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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개인의 ‘반성문’에서 집단의 성찰과 도전으로 나아가야 -
장태수 (진보신당 대구시당 서구당원협의회 위원장)
발표자의 ‘반성문’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우선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의 위기가 축적된 ‘국면적 위기’이고, ‘헤게모니의 위기’라면, 성찰의 당사자는 민주당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민주당과 이질적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동반하는 현상이 그 점을 웅변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의 헤게모니 약화가 자본과 권력, 수구언론의 탓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다만, 이명박 집권 이전부터 성찰이 모색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찰은 도전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고,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실험으로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발표자의 주장에 몇 가지 의견을 밝힌다.
1. 선거제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모든 제도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제도는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의 제도를 만들 때도 사회적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세력들이 격돌하게 되고, 개정과 폐지의 순간에도 이 투쟁은 피할 수 없다. 선거제도 또한 그렇다. 선거제도는 정치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과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는 국회의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바꾸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난이도가 높다고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다. 정치세력은 더더욱 그러하다. 난이도 높은 문제를 풀기 위한 경로와 방식 등을 세심하게 신경 써야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 점과 관련하여 일찍부터 제기되고, 열린우리당도 고민하였던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처럼 정당의 대표성을 의회 의석수와 일치시키는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비례대표의석수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물론이고,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거구제와 관련해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도 논의해야 하겠지만, 현재 중대선거구제로 선출하고 있는 기초의원선거에 대한 당장의 개정도 절실하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이유였던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선출하는 숫자만큼 공천하는 것을 제한하여 선출하는 인원의 2/3이상을 공천할 수 없다 등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광역의원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현재 제기되는 지방선거의 정당공천배제보다 훨씬 근본적인 발상이다.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도 적극 주장하자. 발표자의 지적처럼 정당은 부분을 대표할 수밖에 없고, 더욱 다양해져가는 유권자들의 욕구와 지향은 오늘의 토론처럼 그 정치적 다양성이 진보와 보수를 양축으로 하는 양당제가 옳다고만 할 수 없다. 양당제를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논거가 대통령제이다.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단일야당으로 가야지만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전개는 다양성이 확장되는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금 수준에서 조금 힘이 센 야당으로의 단일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의 제도에 대한 변화를 생각하거나 추동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것은 적어도 정당운동가에 있어서는 지나친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개헌논의가 된다면 현행 5년 단임제인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임기조항만이 아니라, 적어도 대통령의 선출방식에 대한 변화까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2. 지역성장연합과의 제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성장주의 세력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돌아보면서 기득권세력과의 제휴전략, 지역성장연합의 발전주의 아젠다 추종, 구체적 추진방식으로서의 특별한 후원과 그 대가로서의 지지(patron-client)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지역토호세력과의 제휴 그 자체를 일반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방식으로서 적절했는지를 따져야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그 자체가 성장주의 세력이었다는 점을 오히려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사회주의 (추종)세력도 생산력의 발전을 전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반(反)성장주의 노선도 최근 활발하게 논란되고 있으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성장주의 세력이 아니었음을 자인하는 게 쑥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경제개발비용과 사회복지비용의 비중이 역전되었다는 수치를 제시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본질적인 속성을 가리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찰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할 것이다.
한미FTA나 비정규직법안의 처리 태도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을 둘러싼 대통령후보자 시절의 발언들과 동북아 금융허브 등의 국정과제, 세리(SERI) 보고서를 탐독하며 국정을 설계하였다는 의혹 등을 살펴보더라도 변명은 쉽지 않다.
물론 이 점과 관련하여 진보진영의 성찰 또한 필요하다. 비판의 대상에 대한 냉철한 비판은 평론가의 덕목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서 사회화시켜야 하는 정치세력이 갖추어야 할 빼어난 재능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정치, 민생정치의 아젠다를 발굴하고, 실험하는 노력의 축적과 사회화 과정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를 진보진영도 돌아봐야 한다.
3. 정당을 제대로 육성하고, 차세대 활동가를 길러야 한다는 점은 백번 공감한다.
대의민주주의에 한계가 많이 지적되고, 특히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파시즘화(化)에 대한 논란까지 일고 있어 직접 민주주의, 직접 행동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분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제도도 완벽하지 못하고, 운동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영구성을 인정해야 한다면, 현재의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현재의 긍정성은 그것대로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정치 혐오증과 정당에 대한 불신은 일차적으로 정당과 정치인의 해명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딱히 정당과 정치인의 비상식적이고 졸렬한 태도들 때문만은 아니다. 탈정치화, 탈정당화의 의식과 실천은 이념을 떠나 존재하고 있어 현실을 변화하는 유력한 수단을 부정하고, 잘못된 사회변화 과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4.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연대를 모색하자는 주장에는 찬성하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그 자체가 정치적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연대는 다르니깐 하는 것이다. 같다면 단일조직으로 함께 하면 되는 것인데, 함께 하기에는 다르지만, 특정 시기에,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다르다는 점을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정은 연대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순간 위협받기 때문에 연대를 절대적인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특정한 시기를 바라보는 인식이 다를 수 있고, 목표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이질적인 내용과 목표를 확립하고 있는 정치조직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에 대한 판단은 오직 유권자의 몫이고, 더욱 한정해서 특정한다면 해당 정치세력을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이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특히 대구에서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균열시키고, 자기 정치세력의 힘이 약하므로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하여 자기 정치세력의 후보자를 당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갖자는 공감과 자기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명분에 대한 공감과 함께 자기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를 연대의 과정에서 얼마나 잘 반영할 수 있는가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정치적 목표로 강하게 제기하는 정치세력과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상호간에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출발부터 논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을 타고 넘을 수 있는 공통의 명분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발표자가 제안하고 있는, 분권과 균형발전은 지방선거에서 특정한 정치적 방향으로 차별성을 갖기 힘들다고 보여 진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특히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에서 지방선거 후보자로 나서는 어떤 사람도 서울공화국 강화를 주창할리 없다. 한나라당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도 개인적으로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기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인데, 반대할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다소 전국적인 슬로건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생활현장에 밀착하는 지방선거의 특성에도 부합하고, 한나라당이 대변하고 있는 사회기득권세력에 대한 저항과 기층 민중들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 작동할 수 있는 서민복지(+초록)동맹이 훨씬 유효한 명분이 아닐까.
5.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정치방침에 대한 분명한 표명이 필요하다.
야당 상호간의 선거연대는 민주당의 과거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논객은 야당의 선거공조와 관련하여 ‘과거불문’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특정 야당에 대한 지지일 뿐이다. 그걸 그렇게 좁게 생각하느냐고 힐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조차도 특정 야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뿐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정치방침에 대한 입장까지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선거는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정책과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순간이다.
정당의 집권목표를 달성하는데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경로이기도 하다. 그런 중차대한 선거에서 다른 이질적인 정치세력과 함께 선거를 연대한다면 자신의 정책과 인물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 필수적인 것이 앞으로의 정치방침이 아닐까. 물론 이 점은 연대의 명분을 공감하기 위한 과정에서 충분히 의논해야 한다.
6. 의논할 수 있는 기구의 구성과 좋은 정책 생산 네트워크에 동의한다.
굳이 (선거) 연대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정치세력 상호간에 의논하는 자리는 좋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것은 자기 정체세력의 틀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점을 볼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의제를 폭넓게 사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논하는 기구는 좋다. 불구대천지원수도 아니니깐. 그리고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로 정책 생산 조직들을 네트워킹하자는 제안도 적극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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