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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폭, '2세', '환우' :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이현석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2세환우 김형률 평전』(전진성 저 | 휴머니스트 | 2008)
2013년 08월 30일 (금) 00:30:39 평화뉴스 pnnews@pn.or.kr

0. '김형률'

모든 삶은 한 권의 책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의 삶은 문자 그대로 ‘책’이 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책을 읽는 데 있어 딱히 분야와 종류를 가리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의 책’을 꼽아보라고 하면 ‘어떤 이의 삶’이 활자화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 제가 읽게 된 그들의 삶이 그 책을 읽던 제 삶의 분기마다 심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었습니다. 인간의 조건과 노동의 가치를 숙고하게 하는 동시에 역사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되묻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십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서준식 선생의 <옥중서한>이었습니다. 내심을 개조하려는 외압에 17년 간 맞선 한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두툼한 서간집을 배낭에 넣어 다니며 여행지에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비참한 시대 속에서 인간이 존귀함을 지켜나가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권의 책으로 남은 또 다른 이의 삶이 있습니다. 삼십대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책장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이 저의 삼십대를 추동할 것이라는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김형률. 그의 이름조차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섭니다. 그런데 그를 수식하는 ‘한국원폭2세 환우’에 이르면 더욱 아리송해 질 것입니다. 1970년 7월 부산에서 태어난 김형률 씨는 병약해 보이는 외형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감기와 폐렴과 같은 기관지 감염 증상을 달고 살았습니다. 이유는 ‘면역글로불린 G 증가성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Immunoglobulin deficiency with increased IgM)’이라는 질환 때문이었지요. 선천적으로 신체의 면역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각종 감염성 질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아파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짧지 않은 여정 끝에 그가 당도한 곳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해방 이후의 경상남도 합천이었습니다.

1. 한국원폭

   
“합천 군민들을 히로시마로 떠민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제국주의였다. 우선 철도나 도로 등 교통망의 정비로 일본인들의 세력이 확대되자 토착민은 오히려 밀려나게 되었다. 다음은 정치적 탄압으로, 의병활동이나 삼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합천 군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도일을 선택했고, 합천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수탈을 목적으로 한 농업 구조의 재편으로 자연적 평형이 파괴되어 기근이 빈번해졌다. 마지막으로는 일제의 침략전선의 확대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강제징용이 실시되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151p.)


“<한국의 히로시마>는 합천에서 히로시마로의 이주가 혈연이나 지연을 매개로 한 소위 ‘사슬형 이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합천은 본의 아니게 원폭을 맞은 적 없는 원폭의 현장, 즉 한국의 히로시마가 되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153p.)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핵’에 관한 최신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의 핵 관련 소식들을 정리해보니 국내 뉴스는 핵발전소 납품 비리가 권력층 깊이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들이고, 국외 뉴스는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담수가 3년 동안 매일 30톤씩 태평양으로 유출되고 있었으며 미성년자의 갑상선암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핵발전이 청정에너지이고 희망이라는 이야기는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핵에 대한 뉴스들이 이토록 암울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핵에너지’라는 것은 오펜하이머 연구팀이 로스앨러머스(Los Alamos)에서 최초의 핵실험을 했을 때부터 ‘살상’을 위해 개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핵에너지가 가진 미증유의 살상력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단 두 곳에 투하된 핵탄두로 70만 명이 피폭 당했으며 그 중 21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흔히 일본을 두고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70만 명의 피폭자 중 7만 명이 조선인이었고 그 중 4만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알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김형률 씨의 어머니는 1945년의 그날, 살아남은 3만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많은 조선인들과 함께 부모의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합천은 피폭자 군락이 형성되어 ‘한국의 히로시마’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 아래 총체적으로 억압받던 상황에서 피폭자에 대한 원호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한국원폭’이 생경한 조어로 느껴진다면 70년 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던 소수자들을 마치 없는 양 무시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원폭’은 전쟁의 산물을 넘어 역사의 산물입니다. 합천 사람들이 합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들이 히로시마라는 곳에 밀집된 이유, 또 다른 합천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징용된 이유, 그리고 피폭당한 그들이 다시 합천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 어느 하나 역사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에 대해 무지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역사의 상흔을 손쉽게 지워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한국원폭 2세'

