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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해 생각을 낳자
권혁장 / 『생각한다는 것』(고병권), 『생각의 좌표』(홍세화),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2012년 02월 03일 (금) 01:23:59 평화뉴스 pnnews@pn.or.kr

숨겨져 있던 학교폭력이라는 괴물이 등장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었지만 이젠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괴물의 정체를 찾아내어 근원부터 없애려고 얘기가 분분하다. 괴물의 성장조건에는 오로지 시험점수 올리기에만 혈안이 된 교육, 성적으로만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 인성함양과 성숙한 민주시민양성을 저버린 교육이 있다. 교육당국의 반교육적 경쟁 붙이기와 성과 쌓기가 있고, 자기 자식만의 성공을 탐하는 학부모의 탐욕이 있다. 아이들은 또래와의 어울림을 통해 서로를 알고, 이해하며, 배울 수 있는 여유를 인정받지 못한다. 성숙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지만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것은 교과서의 일부에서만 가능하다. 학교는 진정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닌 시험을 치는 고사장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 『생각한다는 것』(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고병권 저 | 너머학교 | 2010.03
『생각한다는 것』(고병권 글. 너머학교. 2010)에서는 학교(School)의 어원을 소개한다. 그리스어 ‘스콜레’가 어원인 학교는 ‘여가’를 뜻한다고 한다.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니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여유를 갖고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없다면 진정한 학문과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책상에 배를 압박하며 머리를 처박는’ 공부법을 벗어나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들어 ‘생각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심복 ‘아이히만’을 등장시켜 생각하지 않는 행위가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파괴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악마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악마라고 한다. 악마는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존재라는 것이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준다.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사는 것과 다른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 우리가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제 머릿속에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오히려 내게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활동이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예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생각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은 낳는 것이지 갖고 있는게 아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시도가 ‘생각하기’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을 ‘공부’라고 부른다.  

우리는 아이들을 은밀한 노예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 『생각의 좌표』(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저 | 한겨레출판사 | 2009.11
『생각의 좌표』(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 2009)는 우리에게 묻는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 너의 생각인가?”라고. 칼 맑스의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다”라는 말을 빌려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주입된 지식과 통념에 대해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모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기 때문이다”라는 스페인의 어느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가 가진 생각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 (『자발적 복종』엔티엔느 드 라 보에티)를 통해 은밀한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린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낳기 위해서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다양한 견문과 경험,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목적과 수단이 분리된 삶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지음. 이학사. 2006)는 삶의 성찰을 위해,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 철학적 사유를 요청한다. 인간의 ‘생각’이란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바꾸려는 자기배려 라고 한다.

   
▲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저 | 이학사 |2006.09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에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수한 많은 사건과 마주치며, 그 사건이 내뿜는 낯섦을 경험하며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은 이 낯섦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는 삶의 무의식적인 의지로부터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알면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바깥에 없을 때, 그 낯섦을 마주할 때 마음에 집착하며 고통을 느낀다.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상황을 강요받고 그것에 맞춰 행동해야하는 낯섦을 마주할 때 삶을 회의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된 행동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과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 즉 타자를 무수히 만난다. 타자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친숙하고 편안한 세계에 낯섦과 불편함을 가지고 오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다. 당당히 맞서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한다.

아이들이 이유 있는 자신의 삶을 살게 하자.

자신만의 ‘생각낳기’를 저버린 교육,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외면한 교육, 즉 진정한 공부를 포기한 교육이 괴물이 되었다. 이 괴물이 학교폭력에 있어서 아이들을 가해자, 방관자로 만들고 있고 ‘악의 평범성’을 실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탐욕을 아이들의 삶에 반영한다. 그 탐욕의 실체는 ‘경쟁에서 이겨라, 일등만이 살아남는다. 굴종하기보다 군림하라’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이며 이는 아이들을 은밀한 노예로 만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낯섦과 마주치지 못하게 한다. 다양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낯섦을 통한 배움의 기회를 막아선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가“라는 삶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아이들의 물음을 불온시 한다. 목적과 수단이 분리된 노동의 고통을 강요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빼앗는다. 이제 되돌려야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유만으로 자신의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탐욕을 내려놓아야한다. 그것이 우리 또한 행복해 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책 속의 길] 54
권혁장 /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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