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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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관심받지 못하는 이유, 진보의 성찰이 절실하다"


작년 봄, 어느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여했었다.대부분 가족단위로 참가한 사람들이었고 햇살 아래서 어린이들은 재잘재잘 쉴새없이 떠들고 있었다. 간단한 시작행사를 하는 순서가 되었고 사회자는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동지여러분..."으로 시작한 말에 내 맘이 불편해졌다. ‘이 자리에 도대체 누가 말하는 사람의 동지인가’,  ‘대부분 가족단위로 참가한 사람들은 저 동지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등의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고도 참가자들은 서너번 더 말하는 사람의 ‘동지’로 불리워졌다.

이런 식의 모습은 진보적 단체들의 집회 시위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민대회’라 이름 붙여진 행사장에서도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들의 표현은 참가한 사람들의 구성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홍보를 주요한 목적으로 함에도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와닿지 않는 표현들로 가득한 연설도 보인다. 합의된 공동행동의 주제를 벗어나 자기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에서부터 ‘투쟁’으로 인사드리고 ‘투쟁’으로 인사를 마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진보진영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이런 모습이 과연 시민들에게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까 고민스럽다.

진보를 내세우는 많은 사회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주장이 실현되는 것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작게는 회원의 확대와 크게는 여론의 지지를 동반해야 한다. 이른바 열 사람의 한걸음으로 ‘더불어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권력이 과거로 회귀하고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소수가 동의하는 ‘주장’이 저절로 실현되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몇가지 사례들은 돌이켜보면 필자의 과거 모습이기도 하고 진보진영이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이다. 외부행사장에서 표현을 적절히 바꾸는 표현의 문제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지중심’의 사고와 행동을 ‘시민중심ㆍ대중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지’를 중심에 두고 시민을 바라보는 생각과 방식의 비대중적 한계,현실에서의 괴리가 진보진영이 지금의 위기상태로 온데 일조했다고 본다. 이미 오랫동안 정치적 주장에 대해 뜻을 같이 하고 행동을 해온 사람들에 익숙한 사고와 방식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공감이 있어야 관심과 애정이 생긴다. 진보적 정당 단체들이 젊은 세대로부터 관심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외부적 요인과 함게 내부적 요인을 잘 살펴야 한다. 장애인,노인,여성,어린이,청소년,직장인,자영업자 등 수많은 이름의 대중들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하나의 행동을 진행해야 한다. 내세운 주장이 공익적 가치를 가진다 하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과 방법이 대중들에게 지지받고 호응받지 못하면 힘을 얻을 수 없다. 방법상의 좌우편향은 역효과를 일으켜 오히려 여론의 지지를 획득하기에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진보진영 일반에 대해 더욱 심각한 탄압을 하고 있다. 유신독재 시절부터 공안업무를 담당한 김기춘 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노골화된 ‘종북공세’와 함께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하고,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정당해산 심판청구까지 했으며 한 국회의원은 멀리 프랑서에서의 합법적 시위에 대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까지 하는 상황이다.

진보진영이 우리 사회의 한 축으로 사회진보적 가치를 주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진보로 살아남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2017년 권력교체기를 기다리고 준비하기엔 눈앞의 상황이 심각하다.어제와 다른 오늘을 준비하지 않으면 진보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함께 울고 분노할 ‘동지’들이 있을지는 모르나 장대비를 피할 우산이 되어 줄 친구들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새롭고 젊은 진보의 친구들을 찾고 다가갈 섬세하고 치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동지들과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함께 열린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언젠가 햇살 쏟아지는 진보의 푸른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진보의 성찰’이 절실하다.





[오택진 칼럼] 17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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