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사회와 민주주의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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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국익을 빙자한 엘리트들의 욕망과 전체주의"


정부의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으로 전국이 뜨겁다. 우리는 과거 정권들이 국익을 앞세운 정책결정으로 사회적 갈등을 얼마나 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다. 참여정부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MB정부는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로 정권의 위기를 자초한 바 있다. 지금의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 역시 국익과 관련된 정책이 낳은 고통이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고서 강행할 경우 이전 정권의 경험으로 비추어 우리는 더 큰 불행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가? 현 정권이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성장’, ‘성공’, ‘성과’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성장 깔아뭉개고 또 다른 슬로건 ‘창조경제’를 내세운 것도 성과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결과다. 성과사회는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으로 대표되는 긍정성의 사회이다. 무한정 ‘~을 할 수 있음’, 즉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당연히 이런 사회의 시민은 ‘성과적 주체’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영원한 패자가 된다.

성과주체는 정부·대기업·공공기관 그리고 중소기업에서 프로젝트나 일감을 처리할 때 경쟁자로부터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선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더 새로운, 더 다른, 더 많은 이익을 산출하기 위한 사고와 행동이 강제된다. 삶에는 여가도 휴식도 없다. 이런 점에서 성과사회의 긍정성은 동시에 피로사회라는 부정성을 자체 내에 함축하고 있다.

성과사회는 주체에게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우리의 피로가 아니고 개인화된 나와 너의 피로가 있을 뿐이다. 이런 피로는 폭력이다. 모든 공동체, 친밀함, 연대, 배려를 넘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한다. 이처럼 긍정성의 과잉상태에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성과주체는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고, 착취자인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성과사회에 내재한 이런 부정성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치, 양심과 염치가 돋보이는 정치, 사람을 찾는 정치인 민주주의의 결여와 관련된다. 성과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오직 국가권력의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들의 경멸은 교묘히 은폐되거나 관리되는 민주주의로 고상하게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믿음 속에서 정치적 엘리트주의는 자본주의와의 선택적 친화성으로 결합한다. 그들은 정부에서든, 기업에서든 고위직이란 대중적 승인으로 권력을 쥐게 된 것이기 보다는 개인적 자질과 예외적 능력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성과사회에서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을 위임받고 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시장 엘리트들은 권력과 부로 보상을 받는다.

오늘날 정치엘리트나 시장엘리트들은 더 이상 선거와 민주주의를 권력을 정당화하는 원천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교육을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원리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성패는 공교육의 질과 이것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에 달려 있다. 공교육은 시민 정신의 실천에 있어 근본적으로 중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공교육이 문명화된 감수성 계발과 사회적으로 유용한 경쟁을 결합할 수 있는 시민교육이어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엘리트들은 시민적이고 문명화된 대중보다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전문화된 대중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사영화를 통해 초중등 교육에서 공교육의 독점을 분쇄하고 학교의 사립화 내지 특수화를 부추기고 조장하여 지배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 다양한 엘리트 사립 고등학교와 대학들은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들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화되고 전문화된 대중은 역설적으로 점점 더 무지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대규모 폐퇴가 이루어진다.

밀양 송전탑 건설의 문제가 국익을 빙자한 저들 엘리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도 오래 지속된 공교육의 질적 저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개인화되고 전문화된 대중은 각자의 이익과 전문성에만 골몰할 뿐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는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엘리트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법에 의한 지배, 사적 소유권, 권력분립과 언론 및 결사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고 공언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신기루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엘리트들의 횡포로부터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고 무시하는 독재, 즉 전도된 전체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민주주의는 여가도 휴식도 없는 사람들의 삶의 필요로부터 터져 나오는 그 무엇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은 다시 시작된다.






[이재성 칼럼 46]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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