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에 김창환 선생 1주기 추모식과 유고집 ‘숲사람’ 출판 기념회가 개최되었다.
유족과 그를 흠모하던 이들이 경향 각처에서 달려와서 안기동 천주교 묘원에서 간단한 추모를 하고 안동문화예술의 전당 지하 한식당에서 100여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전교조 경북지부에서 묶어낸 유고집 『 숲사람』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추모의 밤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헤어지기 섭섭한 이들은 김창환 선생이 사시던 ‘노암마’에서 못 다한 아쉬움을 술로 달랬다.
1949년 의성 탑리(금성)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경남 하동 횡천중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경북 예천여고에서 1989년 전교조 결성, 주도로 해임, 구속되었고, 1991년에 제 3대 전교조 경북지부장에 당선됐다. 그 이듬해에 안동시 국회의원 선거에 시민후보로 출마, 낙선하고 복직해서 그토록 바라던 아이들과의 만남도 오래가지 못하고 제 9대 경북지부장으로 불려나오기도 하는 등 지병으로 선종하시기까지 안동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및 전국 공동대표, 안동시민연대 대표, 대구경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천주교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헌신, 봉사한 그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음을 나는 실감한다.
수많은 유고 중 가려 실은 67편의 글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톺아 보는데 도움이 되겠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말미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느려터지고 미련스럽지만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고, 내가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좌우명 삼아 스스로 경계를 삼고자 합니다. 개관사정이란, 사람의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닫고 나서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훼절하기 쉬운 먹물들이 귀담아 들을 말인가 합니다."라는 그의 준엄한 목소리가 지금, 여기 우리 삶에 회초리를 치고 있음에 흠칫 놀란다.
1989 년 초 겨울에 대명동 성당에서 경북교사협의회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내가 당시 이영희 선생과 김창환 선생 두 분을 경선으로 이영희 선생을 경북교협 회장으로 선출 한 일의 역사적인(?) 만남 이후, 그는 수많은 간난고초를 겪어오면서도 특유의 온화함으로 나의 군소리를 늘 기껍게 받아주신 분이다.
2006년 이었던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고 성모승천대축일(8.15)에 예천성당에서 바오로로 세례를 받으시던 날, 달려가 축하하며 정평위원으로 모셨을 때도 기꺼이 받으시고, 안동 평통사 대표를 넘겨드렸을 때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고비마다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며, 스스로 우리들 가슴에 '심장에 남는 사람'으로 살아 계시는 듯하다. 말미에 그의 시 한편으로 그를 기려본다.
탱자나무
봄이면
여린 잎으로
호랑나비 애벌레 품어 키우더니,
우레와 뙤약볕을 모질게 견뎌내고,
서풍에 엷은 햇살 비껴 부서지면
순금 빛 열매 몇 알 내민다.
겨우내
벌거벗은 몸으로
지독한 가시를 두르고도
진초록 빛깔을 끝끝내 고집하는가.
너는
홀로 서 있기보다
여럿이 촘촘히
어우러져 살기 좋아하여
든든한 울타리로 절로 이름값을 하는구나.
우린 어디에서 무슨 울타리로 살아야하나?
[책 속의 길] 121
김헌택 / 안동 경덕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헌택 / 『숲사람』(김창환 선생 유고집 | 김창환 | 전교조 경북지부 펴냄 | 2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