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현실을 느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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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후쿠시마 이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아이들의 목소리

“우리는 지금 후손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넘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재 운전중인 원전 21개, 준비중인 원전 8개! 이 좁은 나라에서 하나라도 터진다면?”
“당신은 현실을 느낍니까?”


지난 11월 12일 토요일 오후, 경기도 과천의 한 공원에는 중학생 또래 아이들이 모였다. 얼굴에는 ‘반핵’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손수 만든 피켓도 들고 나왔다. 과천에 있는 ‘무지개 중등 대안학교’ 학생들이다. 이 학교에는 ‘평화’라는 이름의 수업이 있단다. 최근 아이들 이 핵발전의 위험성을 공부하고 나서, 자신들의 생각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것이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블로그(http://kgreens.org)에서 이 소식을 보고, 나는 이 아이들이 참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지금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서, 혹은 “대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묵인하고 있는 이 죽음의 체제, ‘핵’이 지배하는 폭력의 세상을 향해 아이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른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현실을 느낍니까?”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일본 땅의 절반 정도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 후쿠시마에서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도쿄 역시, 전 지역이 오염되어 있다. 오염된 지역의 어린이들은 코피와 설사에 시달리고 있다. 이 증상은 히로시마, 체르노빌 등의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이미 보고된 가장 흔한 피폭 증상들이다. (김익중, <원자력, 필요악인가>,《녹색평론》2011년 11~12월호)

바로 며칠 전에는 세슘에 의한 토양 오염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고, 안전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선량이 측정된 쌀이 발견되기도 했다. 방사성 물질에 토양이 오염될 경우, 일본의 농업과 식량안전은 사실상 붕괴되는 것이다. 농산물과 해산물 같은 먹거리를 아무리 엄격하게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오염된 식품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인들은 오염된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들에 의해서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 피폭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단지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핵발전소 수로 세계 5위이자 밀집도로는 세계 1위인 한국은 언제라도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지옥과도 같은 대재앙’의 가능성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확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후쿠시마를 도약의 기회로?

상황이 이런데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잠깐 핵발전소 문제에 관심을 갖는 듯하던 우리 사회 언론들은,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후쿠시마를 도약의 기회로 삼자”(<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제3차 공청회 발표자료> 중에서)는 한국 정부와 핵산업계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이 ‘경북 원자력 클러스터’와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추진 등을 통해 지금 착착 현실화되고 있는데도, 이런 가공할 움직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비판은커녕 사실보도라도 충실히 하는 언론조차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핵마피아 집단’의 언론장악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비단 언론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지식인과 정치인들, 종교인들, 심지어 시민단체들마저도 진실을 알리고 다음 세대의 생명과 안전을 고민해야 할 자신들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시민들의 뇌리에서 후쿠시마는, 그리고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성은 이미 까마득히 지워져 가고 있거나, 막연한 불안으로만 떠돌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

며칠 전 수능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 바로 앞에서, 또는 교회나 사찰에서 수많은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해진 풍경이다. 자식의 ‘성공’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과 정도가 달라서일 뿐이지, 수험생을 둔, 아니 자식을 둔 우리 사회 모든 부모들의 ‘염원’의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결같은 염원을 가진 이 땅의 부모들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어떠할지, 과연 우리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들이 살아야 할 이 땅의 운명이 어떠할지를 진지하게 묻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김은혜 역 |새잎 펴냄| 2011.06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김은혜 역 |새잎 펴냄| 2011.06
병원에 입원했어요. 정말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부탁했어요. “엄마, 나 못 참겠어요. 그냥 죽여주세요.” (알료사 벨스키, 9세)

할머니가 우리를 지하실에 가뒀어요. 그러면서 무릎 꿇고 기도했어요. 우리한테도 말세니까 기도하라고 했어요. 우리가 죄지어서 하나님이 벌준다고 했어요. 오빠는 여덟 살이었고 나는 여섯 살이었어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생각해봤어요. 오빠는 산딸기 잼이 든 병을 깨뜨렸어요. 나는 새로 산 원피스가 울타리에 껴서 찢어졌는데, 엄마한테 말 안 하고 옷장에다 숨겼어요. (아냐 보구시, 10세)

나는 열두 살이에요. 나는 집에만 있어요. 나는 장애인이에요. 우리 반 애들이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냈을 때, 내 옆에 안 앉으려 했어요. 나한테 닿을까봐 무서워했어요. …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요, 우리 아빠가 체르노빌에서 일해서 내가 아픈 거래요. 그래도 난 아빠가 아주 좋아요. (바냐 코바로프, 12세)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피폭자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책《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새잎 펴냄)에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이다.

오늘밤 이 모임에 온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에요. 저는 그 얼굴을 보러 왔어요. … 저는 토마리 원전 바로 근처에 있는 쿄와쵸에 살면서, 24시간 피폭당하고 있어요. 저도 여자예요.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도 하겠죠. 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건가요? … 이제 와서 이런 집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른이고 아이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쳐서라도 원전은 막았을 거예요. 이제는 두 번째 원전이 생겨서, 저는 지금까지의 두 배의 방사능을 맞고 있어요. … 여자애들끼리는 일상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을 수 없을 거라고.

일본의 핵발전소에서 배관 전문가로 20년간 근무하면서 거듭된 피폭으로 암을 얻게 되고, 남은 짧은 생애를 반핵운동에 투신했던 히라이 노리오 씨가 기록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목소리이다. 홋카이도에 있는 토마리 핵발전소에 이웃한 쿄와쵸에서 교원노조가 주최했던 강연회에서 그 여학생은 울면서 위와 같이 어른들에게 항변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부모들은, 그리고 교사들은, 아니 모든 어른들은 이와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과 함께 거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핵폐기물의 처리 비용을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66년 5월에 쓴 한 칼럼(<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에서 시인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이어 시인 김수영은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라고 했지만,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생각할 때 그 ‘몸부림’은 우리 어른들 모두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오는 11월 22일(화) 저녁 7시 30분, 물레책방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이 작은 강연회를 개최한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인 하승수 씨를 초대해 <탈핵과 탈토건의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여는 자리이다. 무력감과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망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록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토론과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현실을 느낍니까?”라고 아이들이 묻고 있지 않는가.






[변홍철 칼럼 9]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전 《녹색평론》 주간



"탈핵과 탈토건의 정치적 상상력"
하승수 변호사로부터 듣는 녹색당 이야기


2011년 11월 22일(화) 오후 7시 30분 / 장소 : 물레책방 (수성경찰서 옆 골목)
주관 :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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