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총장실엔 '독재자' 연설문집만 빼곡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7.01.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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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8권 전권·전두환 2권에 MB도, 민주정부 연설집은 전무...학생 "낙하산 예고한 듯 착잡" / "우연"


경북대 총장실 책장에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 연설문집 11권(2017.1.2) / 사진 제공.김도균 학생
경북대 총장실 책장에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 연설문집 11권(2017.1.2) / 사진 제공.김도균 학생

2순위 후보로 국립대 경북대학교 제18대 신임총장 자리에 오른 김상동(57.자연과학대학 수학과) 교수의 취임식은 지난 2일 밀실에서 열렸다. 출입을 저지당한 학생, 교수들은 문 밖에서 눈물만 흘렸다. 자기들만의 세레모니 후 문을 열고 나온 신임총장은 박사복을 입고 박사모를 쓰고 꽃을 든 모습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구성원들을 뒤로하고 아무 말 없이 후다닥 총장실로 모습을 감췄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총장 후보 1순위 김사열 교수를 배제하고 2순위인 자신을 총장에 임명한 뒤, 두 달 넘게 본관 2층에 있는 총장실에서 총장으로서의 집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들은 '우병우 인사', '코드인사', '정권 낙하산'이라며 총장실을 에워싸고 신임총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30분 넘게 굳게 잠겻던 총장실 문은 기자들과 일부 학생들에게만 겨우 개방됐다.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12학번 김도균(22) 학생도 당시 이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보는 모교 총장실. 신기한 마음에 여러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난 뒤 사진을 정리하다 이상한(?) 사진 1장을 발견했다. 한 줄 전체가 전직 대통령들 연설문집으로 채워진 총장실 책장이었다.

국립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기 때문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그 이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집 8권 전권, 전두환 대통령 연설문집 2권, 이명박 대통령 연설문집 1권까지 모두 11권. 이 책들은 대통령 임기 동안 어록을 정리한 것으로 대통령비서실에서 편찬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민주정부의 대통령 연설문집은 한 권도 없었다.

경북대 사범대에 박정희 흉상 그 옆 2순위 총장 비판 학생 대자보(2016.11.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북대 사범대에 박정희 흉상 그 옆 2순위 총장 비판 학생 대자보(2016.11.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연설문집은 대통령 말만 기록된 것이 아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정책과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어기고 국민 목숨까지 앗아간 2명의 독재자와 대학자율성을 무너뜨린 장본인의 연설문집이 국립대 총장실에 빼곡히 놓여 있는 게 김도균 학생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임기 당시에는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고(故) 여정남씨가 인혁당 조작사건으로 사형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예산 전권을 쥐고 경북대 등 국립대의 총장직선제를 간접선거로 바꾸라고 강요했다. 오늘 날 2순위 총장 사태라는 불씨를 낳은 장본인인 셈이다.

김도균 학생은 "이 사진을 찍고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며 "독재자들 연설문집만 총장실 서재에 놓여 있는 것이, 지금의 2순위 총장이라는 낙하산 인사 현실을 만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임정택 총장실 비서실장은 "정부에서 주는 대로 오랫동안 비치됐다. 거기(민주정권)서도 만들어서 주면 꼽았을 텐데 우연히도 그렇게 됐다"며 "총장님(김상동)은 따로 손을 안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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