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위에 짓는 송전탑, 평화와 정의를 위해 지금 멈춰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10.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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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청도 등 6개 지역 주민ㆍ천주교 사제단 "송전탑 공사 중단" 기자회견ㆍ미사


"송전탑 건설 반대"...밀양과 청도 할머니들(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건설 반대"...밀양과 청도 할머니들(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7일 오후 1시. 경남 밀양 산외면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장 4공구' 금곡헬기장 앞. '765kV OUT'이라고 적힌 빨간색 조끼를 입은 밀양 할머니들과 '송전탑 반대'라고 적힌 파란색 상의를 입은 경북 청도군 할머니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뒤따라 흰색 제의를 입은 신부들과 묵주를 든 수녀들도 가세했다. 반대편 펜스 앞에는 1백여명의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금곡헬기장 입구를 막아 섰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밀양 주민들이 금곡헬기장 앞에 지어놓은 좁은 비닐움막과 금곡헬기장 사이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에 순식간에 3백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송전탑 공사자재를 실은 헬리콥터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떠오르자 빨간색 조끼를 입은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70대 할머니가 "노이로제 걸리겠다. 공사 좀 그만해라"고 소리쳤다. 대치 중인 도로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미사 중인 신부,수녀, 주민 뒤로 대치 중인 경찰(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미사 중인 신부,수녀, 주민 뒤로 대치 중인 경찰(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이 들어서는 전국 6개 지역 주민과 천주교 사제단이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밀양, 청도, 대구 달성군, 충남 당진, 울산 울주군, 구미 신동마을 등 전국 6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는 7일 오후 12시 밀양 금곡헬기장 앞에서 '전국 송전탑 공사 반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밀양 사태를 보면서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는 송전탑에 대해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각성해야 한다"며 ▶"힘없고 약한 농민과 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 ▶"전력 시스템 개혁"을 요구했다. 또, 언론을 향해서는 ▶"왜곡보도 중단"을 촉구했다.

'전국 송전탑 공사 반대 촉구 기자회견'(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국 송전탑 공사 반대 촉구 기자회견'(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송전탑 공사 구간인 밀양, 청도, 당진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야당인사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전이 공사를 위해 자재를 쌓아놓은 금곡헬기장 앞에서 경찰 1백여명과 대치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전은 회견이 진행되는 1시간 내내 헬기에 자재를 싣고 공사장에 날랐다. 이날 한전은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 5곳에서 아침 8시부터 6일째 공사를 강행했다.

60년 넘게 밀양에서 살고 있는 이종숙 산외면 보라마을 이장은 "평생 일군 재산을 도둑질 맞게 생겼다"면서 "철탑 때문에 똥값 되는 땅. 아무도 안 산다. 보상금도 필요없다. 그냥 이 땅에 살게 해달라. 경찰은 죄없는 노인들 그만 괴롭히고 불법 저지르는 한전 직원들이나 잡아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765kV OUT' 조끼를 입고 경찰을 보는 주민(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765kV OUT' 조끼를 입고 경찰을 보는 주민(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산외면 희곡리 주민 김응록 할아버지는 "철탑이 52기나 서는데 건강에 문제 없다고? 정상적으로 합의했다고? 무조건 양보하라고? 이기주의라고?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이 와서 살아라. 우리가 싫다는데 왜 강요하나. 왜 힘없는 우리를 괴롭히나. 정부는 노인들을 사지로 내몰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계삼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은 밀양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시민을 "외부세력"이라고 지칭한 일부 언론 언급하며 "울음과 절규를 내뱉는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모인 시민들을 외부세력이라고 부르는 언론사들이야말로 정론직필을 망각한 진짜 외부세력"이라면서 "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들은 지금 당장 취재를 멈추고 이곳을 떠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전과 일부 언론을 비판하는 피켓을 든 주민(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전과 일부 언론을 비판하는 피켓을 든 주민(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산외면 주민 김모(67)씨도 "언론사들도 제대로 보도 안할거면 오지마. 다 익은 벼도 철탑 때문에 베도 못하고 여 와서 막고 있는 노인네들 가슴에 못 박을거면 오지마"라고 말했다.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이은주 전 부녀회장은 "송전탑이 들어서는 곳은 다 시골이다. 그래서 할매, 할배들이 많이 막고 있다"면서 "그 곳은 그분들이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죄 없는 할매들과 도와주러 온 시민들에게 돌팔매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같은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도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라는 주제로 금곡헬기장 앞에서 오후 3시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 미사'를 진행했다. 이날 미사는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와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 장동훈 인천교구 신부가 공동집전했으며, 서울과 부산, 대구지역 신부 40여명, '올레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포교성 베네딕도 수녀회',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등 밀양.청도.당진 주민 1백여명이 참석했다.

경찰과 등지고 미사를 드리는 정의구현사제단(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찰과 등지고 미사를 드리는 정의구현사제단(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부들 위로 자재를 실은 헬기가 지나간다(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부들 위로 자재를 실은 헬기가 지나간다(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래 미사 예정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지만 사제단의 "헬기사용 중단" 요청을 경찰과 한전 측이 일방적으로 묵살해 1시간 30분가량 늦게 진행됐다. 지연되는 동안 수녀들과 평신도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1시간 가까이 묵주기도를 반복해 낭송했다. 또, 이 과정에서 사복경찰들이 수녀들과 신부들의 얼굴을 채증해 사제단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장동훈 신부가 "사과"와 "사진 삭제"를 요구했지만 담당 경찰관이 "판례상 불법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애매하다"고 대답해 주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승구 신부는 "대도시의 끝없는 욕심으로 시골 노인들은 뼈와 가죽만 남았다"면서 "작은 텃밭마저 송전탑에 내어줘야 하는 밀양의 상황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침묵으로 공범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내고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라며 "주민들의 눈물 위에 짓는 송전탑을 평화와 정의를 위해 지금 당장 멈추라"고 호소했다.

(왼쪽부터)미사 중인 장동훈 인천교구 신부,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미사 중인 장동훈 인천교구 신부,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2013.10.7.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준한 신부는 "정부와 한전, 보수언론은 밀양 할머니들의 신념을 돈으로 모독하고 있다"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넘으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헬기 아래 누워, 굴착기에 목을 묶어, 단식을 하며 삶을 지키는 할머니들에 대해 경찰은 오로지 한전 편에 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적어도 중립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어, "아픔을 나누려는 선한 자들을 외부세력으로 모는 언론과 이들을 가두려는 정부야 말로 가장 불순한 외부세력"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은 8일 아침 10시 30분에도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권침해감시단'이 헬기장서 체증 중인 경찰에게 경고하는 모습(2013.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권침해감시단'이 헬기장서 체증 중인 경찰에게 경고하는 모습(2013.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전은 지난 2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단장면 3곳, 부북면 1곳, 상동면 1곳 등 5곳에서 터파기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은 공사현장 진입로를 봉쇄하고 반대 측 주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몸싸움을 벌였으며, 금곡헬기장 앞 반대 대책위 농성장 철거를 위해 주민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일 밀양경찰서는 공사를 저지하던 시민단체 활동가, 시민 등 11명을 연행했다. 이 가운데 이재식(42)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수석부본장과 이상홍(38)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홍지혜(36)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최진(40)씨 등 4명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 '건조물 침입 죄' 등의 혐의로 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7일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은 4명 가운데 이상홍 사무국장에 대해서만 영장을 발부하기로 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청구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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