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주민-한전, 공사재개 후 첫 협의...주민들 도청서 농성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8.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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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주민들 "공사 잠정중단ㆍ공식설명회" 요구 / 한전 지사장 "윗선 보고 후 결정"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공사 재개 한달만에 처음으로 주민들과 한국전력공사가 협의테이블에 앉았다. 주민들은 "공사중단"과 "지중화"를 요구하며 협의테이블이 끝난 뒤 도청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한전은 주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며 "불상사가 없도록 주의겠다"고 밝힌 반면, 주민들 요구에 대해서는 "즉답은 어렵다"며 "윗선에 보고한 뒤 결정사항을 통보하겠다"고 했다.

18일 오후 삼평리 주민과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한국전력공사, 경북도 등 4자는 경북도청에서 <청도 송전탑 대안 마련을 위한  협의테이블>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삼평리 주민 이억조(75)·조봉연(75) 할머니, 김헌주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 이강현 지사장·윤태호 차장·오장만 송전건설팀장, 송창경 경북도 창조경제산업실장이 참여했다.

'청도 송전탑 대안 마련을 위한  협의테이블'에 참석한 삼평리 할머니들(2014.8.18.경북도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청도 송전탑 대안 마련을 위한 협의테이블'에 참석한 삼평리 할머니들(2014.8.18.경북도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주민들은 ▷삼평리 송전탑 공사 열흘간 잠정중단 ▷중단 기간동안 한전의 공개적인 공사중단·지중화 등 대안 마련을 위한 공식설명회 개최 ▷한전과 주민들의 중재역할을 할 공식채널로 변홍철 청도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을 지명할 것을 한전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강현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장은 "지사장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뭐라고 즉답하기 어렵다"며 "협의테이블에서 돌아가는 즉시 윗선에 보고한 뒤 그 결정을 주민과 대책위에 통보하겠다. 공사중단도 지중화도 지금으로선 확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테이블은 지난달 21일 한전이 삼평리 송전탑 공사를 2년 만에 재개한 뒤 한달만에 처음으로 열린 자리로, 당일 오전 삼평리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10여명이 경북도청을 찾아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송전탑 문제와 관련해 "중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당일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에 청도 삼평리 주민들과의 만남을 요청했고 바로 경북도청에서 협의테이블까지 주최했다.

(왼쪽부터)청도 삼평리 주민들과 함께 협의테이블에 참석한 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건설지사 윤태호 차장, 이강현 지사장, 오장만 송전건설팀장(2014.8.18.경북도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청도 삼평리 주민들과 함께 협의테이블에 참석한 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건설지사 윤태호 차장, 이강현 지사장, 오장만 송전건설팀장(2014.8.18.경북도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공사재개 후 한달만에 한전 대구경북지사장을 공식적으로 만난 주민들은 울분을 쏟아냈다. 한전 대구경북지사장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어떤 결론도 내놓지 못해 빈축을 샀다.

때문에 삼평리 주민 6명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20여명은 도청 1층 회의실에서 이날 저녁부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당초 주민들은 도청 3층 도지사 실 옆 접견실에서 농성을 하기로 했으나 도청이 접견실에서 농성을 할 경우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고 엄포를 놔 도청 1층 회의실로 농성장을 옮기게 됐다. 그러나 19일 새벽 1시 경북도 당직사령은 주민들에게 2차례에 걸쳐 퇴거명령서를 전달했다. 현재 농성장 주변에는 경찰병력 50여명이 배치됐으며 1층 로비와 뒷문 출입이 막힌 상태다.  
협의테이블에 참여한 이억조·조봉연 할머니는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한전의 송전탑 공사에 대해 갖은 분통을 쏟아냈다. 이억조 할머니는 "세상 어느 나라에서 내 땅과 재산을 뺏기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냐"며 "이렇게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쫓아내고 철탑을 세우는 게 한전의 방침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또 "한전 때문에 우리 마을은 갈갈이 찢어졌고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며 "우리도 세금 꼬박꼬박 내고 투표도 하는 국민이다. 돈은 필요없으니 철탑을 아예 뽑아내라"고 요구했다.

조봉연 할머니는 지난 2012년 7월 한전의 하청업체가 고용한 용역업체직원에 의해 폭력을 당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전을 질타했다. "내 땅 지키려 산에 올라간 할머니들을 용역직원들이 강제로 끌어내고 한전 직원들이 그 장면을 웃으면서 지켜봤다"면서 "한전이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 있나. 주민들이 옳은 소리를 하면 무조건 불법이라고 하면서 한전은 왜 그렇게 거짓말과 폭력을 일삼느냐"고 했다.   

김헌주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는 "할머니들은 6년 동안 가슴에 맺힌 울분이 심각해 홧병이 생길 지경"이라며 "물론 공사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는 타협점이 없지 않는가. 공사현장에서 한전 직원과 경찰들이 할머니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제발 주민들의 말을 외면하지 말고 귀 기울여 달라. 지금 할머니들은 퇴로 없이 싸우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전은 대안 마련을 위해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공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잠시만이라도 공사를 중단해 주민들이 긴장상태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도청에서 "송전탑 공사중단" 촉구 무기한 농성을 벌이는 삼평리 할머니들(2014.8.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북도청에서 "송전탑 공사중단" 촉구 무기한 농성을 벌이는 삼평리 할머니들(2014.8.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저녁 <청도3456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는 성명서를 내고 "경북은 송전선로·송전탑 수가 전국 2위인 반면 송전선로 지중화율은 전국 꼴찌"라며 "18일 진행된 협상테이블이 단지 형식적인 자리에 그치지 않도록 한전과 경북도는 앞으로 대안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한전은 지난달 21일 직원 1백여명, 경찰 5백여명을 동원해 2년간 중단된 청도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송전탑 3기 중 2기는 공사를 마쳤고 마지막 1기인 23호 송전탑 공사를 위해 공사장 주변에 펜스를 치고 모든 출입을 막았다. 19일 현재 공정률은 27%이며 기초공사는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
이 과정에서 19일 현재까지 주민 등 19명이 경찰에 연행됐지만 현재는 모두 풀려났다. 시민단체 활동가 3명에 대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현재는 경찰 150여명이 노숙농성을 벌이는 주민과 공사현장에서 대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저녁 공사현장에서 '송전탑 반대 문화제'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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