도 없게 된다. 

당신이 이 영화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 

[그 날, 나의 영화] 7 

김영화 / 평화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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