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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상력, 슬픈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권오현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 M. 바스콘셀로스 지음 | 박동원 옮김 | 광민사 | 1979)
2013년 08월 23일 (금) 10:20:57 평화뉴스 pnnews@pn.or.kr

  군대 시절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석사과정을 마치고 비교적 많은 나이로 입대를 한 게 1990년경이었다. 비록 단기사병이었지만 행정보조원으로 민사심리전 업무를 맡았다. 거기에는 정훈 업무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러저러한 서류를 보면서 업무를 파악하고 수행해 나가다가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이른바 금서목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병영 내 금서목록은 존재하지만, 당시는 그야말로 불온서적으로 치부되면 소지하는 것조차 범죄로 인식되던 때였다. 그 금서목록의 제1호는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었다. 87년 6월 항쟁을 이미 치루고 난 후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분위기로 보면 이해되었다. 그저 실소를 짓고 말밖에. 그런데 그 금서목록 제2호는 의외의 작품이었다. 그것이 바로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José Mauro de Vasconcelos)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Meu Pé de Laranja Lima)』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대략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광민사(光民社) 출판본은 서지사항에 1981년 4판 인쇄로 나와 있다. 학창시절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이었는데, 생경한 남미의 소설이었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 M. 바스콘셀로스 지음 | 박동원 옮김 | 광민사 | 1979)
  소설은 “때로는 크리스마스 날에도 악마의 소년이 태어난다”라는 1부의 제목으로 시작한다. ‘제제’라는 이름을 가진 5살짜리 어린 애가 주인공이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 곳에도 쓸모없고 태어날 필요가 없었다고 느끼는, 거기다가 충동질을 하는 악마가 마음 속에 있어 말썽을 부리지 않을 수 없는 제제는 매를 맞는 게 일상이 되어있다. 일생의 첫 풍선이 망가졌을 때나, 아버지를 위로한답시고 저속한 노래를 불렸을 때 돌아오던 모진 매는 제제로서는 이해도 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하지만 실상 그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조차도 제제만큼 소외된 인물들이다. 실직한 아버지, 직업과 가사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누나, 싸움이 벌어지면 오히려 제제를 불러내는 겁쟁이 형 등등. 제제를 경원시하는 동네 사람들도 결국은 생활에 찌든 브라질 빈민들이다. 세상에 의해서 버려진 가련한 영혼들인 것이다. 제제는 5살 나이에 자살을 생각할 만큼 조숙했다.