“그러니 (정부가) 병만 낫아 주면 좋다 안 합니까. 돈 뭐할 건데? 병을 낫아 줘야 돼. 병을 우찌 낫을꼬. 몸이 건강해야 되지. 돈 해서 뭐할 거고. 몸이 튼튼하니 눈도 밝고 해야 사람이 활동하고 사는 맛이 있지. 자식이라고 낳은 거 하나라도 성해야지. 전부 병신이라. 와 이런 일이 내한테 밀려왔을꼬. 내 억울하네요. 뱀이 한 거 같으면 잡아 직이고 싶구만. 나는 할 말이 꽉 차서 말로 못하겠습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164p.)

“병든 몸에, 경제적 곤궁에,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자식 걱정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너무 컸다. 혹시 내 아이도 아픈 것은 아니겠지, 멀쩡한 내 자식들이 혹여 결혼이나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피해의식이 남달리 컸다. 형률씨가 가끔 말했던 “억압의 구조화”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37p.)

2002년 3월 22일 한국청년연합(KYC)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김형률 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원폭 후유증을 지닌 원폭피해자 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를 ‘커밍아웃’으로 표현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아직까지 형언할 수 없는 부담과 고통을 수반해야하는 일인 것처럼 그가 원폭 2세라는 것을 밝히는 것 역시 사회적 제약을 동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들은 식민지지배, 원폭피해, 그리고 사회적 방치라는 삼중고에 시달려왔는데 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런 삼중고에 더하여 사회적 차별이라는 굴레를 하나 더 쓰는 일이었지요.

그렇기에 ‘원폭 2세 환우’라는 것을 밝히는 일에 가장 거세게 저항한 것은 당사자들인 ‘원폭 2세’들이었습니다. 피폭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병증 없이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2세들이 적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B형 간염 환자들이나 HIV/AIDS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근거 없는 차별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원폭 2세 환우’라는 정체성을 공개하고 이것을 공적인 문제로 상정하게 될 때 받게 될 차별의 공포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원폭 2세 환우들과 건강한 원폭 2세들이 겪는 삶의 모습과 현실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건강한 원폭 2세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김형률 씨는 ‘원폭 2세 환우’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음을 알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사회 안전망과 인권의식이 결여된 풍토 속에서 역사적, 국가적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병증의 고통과 아픔은 단지 개인이 감내해야하고 만약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저 개인의 책임에 불과한 사적 불행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형률 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과 고통의 이야기, 소외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외치지 않으면, 매일 전쟁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일상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매일매일 사멸해가는 원폭2세 환우들의 삶을 대신할 수 없으며 전쟁과도 같은 삶을 인권이 유린되어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국가권력의 부당한 폭력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68p.)

   
▲ EBS 지식채널e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방송(2010년 8월 2일) / 김형률 씨와 부친 김봉대 님 - 김봉대 님을 다룬 다큐멘터리 인권영화 '아들의 이름으로'(2011) 이미지

내외부의 부담을 짊어진 채 ‘한국원폭 2세 환우회’를 건립한 김형률 씨는 이후 헌신적으로 원폭 2세 환우 운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2005년 5월에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심포지엄에 다녀온 지 5일 만에 지병이 급격히 악화되어 서른여섯의 나이로 작고하기 전까지 3년 동안 그는 사력을 다했습니다. 사력을 다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환우회 활동을 하는 3년 동안 지병과 그로 인한 폐렴, 각혈, 쇼크 때문에 덱사메타손 주사, 항생제 주사, 기관지동맥색전술 등을 받기 위해 입원만 십여 차례 이상을 했기 때문이죠.  

