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9일, 1978년 퇴역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씨가 왜관 캠프캐롤 기지에 근무할 때, 고엽제를 무려 100톤이나 매립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다시한번 주한미군이 과연 한국의 혈맹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일파만파를 일으키는 중이다.
5월 25일 발족한 "왜관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 때, 노진철 교수는 1978년 미 본토에서 발생한 '러브캐널 사건'이 왜관 캠프 캐롤 고엽제 매립후 처리에 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했다. 러브캐널사건은 1978년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가 국가보건긴급재난으로 선포할 정도로, 미국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비극 가운데 하나였는데, 본토의 환경재앙 소식을 접한 주한미군 수뇌부는 왜관기지에 있는 자국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지 안에 불법매립한 위험물질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위험물질이 고엽제인지는 아직 판명나지 않았지만, 1979년부터 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처리했다는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은 이 당시 미 본토 상황과 약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칠곡군 주민의 보건상황은 스티브 하우스의 증언대로, 고엽제가 그대로 현장에 있을 때 나타나는 폐해를 상당부분 뒷받침하고 있다. 2009년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칠곡군의 암사망자 수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십 만 명당 전국평균이 140.5명인데 반해, 칠곡군은 153.1명이나 했다. 무려 12.6명이나 많았다. 안찔마을, 박실마을, 등태마을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된 아곡리는 지난해까지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했는데, 최근 30여 년간 20여명이 간암과 폐암 등 각종 암으로 숨졌다고 했다. 이 정도면 보건당국이 특별역학조사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자료도, 현장도 못 파헤치는 한국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샤프의 발언은 불법매립현장 발굴조사를 회피하고 물타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불러 일으킨다. 혹시 샤프는 우리의 발굴실력을 의심해서 현장조사를 회피하고자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것인가? 염려마시라.
그리고 샤프는 언제 어떻게 어느 지역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해 계속 자료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발언이 정말로 고엽제 행방을 찾기 위한 불굴의 추적의지인지, 아니면 분노의 불길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끌기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자료조사하는 데 인력이 부족한가? 걱정마시라. 대한민국 검찰의 전가보도인 압수수색이 있다. 캠프 캐롤을 압수수색해서 관련자료를 분석하면, 이것도 사나흘이면 위험물질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미군기지에 대해서도 주권행사를 평등하게 하도록 불평등한 소파를 전면개정해야 한다. 소파(SOFA)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 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소파는 67년에 제정하였고, 2001년에 한 차례 개정하였다.
"SOFA...환경오염, 원상회복.배상 명시해야"
그러나 이 개정은 지극히 형식적인 개정에 그쳤고, 소파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한미상호조약 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로 돼 있다. 이로써 한국은 8천 여 만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를 미군에 공여해 주고도 임대료는 고사하고 공여지에 대한 아무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소파개정의 대전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며 최소한 토지소유자의 동의 불필요, 무상 주병권, 주둔기간의 무제한 등의 규정을 개정하고 ▶둘째는, 소파 본협정 및 부속문서(합의의사록, 양해사항) 등 소파 31조 전조항에 걸쳐서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셋째는, 방위비분담특별조치협정을 폐지하는 것이다.
또 소파개정에는 4대 원칙이 있다. 상호성, 호혜성, 평등성, 주권회복이다.
이에 따른 주요 개정안은 ▶첫째, 수사 및 재판, 형집행 등 모든 단계에서 형사관할권이 한국 사법당국에 전면적으로 주어짐으로써 사법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고 ▶둘째, 민사소송 및 판결 집행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규정을 마련하고 ▶셋째, 미군기지 공여 및 운용, 반환에 관한 규정을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주민들에 대한 피해가 없도록 개정하고 ▶넷째, 환경조항 신설 및 환경오염에 대한 원상회복과 미국 정부 피해배상을 명시하는 것 등이다.
오염원은 '기지 안'...조치는 외부에서?
그러나 현행 소파규정 환경부문을 보면, 우리의 요구인 '환경관련 규정 신설 및 원상회복과 손해배상 의무명시'안은 무시되고, 합의의사록에 선언적 문구를 넣는 데 그쳤다. 즉, "대한민국 정부와 합중국 정부는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정한다. 합중국 정부는 한국의 환경법령을 존중하며, 우리측은 미군의 안전을 적절히 고려한다"로 지극히 피상적 개정에 머물렀다. 또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를 채택했는데,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음은 물론이고, 환경관리기준을 정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정기적으로 환경문제를 논의한다는 선언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심지어 개악한 규정도 있다. 양해각서에는 환경이행 항목에 한국측이 '미군기지 외부오염에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번처럼 고엽제 무단매립 의혹의 경우, 오염원은 미군기지 안에 있다. 그런데 기지 외부에서 한국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당연히 미군기지 안에 있는 오염원을 제거하고 원상복구 및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소파의 환경관련 규정만 보더라도 미군에게 아무런 책임이나, 피해배상, 원상회복 조치를 강제할 수 없다.
이처럼 현행 소파는 한국 주권을 침해하는 조항들로 넘쳐난다. 그저 법적 효력이 없는 선언적 문구만 넘치는 기만적인 규정이다. 주한미군은 그동안 불평등한 소파규정에 기대어 대한민국 땅에서 넘치도록 과분한 특혜를 누려왔다. 그런 불의한 독점적 지위는 소위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을 비루하게 만들었고 이번 고엽제 대량 무단매립 같은 만행을 무제한적으로 저지르는 괴물주둔군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대한민국도 주한미군도 평등한 상호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충분히 그럴 때가 됐다. 그 시작을 소파의 전면적인 개정으로 열어가자.
[기고] 백창욱
/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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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욱 / "사법주권 회복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원상회복.피해배상 명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