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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성폭력 사건 이후 우리는'
[남은주 칼럼] 피해자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
2021년 06월 16일 (수) 10:29:22 평화뉴스 남은주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공군으로 근무하던 이 중사는 강제추행 피해를 겪은 후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군의 성폭력 사건 은폐와 2차 피해 유발행위들, 군양성평등센터의 문제와 관련 규정 미작동, 오랫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도 방치되어온 군 재판부의 구조적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1994년 성폭력 특별법의 제정 이후 더디지만 변화해온 사회의 ‘젠더 인식’과는 다르게 세월이 멈추어 버린 군은 그동안 2013년, 2017년, 2021년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하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하고 군사경찰에 대한 압수수색과 2차 가해자 구속 등이 이루어졌지만 언론 보도로 알 수 있는 여군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책임질 단위를 정하고 제도 정비와 관련 규정을 바꾸겠지만 달라진 것 없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군의 대응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이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 성희롱·성폭력은 매우 특이한 가해자의 일탈 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 또한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 것은 사건 발생 이후 조직적인 은폐와 2차 가해, 왕따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발생한다. 사건 이후 조직이 대응하는 방식은 피해자의 생존은 물론이고 치유와 일상회복에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 사진 출처. KBS 뉴스해설 <또 되풀이된 '군 성폭력'…철저 조사, 근절 계기 삼아야>(2021.6.2) 방송 캡처

이번 공군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을 보며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군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며 본 현장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다. 공공기관은 4대폭력예방교육을 듣고 있고 직장내갑질 관련법이 제정되었지만 리더의 인식과 조직의 문화에 따라 대응은 천차만별이다. 이번 공군성폭력사건 피해자 사망사건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생각하기 위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직장내 갑질과 성희롱·성폭력은 조직문화의 문제

상담현장에서 보면 성희롱이 발생하는 조직은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차별이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갑질과 인권침해도 함께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이란 행동 양식, 인성 특성 및 태도 등에 대해서 남녀 성에 적합한 고정관념에 따라 이에 맞는 행동을 개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말한다. 회식에서 끼여 앉기, 블루스 추기 강요, 여성에게만 차 심부름이나 뒤처리를 담당하게 하는 등 집안일과 비슷한 일을 전담하도록 한다.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문화는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성별직종분리와 성별임금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의 문화는 여성을 동료가 아니라 ‘성적대상’으로 생각하고 성적제안이나 성희롱·성폭력 가해 행위를 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외모 평가, SNS상의 성적 대화, 불법 촬영,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성희롱과 성폭력은 가해 행위가 아니라 친밀감의 표시로 해석되는 ‘조직의 분위기와 문화’에서 가능하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며, 이야기하더라도 자신이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가해 행위를 지속한다. 이때 평판과 소문, 재계약, 승진고과, 불법촬영물의 유포 협박, 해고위협 등 다양한 형태의 권력과 위계는 피해를 이야기할 수 없도록 피해자를 압박하는 기제가 된다.  

주변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할 일

독자들 중에 ‘당연하지 성역할고정관념, 성적대상화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 것과 실제는 달라서 자신의 주변에 사건이 발생하면 의롭고 성인지 감수성이 있던 사람도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경우를 본다.

사람들은 언론에 난 사건이나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문제를 보고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는 사람 또는 친한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꽃뱀’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가해자는 일정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인맥, 연차가 있는 사람들이고 피해자는 반대로 조직내 지위가 높지 않고 연차가 짧으며 인맥이 두텁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직 내 사건인 경우 조직구성원들은 ‘가해자의 지인’일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어렵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순간 갖가지 말들이 돌아다니며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다. 고용노동부 진정이나 경찰에 고소를 하고 나면 피해자는 조직 내에서 더욱 고립될 수 있다. 조직의 문화에 따라 동료들이 가해자에게 이로운 증언을 하거나 가해자를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쓰기도 한다. 이런 행동들로 피해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되고 가해자의 말을 옮기거나 피해를 사소화 하고 피해자에게 탓을 돌리며 사건을 무마하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주고 왕따를 시키는 행위는 원래의 사건보다 피해자를 훨씬 힘들게 한다. 조직 전체가 나서 2차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소한 해야 할 일은 ‘판단중지’하며 가해자의 말에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성격과 인성을 들먹이며 피해 사실과 상관없는 말들을 퍼트리며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사건을 왜곡시킨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친구, 동료, 상사, 가족들이 나서서 가해자를 옹호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사회가 피해자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가해자의 지인 모두가 침묵하는 것’과 ‘피해자가 말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판별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맥락 전체를 알지 못하면서 섣부르게 판별하는 자리에 서서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말들을 하지 않는 것 또한 너무 중요하다. 언론 보도나 알려진 내용은 사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군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평온한 안식을 빌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은주 칼럼 22]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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