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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 "2010, 정치적 다양성 위한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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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는 지난 6월 15일 열린 '평화뉴스 시국토론' 패널의 '후기'에 이어, 대경민교협의 열린토론회(7.15) 발제문과 토론문 전문을 주최측의 동의에 따라 싣습니다. 박형룡씨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습니다 - 평화뉴스



무채색으로도 아름다운 대구를 바라며


박형룡(전 국회의원 보좌관)

1. 많은 시사점을 얻다

  진보적인 학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남다른 다양한 경험을 했고 또 한 때 같은 당에 몸담았던 만큼 발제문이 남달리 깊이 있게 느껴진다. 동시에 재미있었다고 표현 하지만 ‘실패’, ‘성찰’, ‘참회’라는 단어에서 오는 미묘한 아픔이랄까 그런 걸 동시에 느낀다.
  대구지역의 정치적 편협성에 대한 원인분석부터 다양성 실천을 위한 그간의 오류 및 과제, 연대의 문제, 지방선거를 위한 과제 등에 대한 내용을 통해 그동안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고, 향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그간의 오류에 대해서는 ‘성찰’적 측면에서 우리가 돌이켜 보고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며 각자의 정체성은 지키면서 ‘위협’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연대에 대한 제안은 시급한 검토와 실천이 필요하리라 본다.   
 
2. 실패? 그리고 성찰

  정당운동을 통한 ‘서울공화국 해체’를 위한 노력이 실패였을까? 발제자 본인의 경험으로 국한한 말이지만 이 표현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표현이 과거 종결형으로서 청산주의적인 느낌이 들어서이다. 모든 삼라만상이 흐르고 흐르는 것인만큼 개인적인 노력이든 집단의 노력이든 과정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다른 지역과 또달리 육중한 무게의 한계속에서 지역에서의 노력, 정치적 입장과 노선을 다를지라도 그러한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것이 소멸되지 않듯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쉬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성공적이진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실패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성찰도 말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한 마음에서야 성찰 같은 큰 담론이 어떠한 지위에서 무언가를 책임져 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기나 할까? 기준은 모호하지만 어떤 급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교만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대구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희망적 성찰은 모두에게 필요하리라.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진 것에 대한 성찰? 진정성, 이기심과 탐욕, 일관성, 능력, 관계, 비전...진보와 개혁, 민주...정말 허심탄회하고 믿음이 전제된 ‘성찰의 불놀이 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할까?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3.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위한 방안에 대해

1)제도적 해결 방안-어떻게의 어떻게는?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위한 어떻게?로 1)제도적 요인과  2)주체적 요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1)로는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제, 정당공천제 배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모두 기득권의 벽에 갖혀 실현되기 어렵다고 예견하고 있다. 적어도 제도적 방안과 관련해서 발제문에서는 어떻게?로 던진 답이 하위의 어떻게?에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좀 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런 방안이 꼭 필요하다면 이러한 제도적 방안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어떻게를 찾아야 한다. 정당공천제 배제를 당론으로 하는 당이 있다면 먼저 무공천 선언을 하라고 압박한다든가, 크든 작든,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실천 계획이든 구상이든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제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를 통한 지역주의 타파책으로 아주 비판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하위의 어떻게의 구체적인 해결책의 한 방안으로서의 의미는 있는 것 아닐까? 선거제도개혁을 수용할 경우 대연정을 실시하겠다는 대연정제안은 현실성 여부와 소통의 문제를 떠나 난공불락의 지역주의를 한방에 날릴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기에 그 진정성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2) 주체적 역량강화
  정치적 다양화를 위한 주체적인 역량강화 방안제시에서 학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버무러진 대안으로 느껴진다. 먼저-상층제휴를 버리고 아래로부터의 진보개혁세력 육성, 둘-민원해결사적 방식을 지양하고 비전세시로, 셋-발전주의 아젠다로부터 생활정치 아젠다로, 넷-명망가 활용전략을 버리고 차세대 리더 육성전략으로.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10년간의 민주정부기에 이러한 방안을 적극 실천했어도 힘겨운 판인데 더더구나 이제 권력마저 내어준 마당에서랴. 상층제휴도 민원해결사적 방식도 힘있게 써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났다.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런 오류는 분명히 집단적인 각인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그러면 생활정치 아젠다는 어떻게 누가 개발할 것인가? 차세대 리더 육성은 누가 하는가? 누가 그런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 세부적으로 많은 과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이다.

  이제 정치적으로는 큰 어떤 세력에게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고 스스로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집단의 힘과 흐름으로 만들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시간이 걸린다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이라도 그렇게 스스로.

4. 승리의 길-연대

  지역사업을 꾸준히 전개하는 것이 분명히 필요하고 좋지만 또 그것이 정치다양성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일까? 시민운동으로서의 풀뿌리 운동과 정치영역으로서의 풀뿌리 기반 구축의 차이는 뭘까? 민심의 흐름과 지역주의가 근본에 있겠지만 선거가 가지는 예측불허의 가변성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정치적 다양화를 위한 시도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해진 답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장기적으로 풀뿌리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단기적으로 정당의 힘을 바탕으로 또 개인적인 노력으로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시도를 통해 부닥쳐 가야 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길이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연대’일 것이다. 발제자가 언급한 ‘국면의 위기’ ‘헤게모니의 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찰,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현 정권의 비민주성을 타파하기 위한 연대로부터, 2010지방선거 연대, 지역사회 헤게모니를 위한 연대 등. 특히 정치적 다양성을 위한 2010지방선거 연대는 절실하다. 작지만 어떤 승리를 위해서 연대할 때이다.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득표 26.8%, 물론 당시 탄핵분위기에 영남지역 출신의 대통령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겠지만 그 이전의 10%대와 비교하면 엄청난 결과다. 한계는 있지만 그 속에서 변화의 씨앗을 보았다.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지지도 역시 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상대적인 상황에 따라서 변화는 충분히 일어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연대라는 것이 밥그릇 싸움이 될 때는 참 쉽지 않다. 서로 좀 피해가더라도 한 구역에 한 석이니 중복되면, 비례라도 차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후보를 낼 만큼 내야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할 수도 있지 않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세심한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친노신당 얘기가 꽤 나온다. 조급하게 가지 않았으면 한다. 대구의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당장의 친노신당보다는 친노 개혁세력들은 개혁진보연대든 민주연대든 그런 틀로서 지방선거를 맞는 게 낫지 않는가. 당의 형태를 가지면 어차피 경쟁의 틀 속에 더 내몰릴 수밖에 없고, 득표에도 유리하지 않을 것 같다. 개혁의 기치는 분명히 하되 완충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5. 무채색으로도 아름다운 대구를 바라며

  생태계는 스스로의 안정과 외부로부터의 스트레스에 버텨 내기 위해 다양성을 확보해 나간다는데 이곳 대구의 정치판은 어찌 이러할까? 스스로 다양성에서 멀어지기만 하다니. 결국 그 고통은 또한 스스로 지고 있는데. 하기사 짧은 인간세상을 어찌 유구한 자연에 비할 수 있으며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할 수 있으랴.
  정치적으로 칼라풀한 대구를 어찌 당장 바라겠는가. 그러나 무채색일지라도 여백의 미는 있었으면 좋겠다. 흑백의 농담과 여백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동양화가 있지 않은가? 향후 지역 정치를 대하는 대구시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한다. 무채색일지라도 여백으로 아름다운 대구가 되기를 바란다.

박형룡 토론문(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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