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리,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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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23호기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2014.8.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23호기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2014.8.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
삼평리 새 아침은 밝아온다.

농민들이 지켜온 땅은
역사상 단 하루도 헌 마을이었던 적,
없다. 땅을 모르는 지배자들,
하늘마저도 우습게 아는
불경스런 놈들에게나
이 평화로운 삶이 낡은 것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들 귀에는, 그들 눈에는
힘을 모아 어둠을 밀어내는
저 부지런한 새소리, 밤새
내려온 이슬이 기지개켜며
숲으로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눈부신 몸짓, 두런두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나락이삭들과 은사시나무들의
다정한 설움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낡았다고 여긴다.
정체되었다고 여긴다.
가난하다고 규정한다.

함부로 쇳소리 울리며, 군홧발소리
울리며, 자신들이 설계한 새아침을
이 땅에 이식하려 한다.
구조조정하려 한다.
새마을을 만들겠다고 한다.
송전탑 꽂고 핵발전소 돌려
가짜 해를 솟게 하겠다고 한다. 해서,
저 송전탑의 이데올로기는,
박정희의 새마을, 독재자의 새아침과
정확히 일치한다. 허깨비들의 아우성,
쇠붙이들의 행진곡, 완장 찬 껍데기들의 요란한
나팔소리, 호루라기 소리

그러나
이 마을은 역사상 단 하루도
멈춰 있어본 적이 없다.
단 한번도 헌 마을, 낡은 마을,
죽은 마을이었던 적이 없다.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
삼평리 새 아침은 여지없이,
의연하게 밝아온다.

23호 송전탑 공사현장 앞에서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삼평리 할머니들(2014.8.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3호 송전탑 공사현장 앞에서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삼평리 할머니들(2014.8.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금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단지 송전탑 한 기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이곳 삼평리는 한때 우리 할매․할배들이 어깨춤 추며 환호해 마지 않았던 ‘국가’와 그 할매․할배들이 평생 스스로 일구어왔던 ‘마을’이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는 전장이다. 민중의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이 계속되는 한, 싸움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설령 송전철탑 조립이 끝나고, 전선이 걸리고, 만에 하나 신고리 3호기 핵발전소가 완공된다 하더라도…

글 / 변홍철, 평화뉴스 칼럼 '삼평리 광복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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