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의 딜레마와 '평등 없는 친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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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 미국과 사드, 우리에게 바람직한 선택은?


   최근 사드배치문제와 북핵 5차 실험 등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동북아 전체의 모습은 우리의 선택에, 그 기준에, 많고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2분법으로 애국과 매국, 도덕과 비도덕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지......여기 두 개의 비유가 우리의 결정해야 방향을 제시하는 듯 합니다.

   그 첫째는 로렌츠 콜버그의 도덕위계설에서 제시된 '하인즈의 딜레마(Heinz’s dilemma)'입니다.
  <어떤 부인이 암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그 부인을 살리는 약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느 약제사가 발견한 일종의 라듐이었다. ​그 약은 재료 원가가 비싸기도 했지만, 약제사는 약값을 원가의 10배나 매겨 놓았다. ​그는 라듐을 200달러에 구입하여 적은 분량의 약을 만든 후, 그 약에 2,000달러를 요구한 것이다. ​아픈 부인의 남편인 하인즈는 돈을 구하려고 아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 다녔으나 약값의 절반인 1,000달러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남편은 약제사에게 부인이 죽기 직전이라는 사정을 설명하고 약을 싸게 팔거나 아니면 외상으로라도 팔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약제사는 ‘안 됩니다. 나는 이 약을 개발하기 위해 일생의 공을 들였고, 이 약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절망한 하인즈는 마침내 약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부인을 위하여 약을 훔쳤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여러 가지 질문 즉 '하인즈는 약을 훔쳐야만 했는가?', '절도는 옳은 것인가 아닌가?', '남편의 의무는 무엇인가?', '좋은 남편이라면 약을 훔쳤을 것인가?',  '가격 책정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약제사가 원가의 10배 가격을 붙인 것은 옳은 일인가?' 등을 두고 전 인습적, 인습적, 후 인습적 수준의 도덕을 설명합니다.

   그는 가장 높은 도덕적 단계는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세 번째 수준, 즉 후 인습적 수준이고, 이는 다른 사람들의 동의가 아닌 추상적인 도덕원칙을 정립되면서 스스로의 양심을 충족 한다는 것입니다. 이 도덕추론은 확고한 사회규칙들을 초월하기도 하며, 개인은 그 규칙들이 종종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오히려 자유나 존엄, 정의, 생명존중 같은 유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윤리적 원리 지향' 단계입니다. 법이나 관습 이전에 인간 생명이 관여된 문제로서 생명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평등 없는 친밀성'입니다.
  2013년 9월 양화진문화원은 '조지오웰' 의 『1984년』(고세훈 엮음)을 이달의 추천도서로 지정하고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님의 서평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명문 이튼학교를 졸업한 조지 오웰은 19세에 버마의 식민경찰이 되었고 당시 버마 인구는 1,300만 명, 경찰은 13,000명이고 영국의 경찰 관리는 90명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5년 만에 소위 출세한 이 직을 버리면서 식민경찰의 제국주의 추악한 소행에 가담한 셈으로 그는 가해자로서 속죄해야 할 엄청난 죄의 무게를 의식하게 되고 영국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전의 신분에서 내려가서 빈민들 속에 섞여 들어갔습니다. 호텔에서 접시를 닦고 노숙을 하고 호프를 따고 손수레를 끌고 부랑자들과 함께 떠돌면서 그의 식민경찰의 죄의식을 털어내고 있었고 특히 버마 식민경찰의 경험에서 가해와 피해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배우고, 그 틀로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를 관찰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버마인들에게 대다수 영국인들은 매우 친밀하고 교양 있게 대했지만 현지인들과 제국주의 국민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불가능했다는 것, 그것이 평등이 전제되지 않은 친밀함의 결정적 한계라는 것이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이 현지인들에게 보여주는 친밀함과 교양이란 절대 같아질 수 없는 버마인과 영국인의 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는 도구인 것이지요.

<경향신문> 2016년 9월 10일자 '오피니언'
<경향신문> 2016년 9월 10일자 '오피니언'

   며칠 전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은 한 언론을 통해 이 '평등 없는 친밀성'에 대한 우리의 모습을 동화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저, 2001)를 통해 강자와 약자간의 관계를 세 가지로 설정하고, 약자인 바우네가 취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결론으로 '약자들이 연대하여 단호한 투쟁으로 여는 새로운 세계다. 과연 바우네는 실제로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나?'라고 물음을 던지는 형식으로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016.9.10. 경향신문, 오피니언 세상읽기)

  오늘 사드 배치 반대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한 대안 없는 행위(?)입니까? 정말 우리에게 미국은 우리의 안보를 지켜줄 혈맹의 관계, 모든 길이 통하는 곳 미국, 아메리칸 드림, 그 실제입니까?  친미가 아니면 바로 반미이고 이는 좌파의 준동이며, 미국이 결정한 사안을 따르지 않으면 국정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이랍니다. 조지오웰의 '평등 없는 친밀성'과 콜버그의 후인습적 도덕관을 반드시 다시 읽고 다져야 할 시간입니다.







[기고]
김영민 / 전 구미YMCAㆍ김천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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