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무명의 묘' 21년...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6명, 가족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14·K35' 등 이름 없이 잠든 무연고 희생자들
DNA 채취에도 찾는 이 없어, 사실상 신원 확인 중단
가족 잃은 다른 희생자 유가족들 매년 무덤 찾아 참배
"생명들이 사라졌는데...대구시·2.18재단 노력해달라"

'K14'의 묘에는 이름이 없다. 나란히 누운 K35의 묘도 '무명(無名)'이긴 마찬가지다. 

알파벳과 숫자 조합의 무덤은 모두 6기. '2.18대구지하철 참사' 무연고 희생자 6명이 잠든 곳이다.  

주인 없는 묘지에는 '2.18대구지하철참사'라고 적힌 비석이 놓였다. '신원확인 불능' 또는 'DNA 감정확인미신고' 글귀가 적혔다. 당시 방화로 인해 DNA조차 남지 않은 희생자 3명과 그나마 DNA를 검출했지만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3명을 의미한다. 

2.18대구지하철참사 'K05 (여)의 묘' DAN 감정 확인 미신고(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18대구지하철참사 'K05 (여)의 묘' DAN 감정 확인 미신고(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DNA가 검출된 한 희생자 최대 정보값은 '35살', '여성'이 전부다. 다른 단서는 없다. 343명 사상자, 사망자 192명. 이 가운데 끝내 이름을 찾지 못한 6명은 21년째 이름을 불러줄 이를 기다린다.  

대구지하철 참사 21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대구시립묘지공원 지하철 참사 무연고 희생자 무덤가에 누군가 찾아왔다. 노란색, 빨간색 조화가 쓸쓸한 묘지들을 장식한다.  

배와 사과, 황태포로 간단한 차례상을 차리고 술도 올렸다. 3명의 사람들은 무명의 무덤들에 제를 올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다른 유가족들이다. 참사 당시 가족들을 이미 찾아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은 매년 이맘때 간단한 제수용품을 챙겨 무연고 희생자들을 찾는다. 

   
▲ 참사 21주기를 앞두고 무연고 희생자들의 무덤에 제사상을 올리는 유족들(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이름 없이 잠든 무연고 희생자들 묘지에 참배하는 유족들(2024.2.13)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황명애(66)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지난 2003년 2월 18일 지하철 참사로 인해 대학교 입학을 앞둔 19살 딸 한상임씨를 잃었다. 본인 스스로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21년째 무연고 희생자들의 무덤을 찾아 술을 올리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21주기에도 빼놓지 않고 무명의 희생자들을 찾았다. 무덤에 절을 하고 손으로 몇개 잡초를 뽑아냈다. 내년 22주기에도 아마 그는 이곳을 찾을 예정이다.

유가족인 배석준(65)씨도 이날 함께 참배했다. 배씨의 딸인 배한솔 학생은 21년 전 중학교 2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동성로에 물건을 사라 나갔던 14살 딸은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배씨는 무명의 희생자들의 묘에 참배하고 고수레의 의미로 술과 음식을 무덤 곳곳에 뿌렸다. 이성재 2.18안전문화재단 사무팀장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유가족 배석준씨가 고개 숙여 무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있다.(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가족 배석준씨가 고개 숙여 무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있다.(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가족을 못찾은 무연고 희생자들의 묘를 가족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인 유가족들이 돌보는 셈이다. 

황 국장은 "나는 그날 가족을 찾았는데 여기 분들은 영원히 가족을 못찾을 수도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한해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져 DNA 판별 기능이 더 발달했다는데...대구시나 정부, 재단이 이들의 신원을 찾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는 이들을 애타게 기다릴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못찾을 수도 있다"면서 "한 생명이 이름도 성도 모른 채 사라진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이름을 찾아 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면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 좀 찾아주세요"...유가족인 황명애 대책위 사무국장(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가족 좀 찾아주세요"...유가족인 황명애 대책위 사무국장(2024.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또 "유가족들이 신원을 찾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라며 "대구시와 언론이 나서서 가족을 찾아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당시 무연고 희생자들 시료를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채취했다는데, 지금도 보관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최소한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 이름을 찾아 억울함을 달래주는 것이 지자체와 정부의 역할아니냐"고 호소했다.

● 대구시와 2.18안전문화재단 등에 확인한 결과, 무연고 희생자 6명의 신원을 찾는 작업은 따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2003년 당시 무연고 시신 발표 이후 경찰로 실종 신고가 급증했으나 21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신원 확인 작업은 중단됐다. 

2.18안전문화재단은 오는 18일 오전 9시 50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추모탑 앞 광장에서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를 주제로 대구지하철 참사 21주기 추모식을 연다.

한편, 대구지하철 참사 무연고 희생자 6명에 대한 정보는 대구경찰청(국번 없이112)이나 대구시(128), 2.18재단(053-745-0218), 대구지하철첨사희생자대책위(053-423-1697)로 신고하면 된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