3. '한국원폭 2세 환우'

“과연 누가 과학이 중립적이라 했던가? 현대 과학의 이면에는 정치, 사회, 경제적 권력이 꿈틀대고 있다. 과학 연구의 목표를 설정하고 주제를 선정하는 주체는 대체로 과학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나 자본과 같은 거대조직들이다. 특히나 많은 인력과 경비가 소요되는 생명공학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어진 과학적 정보들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이 독점하거나 특허의 형식으로 상업화된다. 따라서 과학은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유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138p.)

“원폭 2세 남성은 빈혈 88배, 심근경색 및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정신분열증 23배, 천식 26배, 갑상선 질환 14배, 위십이지장궤양 9.6배, 대장암 7.9배 높게 나타났고, 여성도 심근경색 및 협심증 89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양 64배, 천식 23배, 정신분영증 18배, 위십이지장궤양 16배, 간암 13배, 백혈병 13배, 갑상선 질환 10배, 위암 6.1배 높았다”  - 국가인권위원회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 및 건강실태 조사’(연구용역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1945년 9월. 원폭이 투하된 지 한 달 후. 연합국 총사령부는 ‘9월 상순인 현재 핵 방사능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공식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그때도 누구도 믿지 않았고, 지금 보면 그저 가소로울 뿐이죠. 김형률 씨가 사망하고 2년 뒤인 2007년에 미국-일본 공동 연구기관인 ‘방사선영향연구소(Radiation Effect Reaerch Foundation)’는 피폭 2세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유전효과가 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라고 말이지요.

간단한 과학상식을 생각해봅시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이루는 체세포의 획득형질은 유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환과 난소와 같은 생식기관 안에 있는 생식세포의 유전자변이는 유전이 됩니다. 생식기관은 방사능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관 중 하나지요. 생존 피폭자 50여만 명 모두가 기적적으로 생식기관에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을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간단한 정책비용을 따져봅시다. 50여만 명의 생존자에 더해 그 2세와 후손들에 대해서 피폭 영향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미국과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얼마가 될까요?

민감한 국제정치 역학과 막대한 보상금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결과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운 소위 ‘과학적’ 조사 결과는 ‘없다’가 아닌 ‘알 수 없다’였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다'는 결론이 '없다'는 결론으로 환원되어 지금 이곳에 엄연히 존재하는 원폭피해 2세 환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되었고 오도된 합리주의와 과학적 정합성의 신화로 인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같은 라인, 같은 베이(Bay), 같은 공장에서 십 수 명이 혈액 관련 암으로 죽었고 반도체 산업 종사자 중 육십 여명이 유사한 질병으로 사망했으며 지금도 고통 받는 이들이 병마와 싸우며 생존해있는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회피되고 무시되었던 작금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이쯤 이르면 과학이, 그리고 과학의 한 분과이며 제 호구지책인 의학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물론 합리주의, 과학적 정합성, 실증주의 등 역사를 통해 정교해지고 구조화된 것들의 가치를 폄훼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것들이 최대다수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합리성, 정합성, 실증성 등이 가지는 중립성의 신화를 걷어낼 필요가 있음을 김형률 씨와 원폭피해 2세 환우들 그리고 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우리에게 그들의 병든 몸과 소리 없는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시 묻게 됩니다. ‘의학은, 의술은, 그리고 의료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하고 말이지요. 이제 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평생이 걸릴 지도 모르며,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에 있어서 제가 이 책을 저의 삼십대를 추동할 책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스스로의 몸에 시간의 고통을 새기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쓸모 있게 준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김형률 씨의 삶과 죽음을 통해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것이 그들과 저의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 만큼이나 김형률 씨를 수식하는 표현은 바로 ‘인권운동가’입니다. 평전의 저자가 말하는 인권운동가 김형률이 가졌던 생의지의 이유로 결언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는 너무 아팠기 때문에 생명권을 중심에 둔 인권운동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240p.)


   





[책 속의 길] 109
이현석 / 의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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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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