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이후 우리의 일상이 불안해지고 있다. 연평도는 물론 수도권 주민들은 언제 남북의 충돌이 일어날지 불안에 떨고 있다. 장사정포의 위협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후방에 사는 필자도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그래도 일상의 삶은 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눈이 내려도 출근을 해야 하며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연평도 주민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포격이후 짐을 싸 섬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다시 불안한 마음으로 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그물을 손질하고 직장으로 출근해 하루의 노동을 한 후 가족과 함께 밥상머리에서 서로의 눈빛을 나누며 위로하며 일상의 삶을 유지한다.
꽃
김사인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헤멕여
학교 보내야지
그렇다. 밤새 신열이 일어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고통속에서도 일상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며 전쟁이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죽음속에서도 다시 삶을 꾸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그토록 우리의 일상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것이며 불안과 공포의 삶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비는 건강과 사랑, 풍요와 행복도 모두 일상이 굳건히 지켜져야 가능한 것이며 평화가 전제되어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해 우리의 일상이 결코 평화롭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통일부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전제로 한 통일에 대비한 준비로 2011년 정책목표를 잡았다고 업무보고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통일을 대비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통일을 이루어야 할 북과는 아무런 대화와 접촉도 없이 상대방의 변화 - 사살상의 체제 전환 - 를 전제로 한 통일은 상대방의 반발만 살 뿐이다. 내가 결혼자금을 아무리 많이 준비하고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아무리 굳건해도 상대방이 나에 대한 호의와 결혼에 대한 동의가 없으면 결혼 할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의 변화, 이명박식 대북정책으로 가능한가
"북한체제는 중국이나 베트남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TV 드라마를 보고,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위의 말은 누가 한말일까?
마치 최근 부쩍 북한내부의 변화로 인한 통일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같아 보인다. 하지만 위의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연내용중에 나오는 발언이다. 지난 2000년 이후 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사이에 남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사라지고 남한의 문화가 유통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다름아닌 6․15 공동선언 이후 획기적으로 진전된 남북관계 덕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주민들이 남한이 잘 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때문인 것이다. 남쪽의 지원물자와 사람이 북으로 오고 가면서 북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의사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남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한 정책에서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한 정책으로 진전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휴전이후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남북관계는 정부는 물론 민간분야마저 단절된 상태이며 서해상의 불안은 언제 전면전이 일어날지 모를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터져나오는 북한의 변화와 통일 가능성의 언급은 상대방의 경계만 높일 뿐이다. 북한변화에 대한 우리정부의 노골적인 의사천명은 북한내부에서 돌고 있는 우리문화의 유통이 힘겨워지게 할 것이고 북한지도부의 경직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는 서독의 동방정책이 결코 동독의 흡수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또한 통일되는 순간까지 서독은 흡수통일의사를 노골화한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외려 서독이 사회주의 동독보다 더 사회주의적인 복지정책을 폄으로써 동독주민들에게 매력적인 체제가 되었기에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통일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식 강경정책이 아니라 김대중식 햇볕정책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남북관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새해 다시 끊어진 남북을 잇는 땅길, 바닷길, 하늘길이 열리는 꿈을 가져본다. 그리고 전쟁의 먹구름이 사라지고 따뜻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해본다. 하지만 이는 이제 이명박 정부이 몫이 아니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전례없는 북풍속에서도 지방선거를 일구어내었던 민심에서 희망의 불빛을 보았듯이 새해 다시 방방곡곡에서 민초들의 일어섬이 있을 것을 간절히 소망해본다.
공은 다시 이명박 정부에게
다행히 2011년 새해공동사설에서 “북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하루 빨리 해소해야 한다”며 군사적 긴장완화의 필요성과 대화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할 뜻을 밝혔다. 물론 전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존중과 이행의지 표명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1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대화에서 남북관계 개선의지와 대화 필요성을 표명했고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해결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측 당국자는 그 전제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태도전환, 그리고 북핵문제에 대한 성의있는 자세 표명을 내걸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북의 대화의지 표명에 늘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던 태도는 보였던 점에 비해서는 분명 진일보하였다. 하지만 전제가 실현되면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자세는 성의 있는 자세가 아니다. 대화의 장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모든 의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는 6․15와 10․4선언의 이행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6․15와 10․4선언은 존중되어야 하며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남북간 대화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남북간 대화의 전제조건은 따로 있다. 그것은 서로 쌍방을 적대시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전제하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천안함 문제와 연평도 포격문제,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남북간 화해협력의 문제 등 모든 의제를 허심탄회하게 다루어나가면 된다. 일단 만나야 한다. 특히 이 모든 문제를 통크게 협의할 수 있는 고위급 대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민족의 최대명절이자 진짜 토끼해가 시작되는 설이 오기전 희망의 소식을 듣고 싶다. 새해 통영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일상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기원하며 간절히 빈 소망이기도 하다.
[평화와 통일]
김두현 / 평화뉴스 객원기자.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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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 "대화 없는 '변화', 상대의 반발만...전제조건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