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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를 말한다.
- 지역주의, 진지전과 계급투표로 돌파하자.
- 지역주의, 진지전과 계급투표로 돌파하자.
송영우(민주노동당대구시당 부위원장)
1. 지역주의와 대구
대구는 투표행위에서 이른바 ‘묻지마’ 투표가 고착화된 대표적 지역이다. 오늘날에서 이러한 투표행태는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한나라당을 찍으면 살 것이며, 한나라당을 찍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지역 출신들의 당이기도 하거니와, 또 그렇기에 우리 지역을 먹이고 살리는 유일한 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주의에 경도된 정치주체들의 오판은 대구의 정치시장을 오랜 세월 독과점 상태로 두게 하는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유독 대구에서 지역주의가 완고하게 기승을 부리는 연원을 따져 들어가다 보면 그 꼭지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박정희를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현대정치사 최초로 지역주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구사한 정치인(“낙동강의 정기를 이어받은 우리의 박정희”, “박정희 후보는 신라 임금님의 자랑스런 후손”, “경상도 사람은 왜 대통령을 하지 못하나?” 등)이었고, 또 그러한 정치연금술이 아주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마법을 부리게끔 토착화에 성공한 주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심은 지역주의
박정희가 심은 지역주의의 시발점은 ‘반공과 경제개발’이라는 슬로건이었다. ‘반공’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해방 후 남로당 활동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자신의 이력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경제개발’은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남아 있던 생산 기반마저 전쟁으로 파괴된 상황에서 어려운 경제난을 해결하는 것이 정통성이 취약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개발과정에서 철저히 영남특혜라는 경도된 '지역 몰아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영남특혜는 경제정책에 그치지 않고 인사에서도 노골적으로 기울게 되면서 심각한 지역불균형을 야기했고, 이러한 가운데 영남의 대구는 박정희가 푼 선물보따리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즉 대구사람들은 박정희가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챙겨주었다고 믿게 되었으며,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면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다는 기형적인 정치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여기에다 분지 지형의 영향력에 따른 대구사람 특유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질이 이러한 지역주의를 한층 더 강화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구에서 ‘철옹성’이 된 지역주의가 단순히 경제특혜에 의해 육성된 지역토착세력의 힘만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역토착세력은 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지역주의 역시, (광주에서 보듯) 대구에서만 작동하는 정치기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대구는 지역패권의식에다 이념적으로도 수구의 메카니즘으로 덧칠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수구보수화에는 이를 통해 정치적 반사 이익을 꾀해 온, 지역 한나라당 인사들의 책임이 클 것이다. “전라도 빨갱이에 정권을 빼앗기게 되면서 대구 경제가 파산 직전이다. 좌익세력의 나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구의 한나라당을 찍어 달라”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2005년 대구동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중진의원이라는 사람들 여럿이 정책과 공약 대신, “전라도=빨갱이” 또는 “반한나라=빨갱이”라는 마녀선동만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당시 청와대 ‘실세’인 이강철 후보의 지역경제지원 ‘올인’ 전략이 끝내 승리할 수 없었던 데는 이 같은 이념적 지형이 적잖게 작용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역시 여기에도 박정희의 유령이 등장한다. 반공을 앞세우면서 지역의 민주화세력을 근원적으로 숙청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며 아직도 이 상처는 치유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오늘의 대구는 연고적 지역주의와 패권적 지역주의를 넘어선, 이념적으로 확고한 수구보수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노무현의 실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반칙이 통하지 않는, 원칙과 상식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에게 대중들은 표심을 던졌다. 그러나 대중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87년 체제’ 이래 확대되어온 절차적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면서도 먹고사는 민주주의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중들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란 것이 아니라, 원칙과 상식을 통하게 해 ‘먹고사는 민주주의’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고 본다.
특히 대구에서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 고질적인 수구보수주의, 지역주의에 숨어 대중의 권익에 반해온 토착권력을 교체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끝내 지역주의를 넘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지역주의를 넘어서려 하기보다, 지역주의를 돌파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시도에 치중한 까닭이다. 거시정치로 보면 대연정이 그렇고, 지역에서는 경제지원을 통한 지역토착세력과의 협력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사상적 숙주인 지역주의를 깨는 것은 그러한 수구세력에 저항하는 흔들림 없는 사회경제적 주체를 육성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박정희가 유산으로 남긴, 강한 자가 알아서 해 주리라는 노예적 정치의식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기회주의적인 세력은 보수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리도 만무하다.
노동자와 도시중산층, 지역주민 속에 사회경제적 주체를 확고히 세워야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하이라이트기에 있었던 현실정치인의 고뇌를 이해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가 벌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노동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IMF구제금융 이후 노동유연성이 확장되는 기반 위에서 성장 패러다임 전략을 놓지 않았던 참여정부에, 왜 사회경제적 주체를 육성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은 지극히 우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3. 정치공학을 넘어선, 진지전과 계급투표 전략으로
이제 이러한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일은 ‘오래된’ 유권자들이 박정희가 그렇게 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먹고사는 민주주의를 해결해 나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공간에서 종종 들리는 초록과 복지동맹도 좋다. 그러나 한낱 미사여구에 그쳐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실 ‘묻지마’ 투표의 위력은 대구에서만이 아니라 광주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왔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 일부 지역이 보여준 새로운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6년 5.31지방선거 당시 민주노동당은 광산구에서 4명의 당선자를 냈는데, 3명은 1위로, 1명은 간발의 차인 2위로 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광주 광산구의 당 조직은 현장 노동자들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처음부터 호응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상근자들이 광산시민센터라는 시민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하면서 지역운동의 기반을 닦고 일상적으로 주민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해나갔다.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고 도깨비 어린이 도서관, 여성 사랑방 등의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지역현안을 통해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주민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 냈던 것은 임대아파트 부당 임대료 인상에 대한 투쟁이었다.
주공 측이 지난해보다 5퍼센트 인상된 임대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 후보자들은 임대아파트 연합회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 협상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특히 후보자들은 연합회 회장이나 부녀회 부회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주민회의에 매번 동참하면서 95%가 넘는 주민들을 조직해 냈다.
이들은 또 '광주공항 전투기소음피해 상무지구 대책위'를 구성하고 공군 제 1전투비행단의 전투기 이착륙으로 인한 소음공해에 대한 주민들의 피해에 적극 대응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생활자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마을공동체까지 형성한 후보가 등장하면서 유권자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거 때마다 개별적으로 속해있는 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를 해오던 모습에서 벗어나 노동자, 농민이라는 계급적 입장을 갖고 선거에 임했던 것이다.
아래의 연대에 바탕을 둔 지속적인 진지전과 투쟁을 통해 조직된 계급투표 전략으로 ‘또 다른’ 지역주의를 극복해낸 생생한 사례라 할 것이다.
이제 노동정치도 성찰이 필요하다. 사업장에서 근무할 때만 조합원이지, 집에 돌아가면 영락없이 침묵하는 소시민이 되는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참여 속에서 스스로 사회경제적 주체가 되려 할 때 세상은 그만큼 조금씩 바뀌게 될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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