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장보기에 나섰다. 장바구니와 천주머니를 챙겨서 차례상에 필요한 장을 보러 갔다. 비닐이나 포장재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장을 보리라 생각하면서 동네 매장에 들어섰다. 명절 앞이라 매장이 분주한 가운데 사야할 목록을 하나하나 챙기는데, 이미 비닐봉지에 소분되어 포장된 채소와 과일들뿐이라 천주머니는 별로 쓸모가 없다. 제수용 과일을 사야하는데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딱 알맞게 담긴 과일과 비닐봉지에 크기도 작고 개수도 많이 담긴 과일을 두고 생각한다. 그래도 플라스틱보다는 비닐이 덜 해로울텐데, 과일의 모양새는 플라스틱에 담긴 과일이 제수용으로 적당하니 잠시 고민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닐대신으로 사용하려고 가져간 천주머니는 쓰지도 못하고 장바구니만 겨우 제 쓰임을 다했다.
차례를 지내고 남은 차례음식을 명절을 지내러온 다른 식구들에게 조금씩 나눈다. 전날 장을 보고 나온 스티로폴 용기와 플라스틱 용기를 재사용해서 음식을 싼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을 때도 밀랍랩으로 덮어서 넣어둔다. 비닐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챙겨주고 보관하는 것 정도만 그나마 실천할 수 있었다.
생활쓰레기가 덜 나오는 명절을 보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건을 판매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은 이미 명절의 필요에 맞게 편리하게 잘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다. 포장재 없는 장을 보겠다는 소박한 결심은 시장의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게 느껴졌다.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라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이 발표되고 기후위기가 주요한 과제가 되었지만 생활의 현장으로 돌아와 보면 일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생활은 여전히 탄소배출 덩어리로 돌아간다. 시스템은 여전히 기후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2050정책이 발표되고,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어도 에너지 정책과 산업분야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전환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세상은 화석연료 에너지로 굴러가고 있고, 기업은 여전히 탄소를 배출하며 자본을 키우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세상 안에서 먹고 일하고 소비하며 살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인 위기 앞에 ‘위기는 곧 기회다’는 말이 시장과 자본의 탐욕에게만 결국 ‘기회’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녹색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결국 새로운 시장과 이윤 창출에만 기여하는데 그칠까 봐 생활용품점이나 온라인 매장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제로웨이스트제품이나 비건상품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얼마 전 서울을 휩쓸고 간 기록적인 폭우 때문에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던 일가족이 생명을 잃었다. 물이 휩쓸려드는 그 순간의 공포와 위협이 떠올라서 내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재해와 기후위기는 가장 낮고 약한 곳으로 흐른다.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기후위기가 그려지는 디스토피아는 결국 극단적인 불평등에 내몰린 약자들의 비극과 불행이다. 그 비극과 불행이 나와 내 이웃, 우리의 아이들에게 닥칠 내일인 것 같아 기후위기가 두렵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아니, 해일이 단지, 장바구니에 플라스틱과 비닐을 담지 않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위기가 아님에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다행히 9.24 기후정의행진이 다가온다. 결국 연대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밖에 없다. 행동하지 않으면 자본과 시스템은 전환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자본과 권력자의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내는 행동하는 대중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너른 연대와 길고 오랜 행진을 결심하고 시작하자.
[신동희 칼럼 7]
신동희 /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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