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일본 바다에 잠든 장생(長生.조세이)탄광 사고와 관련해, 대구경북 희생자가 절반 이상이라며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유해발굴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단장 최봉태)'과 더불어민주당 육정미(비례대표) 대구시의원은 17일 오전 대구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바다에 잠든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장생탄광 유골 수습에 한국 정부와 대구시는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추진단은 "오늘부터 장생탄광 수몰 갱도 현지에서 크레인을 동원한 유골조사가 시작된다"며 "전체 희생자 183명 중 136명이 조선인 노동자들이고, 이 가운데 73명이 대구경북(대구18명, 경북 55명) 출신인데도 한국 정부는 물론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유해발굴을 위해 어떤 행동에도 나서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몰 피해자 중 우리 지역 희생자가 다수임에도 해당 지자체인 대구시와 경북도가 꼼짝도 안는 것은 문제"라며 "대구시와 경북도는 즉각 현지에 가서 유해발굴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추진단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기업의 '제3자 변제안'을, 윤석열 정부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은 명분 없이 밀어 붙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 판결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후신)의 돈을 받아(15억원) 강제로 돈을 지원하며 피해자와 유족들을 갈기 갈기 찢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명분도 없이 한국 기업의 돈을 뜯어서 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억지로 안기려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대한상의와 한경협은 왜 명분도 없이 돈을 기부 한 것인지 그 경위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서울 대한상의와 한경협 앞에 가서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한일청구권협정 60년을 맞는 올해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사죄하고 한국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한다"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대한상의, 한경협은 명분 없는 기부를 중단하고, 차라리 이 돈을 장생탄광 희생자 유골조사에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조덕호(대구대학교 명예교수) 고문은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여전히 차가운 일본 바다에 수몰돼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73명이 지역민이다. 민간단체가 유해발굴을 위해 4차례 현지를 방문하는 등 지극정성을 다했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정부와 대구경북 지방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호통쳤다.
이어 "바다는 기억하고 후손들은 증언한다"면서 "대구시와 경북도는 동족의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유해발굴에 나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봉태 단장은 "우리 지역 희생자들이 가장 많은데도 대구시나 경북도가 나서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지자체의 지원을 위해 언론사들도 장생탄관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17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대구시도 인지하고 있다"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우리 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몰사고 현장이 외국이고, 외교적 해결이 먼저이기 때문에 지자체보다 양국의 정부가 나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면서 "유해발굴 지원을 위해서는 법과 조례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사건이 알려지는 초기단계이니 조금 더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은 오는 30일 경북도청에서도 유해발굴 지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저 갱도가 무너져 조선인 노동자 등 모두 183명이 수몰돼 목숨을 잃었다. 일본 정부가 사건을 은폐해 83년이 지난 지금까지 희생자들은 바다에 잠들어 있다.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의 몰비상을 역사에 새기는회'와 한국 민간 추진단 등은 펀드를 통해 기금을 모아 갱구를 발견하고, 한일 민간 잠수부들을 투입해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17일부터는 크레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한국 민간 추진단은 최봉태 변호사 등 대구경북 인사들이 중심이 돼 지금까지 모두 4차례 현지를 방문했다. 오는 6월 5차 현지 방문을 떠난다.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일본 정부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정부는 정작 지금까지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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