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못하는 대구 학교비정규직...20% "성폭력 경험·목격"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8.04.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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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1백여명 실태조사, 응답자 15% "직접 피해"ㆍ5% "목격"ㆍ13% "전해 들은 적 있다"
72% "행정 조치 전무"...미신고 이유 "해결 기대 없다" / "대구교육청 전수조사ㆍ대응책 마련해야"


대구 학교비정규직 성폭력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노동자(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학교비정규직 성폭력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노동자(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여기 말 못한 '#미투(Me Too.성폭력 고발 운동)'가 있다. 2년 전 대구 A고등학교 전산실에서 일했던 20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B씨 얘기다. B씨 같은 학교에서 일하던 40대 남성 교사 C씨로부터 입사 후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피로를 풀어준다며 교실에 혼자 있는 B씨 어깨를 수 차례 주무르고 일을 도와준다며 등 뒤에서 허리를 감싸거나 손을 잡았다. 호의라고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허벅지에 손이 올라온 날 B씨는 다른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스트레스를 받던 B씨는 2년 계약을 못 다 채우고 퇴직했다. 지금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학교를 완전히 떠난 B씨는 "잡음이 없어야만 계약이 연장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았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대구 학교비정규직 중 20%가 학교에서 '성희롱, 성폭력' 직·간접 피해를 입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투(Me Too.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배지를 단 학교비정규직(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미투(Me Too.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배지를 단 학교비정규직(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국여성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지부장 황성운)와 대구여성노동자회(대표 정현정)는 11일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앞서 3월 16~29일까지 대구시교육청 소속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11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직장에서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113명 중 15.92%인 18명이 "직접 경험했다", 13.27%인 15명은 "전해 들은 적이 있다", 6명(5.30%)은 "목격했다"고 했다. 목격 또는 직접 피해 당사자만 20%로 5명 중 1명꼴이다. "없었다"는 74명(65.48%)이었다.

하지만 직접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피해사건에 대한 당사자 간 조치 유무'에 대한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25명)의 72%(18명)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를 입어도 아무 조치가 없었던 셈이다. 반면 사건 발생 이후 "조치를 요구했다"는 응답자는 28%(7명)에 그쳤다.

피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은 이유로는 전체 응답자(34명) 중 가장 많은 29.41%(10명)가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문제 해결 기대가 없었던 게 미신고 이유 1위인 셈이다. 또 "업무·인사고과 등의 불이익 걱정(23.52%)",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14.70%)", "소문·평판 두려움"과 "대처 방법 몰라서" 각 11.76%, "도움 받을 곳 없어서(8.82%)"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 학교비정규직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학교비정규직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2018.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조는 이날 대구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청이 현장을 방치하는 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며 "대구교육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체결한 단체협약(제74조3항 직장 내 성폭력 발생이 확인된 경우 행위자 징계·적절한 조치를 한다)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또 ▲학교 현장 내 성희롱·성추행 등 성폭력 실태 전수조사 ▲성폭력 대응 매뉴얼 마련 ▲단체협약(제74조) 위반 사례 조사 후 시정 ▲사건 발생 시 가해자 엄중 처벌 요구안을 우동기 대구교육감 측에 전달했다.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학교비정규직은 일터에서 속수무책으로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교육청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강력히 대응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기본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분리도 제대로 안되는 현실"이라며 "결국지도·감독해야할 공무원들도 2차 가해에 동참자다. 2차 피해 방지책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구교육청 대외협력실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들 단체는 조만간 비슷한 내용의 추가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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