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대자보 붙은 대구 동성로...끝 없는 '성폭력' 고발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8.04.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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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 앞 광장 '홍벽서' 수 십여장 / 야구선수·교수·선생님·남친 등 '가해자'..."네 욕망에 나는 죽었다"
청소년·주부·직장인 등 남녀 피해자 10여명 미투 이어말하기 "우리는 서로의 용기" 구호 외치며 행진


'OO여고 임OO 왜 커피 태우라고 하고 엉덩이 만지냐'
'1년 성추행한 개XX. 지금 성폭력 상담소장? 기다려라'
'누구 엉덩이가 크다. 가슴이 크다. 초딩 선생이 할 말인가'
'대구OO고 음악 선생님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고발합니다'
'너 때문에 내 친구는 죽었다. 네 욕망이 중요하냐'
'워크숍 뒤풀이 노래방에서 짝 바꿔가며 블루스 추던 인간'
'고3 첫 취업. 업무 중 신체를 자꾸만 만진 아저씨'


대구 동성로 광장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는 고발한다)' 대자보로 붉게 물들었다. 7일 오후 5시 30분 대구시 중구 동성로2가 대구백화점 앞 민주광장에 광장 대자보 게시판이 설치됐다. 교복 입은 학생들, 쇼핑하러 나온 대학생들, 중년 부부, 팔짱 낀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처음엔 주춤하던 이들은 너도 나도 펜을 들어 자신의 피해 사례를 붉은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대구 동성로 광장에 설치된 #미투 대자보(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동성로 광장에 설치된 #미투 대자보(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 두장 붙었던 게시판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도배됐다. 뒷면에도 비슷한 내용의 벽보로 가득 찼다. 끝 없는 '성폭력' 고발은 광장에서 계속됐다. 시민들은 어두운 얼굴로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미투를 하도록 공개적인 장소에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홍벽서(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한 것으로 부패한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한 내용의 글을 붉은색 벽서(壁書)에 적어 세상에 알린 일종의 대자보) 형식의 퍼포먼스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여성주의 모임 '나쁜페미니스트'는 이날 대백 앞에서 '다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를 주제로 '미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광장에 미투 대자보 게시판과 성폭력 피해 상담 지원 게시판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오후 5시 30분부터 거리 게시판이 설치됐고 오후 6시부터 집회가 진행됐다. 10여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직접 발언대에서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이후에는 성폭력 근절을 위한 달빛행진이 도심 일대에서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시민 1백여명이 참석했다.

#미투와 #위드유 피켓을 든 시민들(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미투와 #위드유 피켓을 든 시민들(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이어말하기'(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이어말하기'(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미투 이어말하기'에선 10대 청소년과 주부, 공무원 직장인, 대학교 남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피해자 10여명이 무대에 올라 성폭력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피해자들만큼 가해자들의 직군과 연령도 다양했다. 한 야구 구단의 2군 야구선수 A씨, 유명 힙합가수 B씨, 고등학교 동급생들 C, D, E, F씨, 포항의 교회 목회자 G씨, 공무원 H씨 등이 성폭력 직접 가해자로 지목됐다. 

한 야구선수를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해 미투를 한 김모(18.경북 S여고 3학년)씨는 "저를 포함한 여성 청소년은 폭력과 혐오에 노출돼 있다"며 "숨 좀 쉬고 살고 싶다. 숨이 턱턱 막힌다"고 말했다. 고교시절 동급생 4명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현재 경찰 수사 중이라던 김모(23.대구H대 4학년)씨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는게 두려웠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그들이 잘못한 것이기에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고발한다"며 "성폭력을 뿌리 뽑는 그날까지 말하겠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는 서로의 용기",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투를 지지하는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운동을 펼쳤다. 또 행진을 하는 동안에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주제가를 개사한 곡을 합창하기도 했다.

대구 #미투 집회 사회자 민뎅(닉네임)씨가 발언 중이다(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미투 집회 사회자 민뎅(닉네임)씨가 발언 중이다(2018.4.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오늘 광장에서 나온 미투 고발이나 앞으로의 피해 상담에 대해 대구경북미투별특책위원회가 피해자들을 도와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며 "이미 특위 내에 변호인단을 꾸렸다. 피해자들은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미투특위로 반드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한편, '#미투운동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특별위원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각종 비밀 상담 전화(0530471-6484, 053-427-4595, 053-428-6340, 053-422-8287, 053-637-6057, 053-944-2977, 054-282-1470, 054-744-9071)와 SNS(facebook.com/metoodkwomen 페이지 메시지, goo.gl/5Lwr6a 구글설문지 상담요청)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심리·법률·통역지원과 검찰·경찰 조사 지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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