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태로운 갈등은 누구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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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칼자루를 쥔 사람들,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막았던 귀를 열어야"


 군사정권에 의한 가혹한 조치들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인혁당 사건이나 5 ․ 18 사태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는 피해자들이 그 얼마일까.

 그런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나쁜 정치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도 “우리나라는 독재를 좀 해야 돼.” “유신시대가 차라리 좋았어.”라는 둥의 허튼 소리를 하는 늙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 가혹한 시절에도 잘나가던 사람들의 술자리에서는 “이대로!”란 건배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웃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두고두고 즐기려던 파렴치한 사람들의 몽상이 담긴 구호였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밑거름삼아 드디어 우리에게도 좀 자유로운 세상이 찾아왔다. 독재의 어둠은 이제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모두들 낙관하고 있을 때, 어디서 웅크려 숨어있던 바이러스가 대상포진의 아픔처럼 우리를 다시 덮쳤다. 바로 공안통치의 부활이다. 간사했던 이명박 정권의 다음 정권은, 그것이 보수든 진보든 간에 적어도 그전보다는 낫겠지 하고 누구나 바랐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 그런 기대는 뜬구름이 되어버렸다.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들이 줄을 이었고, 지금도 분열의 파도가 쉬이 가라앉을 기미는 없다. 정권의 눈치를 보는 언론이 왜곡하거나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장면들을 빼고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소요와 분노가 우리사회를 찢어놓았다. 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사건이었고, 정통성에 흠집 내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집권자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인간사회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적당한 갈등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순기능을 하지만, 그것이 심하면 해일처럼 배를 뒤집어엎고 해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한다. 작금의 우리 정치는 누가 봐도 과잉갈등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폭풍의 언덕이다. 새 정부 들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던 저항과 시국집회 가운데서도 지난 11월 22일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 사퇴촉구 미사는 갈등수위의 한 꼭짓점이었다. 바야흐로 여론의 핫이슈로 번지고 있는 사건이다.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는 자들뿐이다.’ 강론장 옆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이 얼마나 섬뜩한 외침인가. 청와대와 여권이 펄쩍 뛸 법도 하다.

 그러면, 이런 위태로운 갈등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을까?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우겨대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칼자루를 쥔 사람들에게 있음은 불문가지다. 귀와 눈을 막은 채 사태를 악화일로로 몰아간 사람들이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막았던 귀를 열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면 너무 안이하고 성급한 기대일까.

 불신의 징표처럼 여겨지던 TV종합편성 채널에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jtbc의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9 말미에는 시국현안에 대한 자체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집권여당에 불리한, 의미있는 결과 몇 가지가 나왔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두고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거나, ‘특검을 실시해야한다’는 여론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것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큰 우리사회이긴 하지만, 이런 보도를 보면서 드디어 국면이 루비콘 강을 건너려는가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가 바로 이런 보도태도에 태클을 걸고 나섰다. 통합진보당해산 청구사건 보도에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jtbc 뉴스9 관계자들에게 중징계조치가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렇잖아도 손 앵커체제가가 얼마나 오래 순항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던 터이다.

 새정부 출범 10개월. 해빙의 강물이 흐르기에는 아직도 칼바람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니 이를 어찌할꼬.






[김상태 칼럼] 25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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