  그렇지만 제제는 동생 루이스를 잘 돌봐주고,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과 나눠먹으며 살려고 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제제는 이러한 일련의 생활을 밍기뉴 혹은 슈뜨르까라고 부르는 작은 라임오렌지나무와 대화를 하면서 풀어나간다. 제제가 저지르는 일련의 사건은 세상을 좀더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지적 욕구의 결과라고나 할까. 제제는 이웃집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갖가지 지식을 배우고 떠돌이 가수 아리오발도에게 감성을 배운다. 또한  제제와 뽀르뚜가의 세대를 넘어선 우정을 그리고 있다. 조숙한 제제와 그런 제제를 유일하게 이해해 준 뽀르뚜가. 그런 그가 맞은 갑작스런 죽음은 제제에게 홍역과도 같은 통과제의가 되었다. 그 이후에 제제는 라임오렌지나무도 떠나보내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한다. 2부의 제목이 “슬픔 속에서 아기 예수는 탄생한다”이라는 것이 상기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성장소설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 제제의 성이 바스콘셀로스이다. 작가 자신이 경험했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전개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처음 국내에 번역된 것은 1979년이라고 한다. 바스콘셀로스를 일약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68년이니 우리나라에는 십여 년이 넘어서 소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광민사’에서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판사 이름이 ‘동녘’으로 바뀌고 나서 재발간되었을 때에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이희재 화백에 의하여 만화로 개작되기도 했으며,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소개가 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브라질에서는 2012년에 영화로 다시 제작하여 올해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역자후기에 보면 “작가는 인생에서 슬픔이란 우리가 이성을 갖게 되고, 인생의 양면성을 발견함으로써 동심의 세계를 떠나는 그 순간에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도시 동심(童心)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리다는 것은 결국 아집과 몽매의 결정체 아닌가. 동심을 찾는다는 것이 유아적 퇴행이라면 곤란하다. 이 소설에서는 동심이 가진 순진성을 이용해서 세계를 밝게 보고자 하지 않는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꽃과 같은 화려함이 아니라 강물에 떠다니는 낙엽과 같이 조촐한 것이며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철저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프랑스에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있다면 브라질에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세계관은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 똥』과 맞닿아 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주제의식이 그렇고, “좋은 책이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말이 그렇다. 제제가 성인이 된 43년 후에 뽀르뚜가를 그리며 한 말에 함축되어 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별로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이렇게 순수한 작품이 왜 금서목록의 서열 2위 자리를 차지했을까. 소녀적 감성을 울리면서 많은 학생 독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제제의 이야기에 무슨 불온성이 담겨 있을까. 금서가 되는 이유는 대충 몇 가지 범주로 추측할 수 있다. 작가에게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껄끄럽거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스콘셀로스의 이력을 검토해도 특별히 매카시즘에 걸릴 만한 부분을 찾기 힘들다. 어릴 때 엄청 가난했다는 것, 의학공부를 하다 말았다는 것, 그리고 소설가로서 특이하게 권투 트레이너의 경력이 있다는 것 정도이다. 혹시 멕시코 혁명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와 혼동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하긴, 마르크스(Mark)와 막스(Max)를 구분 못해서 베버의 사회과학 원서를 들고 귀국하던 유학생을 체포했다는 소문이 돌던 시대이니 불가능하지는 않다.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용의 문제일 텐데, 이 소설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대략 브라질 빈민의 이야기를 통하여 계급사상 고취했다는 점과 주인공 제제의 사고방식과 논리가 변증법적이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거개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점에 착안했을까? 만약 그것이 문제였다면 이 작품을 가장 확실하게 읽은 독자는 정보당국이 아닐 수 없다. 나치 정권에서 탄압 받던 어느 문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훌륭한 독자는, 대부분의 독자는 작품을 보고 웃고 마는데 그 속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금지시킨 정부의 국민계몽선정성이었다고 했던 발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문제는 이것 말고 더 있다. 책을 펴낸 출판사와 유통 경로이다. 앞서 언급한 광민사라는 출판사가 시국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른 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사건인데, 이로서 사장이 투옥되고 출판사는 강제폐업이 되다시피 하였다. 사장의 동생이 동녘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복구하고 이 책을 재출간한다. 그 후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 책이 전파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되고, 거의 백만 부 이상 팔리는 상황에 이른다. 동화, 만화, 연극 등으로 개작되기도 하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제제에게 보내는 편지'를 투고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또 이 대학생 독자들이 교단에 서게 되면서 교사추천도서목록에 자주 오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대학 운동권이 만들어 낸 베스트셀러라고나 할까. 이쯤 되면 놀랍지 않은가, 출판사와 유통 경로까지 염두에 둔 금서 목록이라니. 전 시대에서 횡행하던 검열의 눈초리는 매섭기 그지없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 책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오늘날에 전개되는 은근한 압박과 통제 속에서 벌어지는 자기검열을 저어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역사 속에서 지난 시절의 폭정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학창시절에 감성과 낭만으로 이 책을 보았을 독자들에게 재독(再讀)을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논리와 상식이 무시된 채 벌어지는 폭력을 극복하고 말이다. 슬픈 인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어린 제제가 가진 사랑과 상상력은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붙이자면 작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 즈음이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니, 올해같이 무더운 여름날에 웬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하지만 남미는 우리와 계절이 다르다.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더위와 함께 온다. 폭염의 계절에 충분히 공감할 만한 무대이다.

   





[책 속의 길] 108
권오현 / 문학평론가. 대구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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